2014년 올해는 청일전쟁(1894~1895) 120주년, 러일전쟁(1904~1905) 110주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100주년이 되는 해다. 거기에 10월은 115년 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哈爾濱)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10월 26일도 포함되어 있어 그 의미가 자못 크다. '10·26'이라고 하면 대부분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떠올리기 쉬우나, 조선인이 중국 땅에서 일본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동아시아의 중대 사건이 일어난 '10·26'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을 떠올리면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10월이다.
극우로 치닫는 일본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심 커진 중국
주지하다시피 지금 동아시아는 한·중·일 3국 사이에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로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동북공정, 장성공정, 청사공정 등 역사인식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고, 일본과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교과서 왜곡 문제등으로 골이 깊어가고 있다. 이에 더해 중·일 사이에도 침략 문제, 역사인식의 문제, 영토 분쟁의 대립각이 높아만 가고 있다.
한·중·일 3국이 서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예술 문화 교류가 크게 진전되고 있으나, 역사 왜곡과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각국의 국민감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반성의 기색은 없고 도리어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평화는 커녕 과거의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비등하고 있다.
그간 정부를 중심으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등 주로 영토·안보 문제에서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오던 중국이 최근에는 일본군'위안부' 강제 모집 등 일본의 군국주의 악행을 폭로하는 역사 문제를 조명하는 일이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관련 연구를 국가 학술지원 프로젝트에 포함하였고 올해 2월, 중국 상하이(上海) 사범대학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처음으로 열었다. 이 국제회의에서 기존 연구성과와 새로운 발굴 자료가 소개되었는데, 중국인 '위안부' 수가 30만 명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와 일본군의 위안소 운영을 입증하는 문건들이 공개되어 일본군'위안부'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4월에는 지린성(吉林省) 당안관이 일본의 중국침략에 관한 서류들을 새로 정리하여 공개하였다. 일제의 만행을 입증하는 관련문서 89건을 소개했는데, 여기에는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관련문서 25건도 포함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9월 18일에는 중국에서 일본군'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여명의 눈(黎明之眼)'을 개봉하였다. 홍콩의 유명한 배우 뤼샤오룽(呂小龍)이 각본·감독을 맡아 제작한 영화로, 중국이 항일전쟁을 하던 시기 윈난성(雲南省) 쑹산(松山)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중국 여성이 겪은 실화가 바탕이다. 영화는 단순히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뿐 아니라 그 후손들 3대에 걸친 상처와 아픔을 담아내었다. 난징대학살 기념일인 지난해 12월 13일에 제작을 시작하여 '9·18사변(만주사변)' 기념일에 맞춰 개봉한 것이다. 이 영화는 20여 년 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한국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처럼 최근 중국에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민·관·학계의 관심이 뜨겁다. 자료 발굴은 물론 이 문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그간 주로 한국이 목소리를 높여온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중국 학계에서도 역사인식의 공통분모를 찾아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공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에서는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을 '세계의 기억'으로 되살리는 일에 노력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기록물은 세계가 기억하고 경계해야 할 아픈 기록이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개인을 넘는 공동체라는 틀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중국에서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가지고 관련 기록물들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한국이나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와 지역에 넓게 흩어져 있다. 이들 피해자에 관한 기록과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개인적 상처와 피해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기억'으로 숨 쉬게 한다. 또 빼앗겼던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여성 인권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를 교훈 삼아 언제 어디에서도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 갈등 속 동북아역사재단에 거는 기대
오랜 시간 동안 골이 깊어 온 역사 갈등을 단번에 해소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일본은 우경화·군국주의화를 심화해 가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중국은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각을 높이 세우고 있다.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이 역사·영토 갈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한 시민 사회나 NGO의 발언권도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동북아역사재단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한·중·일 현안인 역사 갈등 해결은 먼저 올바른 역사인식의 보급에 있다. 폭넓고 깊게 과거사를 연구하고 서로 대화함으로써 인식을 공유하고 대중들과 널리 소통하여, 건강한 역사인식이 확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국내외 학회, 연구소, NGO 등 관련기관과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인식을 공유함은 물론, 발행하고 있는 영문 자료들이 세계 각 대학 도서관 및 관련 기관에 널리 배포됨으로써 국제적 호응을 불러일으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 역사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신뢰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 21세기 동북아시아에 주어진 과제다. 역사 갈등의 해소와 진솔한 공감·소통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동북아역사재단이 견인차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