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구교(盧溝橋, 루거우차오)는 중국 베이징시(北京市) 서남쪽을 흐르는 영정강(永定河, 노구강[盧溝河]의 현재 이름) 위에 놓인 돌로 만들어진 아치 모양의 다리로 전체 길이가 약 270m다. 금나라 때인 1192년에 완성하였는데, 난간에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사자 조각상 501개가 설치되어 있다. 노구교는 영어로 '마르코 폴로 다리'라고도 불리는데,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석조 다리"라고 서술한 것에서 유래한다.
중·일 전쟁 발발 계기가 된 노구교사건
'노구교사건'은 지금부터 꼭 77년 전인 1937년 7월 7일 노구교에서 발생한 일본군과 중국 국민당군의 충돌을 일컫는다. 1931년은 일본 관동군의 자작극으로 발발한 '만주사변(9·18 사건)'과 '만주국' 건국으로 중·일 양국의 대치가 격화일로였다. 이런 긴장 속에서 노구교 부근에서 총성이 울렸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중일전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중국은 7월 7일에 일어났다고 해서 '칠칠(七七)사변'으로 부르기도 하고 '노구교사변'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한때 '지나(支那)사변'이라고 불렀는데, 사변이라 칭한 것은 양국이 똑같이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1941년 12월 장제스(蔣介石)의 충칭(重慶) 정부가 선전포고를 한 후, 일본에서는 각의 결정으로 '대동아전쟁'의 일부로 포함시켰다.
'노구교사건' 발발 후 일본군은 베이징과 톈진(天津)을 점령하고, 상하이(上海)에 이어 난징(南京)을 공략하였다. 특히 난징에서 무고한 시민 수십만 명을 살육한 '난징대학살'을 자행하고 중국의 주요 성과 도시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중국 전역으로 전쟁이 확대되어 1945년 중화민국에 항복할 때까지 계속됐다.
현재 노구교 바로 옆에는 '중국인민 항일전쟁기념관'이 있다. 중일전쟁 발발 50년 후인 1987년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1931년 '만주사변'에서 1945년 중국이 승리할 때까지 전쟁관련 역사와 관련 유물 약 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1995년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는 2001년 8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였고,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그해 10월 이 기념관을 전격 방문해 '충서(忠恕)'라는 글을 남겼다. '충서'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진정한 마음과 남을 용서하고 동정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올해 2월, '항일전쟁승리기념일'을 제정하고 7월 7일 당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이 날짜에 맞춰 '중국인민 항일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노구교에서 일본군과 싸운 것은 공산당 군대가 아니라 국민당의 '국민혁명군 제29군'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지난 9월 3일에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와 세계 반(反) 파시스트 전쟁 승리 69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았다. 이날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헌화해 행사의 격식을 높이고 2015년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이하기 위한 토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