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소식지〈동북아역사재단뉴스〉가 지령 100호를 맞았다. 지령 100호 특집으로 김민규 홍보교육실장이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하였다. 김학준 이사장은 지령 100호를 자축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뉴스〉의 편집 방향은 물론 광복 70주년과 한일협정 50년인 올해 영토와 역사 현안에 관한 국내외 정세와 전망, 앞으로 재단이 해야 할 일을 소개하는 한편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인터뷰 전문을 정리하여 게재한다_. 편집자 주
김민규 지금까지 소식지를 읽으면서 특별히 인상에 남은 기사나 코너는 무엇인가요?
김학준 우선 100호가 나오기까지 힘써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령 100호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우리 임직원들이 적극 도와주셨고 또 밖에서 재단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지면을 만들어서 일반 국민들도 받아보고 싶어 하는 〈동북아역사재단뉴스〉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고자 합니다.
김민규 지금까지 소식지를 읽으면서 특별히 인상에 남은 기사나 코너는 무엇인가요?
김학준 아무래도 재단과 관련해 새로운 자료들을 발굴하거나, 재단이 다루는 주제와 관련 있는 논문을 발표한 소식, 관련 서적 발간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재단을 방문하는 외빈들이 적지 않은데, 그분들에 관한 소개도 놓치지 않고 다시 읽습니다.
김민규 전에 재직하셨던 언론사들과 규모나 형식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주요 신문과 재단 소식지는 홍보매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재단을 대표하는 매체로서 〈동북아역사재단뉴스〉가 유념할 점은 무엇일까요?
김학준 일반 신문도 그렇지만, 모든 매체에서 다루는 내용은 정확해야 합니다. 부정확한 정보나 기사는 독자들을 오도하는 것이죠. 소식지는 재단의 기록으로 남는 것이므로 정확성에 더욱 철저를 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민규 신년사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재단, 2015년을 국민에게 다가가는 해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재단이 그동안 소통에 다소 미진했다는 성찰로 들어도 될까요?
김학준 그렇습니다. 우리 재단은 수준 높은 학술기관이자 연구기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학문 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상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재단은 국민들의 큰 기대와 바람 속에 출범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만 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 뉴스〉가 국민과 재단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김민규 2012년 취임사에서 “우리 재단의 사명은 우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영토를 지키는 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김학준 재단의 목적은 우리 역사와 영토를 지키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일을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살피고, 혹여 그런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고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독도와 관련해서는 한 치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분명히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우리 재단이 독도를 지키는 최일선에 서 있는 연구·학술기관이라는 점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북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고토(故土)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 연구는 계속 해야 합니다.
김민규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시기 한국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데 직간접으로 기여하셨고, 또 지켜보셨습니다. 소회가 크실 것 같습니다.
김학준 일제 강점기가 끝날 무렵 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을 했지만, 그 때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1948년 무렵부터 기억이 나는데, 그 시절 우리나라는 정말 지독히 가난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실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죠. 초등학교 2학년 때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피난과 귀향, 1·4 후퇴는 물론 전쟁 뒤 혹독한 가난 속에서 미국의 원조 등을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그런가 하면 철저한 반일 교육을 받고, 4·19, 5·16 등을 지켜보았습니다. 이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있으면서 당시 정치 상황에 눈을 떴습니다. 되돌아 보면, 전쟁과 가난 속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오늘과 같이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으리라고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있기는 합니다. 이를 테면 빈부격차와 양극화, 사회의 이념 갈등도 관심을 쏟아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죠. 그러나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한 분들에 대한 평가를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제 발전과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제약당했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고 투쟁했던 분들에 대해 존경심을 표시해야 될 것입니다.
어떻든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대단히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성취에 긍지를 갖고, 민주주의는 더욱 공고히 하고 경제발전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서 앞으로 빈부격차가 줄어드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통일입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불안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재단의 역할이 새삼 중요합니다. 우리 재단의 목표가 '갈등을 뛰어넘어 화해' 아닙니까? 지금 한중, 한일, 중일 간 여러 가지 해소하지 못한 역사와 영토 현안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풀고 화해를 이룩해야만 동북아에 평화가 오고, 그 틀 안에서 남북관계도 훨씬 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남북관계를 안정시켜서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민규 오는 6월이면 한일협정 50년을 맞는데, 현재 한일 관계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김학준 한일관계는 반드시 좋아져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교착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외무장관 회담이나 정상회담이 빨리 열려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전제는 아베 내각이 변해야 합니다.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 같은 것들을 부인하는 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접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국민 여론이나 정서가 받쳐줘야 하는데, 아베 내각이 지금과 같이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하면 한일관계 개선이 설사 지상과제라 하더라도 한 발 내딛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아베 내각이 큰 틀에서 동북아시아가 평화와 안정, 공동 번영하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고, 역사를 퇴행시키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민규 《독도연구》라는 책을 낼만큼 독도문제에도 조예가 깊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책을 내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학준 대학 재학 시절 민족운동을 하며 알게 된 친구가 1996년 하시모토 내각 당시 독도문제가 새삼 거론되자 저를 찾아와 독도에 관한 작은 책을 하나 내자고 제안했습니다. 학술적, 전문적인 책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100페이지 정도 짧은 글을 써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책을 냈는데 주위에서는 격에 맞지 않다고도 했지만, 괘념치 않았습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격'이 문제겠습니까. 그런데 보충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1996년 초판 발행 후 세 번 쯤 증보판을 내다가, 처음부터 다시 전문적으로 공들여 쓴 책이 바로 《독도연구》입니다. 중요한 민족 문제에 나름 발언했다는 것 자체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민규 시마네현이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정한 지 10년째입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김학준 '농가성진(弄假成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난삼아 한 것이 진짜가 되어 버린다는 뜻이죠. 일본이야말로 '농가성진'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안에서도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자기네 땅이라고 자꾸 우겨서 진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잠시라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김민규 중국과는 최근 국가 차원에서도 사이가 좋고, 재단만 보더라도 중국 사회과학원과도 관계를 복원하는 등 교류와 협력이 매우 활발합니다.
김학준 한중 우호관계가 발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었다는 등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주장은 우리 한민족을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국도 자제해야 합니다. 만약 중국이 그런 동북공정 식 주장을 계속한다면 중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시각도 달라질 지 모릅니다.
김민규 한중일 관계와 동아시아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또 북한과는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요?
김학준 절대 낙관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도광양회'에서 벗어나 '대국굴기', '중국몽' 을 천명하며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고, 일본은 일본대로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자위권 등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북한도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 정세는 불안정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외교를 잘해야 합니다. 제 지론은 1960년대, 70년대는 경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국가를 끌어나갔다면, 이제는 외교를 국가 발전 1순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이기는 하나, 우리처럼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라면 외교를 아주 잘해야 합니다. 우연히 책에서 조선시대 인물 이예(李藝, 1373~1445)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항 지역 아전으로 그리 신분이 높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역량을 발휘하여 대마도와 일본에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을 송환하는데 성공하고, 여러 차례 일본을 왕래하면서 많은 외교 업적을 쌓았습니다. 앞으로 이런 외교관이 나오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재단이 직접 외교를 담당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외교부가 외교를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기관이니만큼 재단의 임직원들도 긍지와 사명감으로 역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재단의 사명과 관련지어 남북 간 학술교류가 중요합니다. 고구려, 발해 연구는 남북 학자들이 교류가 활발해져야만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 고대사 연구도 남북한이 함께 한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 학술교류가 다시 활발해지면 좋겠고, 경색된 남북관계도 학술교류로 타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민규 역사와 영토를 지키는 일은 재단의 임무만은 아닐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것이 있는지요?
김학준 역사 연구, 영토 연구는 매우 학술적이고 학문적이어야만 합니다. 지나치게 감정으로 흐르면, 정확한 역사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주변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께서 역사와 영토 문제에 관한 학계의 연구 성과를 신뢰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덧붙여 재단은 국민의 염원과 기대에 따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재단 임직원들이 이 점을 한시도 잊지 않고, 국민들의 혈세를 한 푼이라도 낭비하는 일 없도록 각별히 노력해야겠습니다. 동시에 국민의 기대에 보답하는 연구 성과가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