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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중국 사람들
  • 글 신경란 (번역가)
옌볜에 있는 한 서점
조선어문고 진열대

문고 진열대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여 처절하게 무너진 뒤에 절치부심하여 다시 강대국 반열에 오른 중국에서도 외국어 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 한때 제1외국어였던 러시아어나 현재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같은 경우 이미 여러 대학교에서 단과대학 체제 아래 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어 교육은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옌볜대학교에서만 단과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나 여러 대학교의 한국어학과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는 중이다.

중국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 대륙에는 2천 개가 넘는 대학교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명문 베이징대학교를 비롯한 100여 개 대학교에 한국어과가 설치되어 있다. 2년제까지 포함하면 약 5백 군데에 이른다고 하니 어림잡아도 해마다 한국어 전공자 몇 천 명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

한반도와 중국의 빈번했던 교류에서 더 많이 쓰인 말은 중국어였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우리 쪽에서는 고려 시대에 이미 세계 최초 외국어 회화 교재로 일컬어지는 《노걸대(老乞大)》를 엮은 바 있고, 그 뒤로도 중국어 학습 교재를 여러 종 발간했다. 학자들은 사서삼경을 비롯한 수많은 중국 서적을 암송했고, 중국어 운율을 꿰고 나서야 지을 수 있는 한시도 무척 많이 남겼다. 그런데 우리 쪽보다 덜하기는 했겠지만 중국 사람들도 오래전부터 한국어를 익혀왔다. 특히 명나라 초기에 편찬한 《화이역어(華夷譯語)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라는 사전은 고대 중국에서 관 주도로 한국어 교육을 실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준엽 선생이 시작한 중국의 현대식 한국어 교육

현대에 들어와서 중국의 대학 과정에 우리말 교육이 처음 실시된 것은 1946년의 일이다.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에 있다가 환도 후 난징(南京)으로 옮겨 갔던 국립동방어문전문대학에 한국어과가 설치된 것이 현대 중국의 대학 한국어 교육의 효시다. 초기 이 학과의 교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추천해준 사람으로 선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과 제1기 입학생 양통팡(楊通方) 현 베이징대학교 한국어과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장교 출신 김준엽 선생에게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양통팡 교수는 1948년에 이 학교를 졸업하고 김준엽 선생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유학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

공산당 정부가 세워진 뒤 이 학교는 베이징대학교에 합병되었고 김준엽 선생 등 한국인 교수는 학교를 떠나야했으며, 한국어과는 베이징대학교에서 동방어문학과의 '조선어 전공'이란 이름으로 살아남았다가 현재는 조선(한국)언어문화과가 되었다. 김준엽 선생이 떠난 뒤 북한과 옌볜 출신 학자들이 강의를 맡았다가 한중 수교 후 한국 학자들에게도 문호가 열려 끊어졌던 남한 학자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언어 보호 정책에 따라 제 언어를 가진 민족은 자유롭게 제 언어를 사용하고 교육받는다. 이에 따라 중국 조선족은 '조선어'를 사용하면서 정규 교육 과정에서 조선어를 배우고 있다. 이 조선어 교육은 이른바 '우리말' 교육이다. 이에 비해 조선족이 아닌 기타 중국 사람은 '한국어' 또는 '조선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면서 대학 등의 외국어 교육 과정을 통해 학습하고 있다.

중국 대륙에는 우리말처럼 소수민족 언어이면서 외국어인 언어가 또 있는데 몽골어와 카자흐어다. 중국에서 몽골족과 카자흐족은 인구가 많은 편이므로 몽골어와 카자흐어 교육도 제대로 규모를 갖추고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어와는 달리 두 언어를 외국어로 교육하는 일은 드물다.

개혁개방 전까지 '조선어'는 약 200만 명에 이르는 중국 조선족이 쓰는 소수민족 언어이자 북한을 대상으로 한 외국어였다. 그 시절 '조선어'는 중국의 북쪽 지방에 있는 소수 대학교에서만 가르쳤다. 그도 그럴 것이 한중 수교 이전에야 외국어로서 '조선어'는 북한과 교류할 때나 필요하니 중국 남쪽 지역에서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의 동서남북 몇 백개 대학에서 우리말을 골고루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 배우다 우리 역사문화 연구로 이어져

현재 중국에서는 한국어 전공자가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돈다. 물론 영어나 프랑스어 전공자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빈번해진 한중 교류에 힘입어 한국어를 전공하겠다는 학생이 증가해 한국어과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 전공자가 늘어나면서 통역과 번역을 넘어서 한국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는 학생의 수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 남겨진 한문(漢文)이나 각종 언해본을 탐독하는 중국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한문이 높은 곳에 달려 있는 신 포도라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고문 독해 훈련을 받은 중국 학생들에게 우리 한문 문헌은 도전할 가치가 있는 대상임이 분명하다.

사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남아 있는 한문 서적에 흥미를 느끼고 친근하게 여기는 것이야 이상할 것도 없으니,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중국의 전문가들과 경쟁하며 연구를 해야 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