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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박물관을 통해 본 동아시아 역사교육과 민족주의
  • 글 김정현 (홍보교육실 연구위원)
김정현·김지훈·신규환·하세봉 지음
2014

박물관·기념관은 대중이 역사를 집단기억하고 재구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민족주의·애국주의·사회주의적 가치를 고양하기 위한 정치이데올로기 수단으로 박물관과 기념관을 활용하고 있고, 일본의 박물관은 과거 침략 역사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고 있다.

《기억의 정치공간》은 중국과 일본의 박물관이 국가정체성과 민족주의 확대에 역사기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박물관을 통한 "기억의 정치공간"이 동아시아에서 이뤄지는 역사교육과 민족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먼저 중국과 일본의 박물관과 기념관에서 역사지식을 어떻게 유통·소비하면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자극하는지 그 과정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현재 중국과 일본에는 '기억과 기념의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전쟁 관련 기념관·박물관이 세워지고 있다. 이 기획연구는 그중에서 아래 5개 박물관의 전시를 분석하였다.

역사지식의 유통과 소비 경로

첫 번째는 중국 국가박물관의 중국 근대사 전시물을 분석하였다. 2011년 중국국가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상설전시관 '부흥의 길'은 근대 중국이 서구 열강의 침략에 '중화민족'이 저항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고, 중국공산당이 영도하여 현대 중국이 '위대한 부흥'을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이 곳은 외세 침략에 대한 민중의 자발적 저항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교과서 서술과 공통성이 있으나, 종래 혁명사와는 다르게 근대 중국의 '부흥'에 관한 지식인들의 모색을 강조하고 있다.

난징대학살기념관(평화의 여신 조각상)

두 번째는 난징학살기념관의 건립과 애국주의·평화교육이다. 난징대학살은 일본군이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6주 동안 난징에서 중국인을 잔인하게 유린한 사건이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난징시는 1983년부터 '피로 얼룩진 역사를 영원히 난징의 대지에 새겨두자'는 취지로 기념관을 건설하여 항일전쟁 승리 40주년인 1985년 8월 15일 개관하였고, 2007년 신관을 지어 확장하고, 우리나라 기념관과도 교류하고 있다. 앞으로 난징학살을 둘러싼 중일양국 역사인식의 이견과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화교육을 통해 서로 다른 역사체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중국 하얼빈에 있는 731부대(侵華日軍 第731部隊罪證陳列館)를 중심으로 세균전에 관한 기억을 항일 역사교육과 민족주의 교육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731부대 진열관은 일제의 잔악상과 단순한 피해자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인류 보편의 양심과 가치를 떠올리며 세계평화가 최고 가치라는 점에 주목하도록 하였다. 또 일본, 한국등에서 731부대 특별전을 개최하여 동아시아인들의 역사적 기억 속에서 일제 만행에 대한 공감대를 끌어내는 등 동아시아 민간교류와 연대의 가능성을 계속 타진하고 있다.

네 번째는 중국 단동의 '항미원조(抗美援朝)기념관'과 열사능원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에 관한 기억과 기념활동을 분석하였다. 기념관은 '정의롭고 승리한 전쟁'의 이미지를 전시하며, 애국주의 교육과 혁명영웅주의를 강화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전쟁포로와 희생자를 애도하고 추모하거나 전쟁 반대와 평화 호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냉전 시대 유산이라는 점에서 현재 중국의 달라진 국제 위상이나 정체성과 모순된다.

다섯 번째는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적 시점에서 본다'는 주제를 설정한 규슈국립박물관의 동아시아 역사 전시를 분석하였다. 최근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문화와 아시아의 관계를 규슈국립박물관이 어떻게 표상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글은 지방사(local history), 국가사(national history), 지역사(regional history)라는 3가지 분석 시각을 세우고, 일본의 역사 연구와 전시 사이 관계를 살펴보았다. 규슈국립박물관은 대주제가 '바다의 길, 아시아의 통로'이지만, 표류기나 왜구등 해로에 관한 전시가 없다. 이곳에는 임진왜란이나 제국주의 시대 전시물은 빠져 있다. 이것은 일본학계에서 해역사 연구가 전근대에 치중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평화를 향한 교육과 교류의 장

기획연구 결과 중국국가박물관의 전시를 다룬 논문은 중화주의와 중국 민족주의 고양에 따른 중국 정부 정책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해 준다. 중국은 난징에서 학살당한 희생자 30만이라는 수로 대결하거나 731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잔학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인류 보편의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세계에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중국의 평화기념관은 대규모 건물을 세우거나 애국심만을 강조하는 공간이 아닌, 과거 역사가 이후 미래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지 연구하고,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는 공간이자 평화연대를 추구하는 기념관이 되어야 한다.

단동에 있는 항미원조기념관 분석에서 우리는 중국에서 한국인식이 형성되는 과정의 오류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정정 요청하는 데 이 연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규슈국립박물관에 나타난 동아시아 역사 전시내용 분석에서는, 한국의 박물관이 타자(동아시아)를 어떻게 전시하여야 하는지 그 해답을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염원하는 역사교육과 교류의 장으로 박물관을 적극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