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뉴스>가 과거 역사의 현장이었던 장소를 찾아 의미를 되새겨 보는 '유적 탐방' 코너를 마련하였습니다. 특별히 2015년에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적 장소를 찾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_ 편집자 주
서대문 교차로를 지나 인왕산 방면으로 걸음을 옮기면 독립문 사거리를 지나기 전 왼편으로 영천시장이 보이고, 그 앞 우리은행 도로에 놓인 작은 표지석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독립관터'로 명명된 이곳은 1896년 서재필 등에 의해 설립된 독립협회가 사무실 겸 집회장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독립관은 원래 영은문(迎恩門)을 지나 조선에 들어온 중국의 사신들을 영접하던 모화관(慕華館)을 개보수한 곳이다. '영은(迎恩, 은혜를 맞이함)'이나 '모화(慕華, 중국을 사모함)'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청일전쟁 이전까지 중국을 상대로 한 사대외교가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상징적 건물 중 하나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 조선땅에서 세대결을 벌이기 시작한 열강은 러시아와 일본이었다. 당시 개화파에 속했던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상재, 이승만을 비롯해 정부 관료였던 이완용(후에 탈퇴) 등은 서구 문물을 적극 수용해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해 1896년 7월 독립협회를 결성 하기에 이르렀다.
독립협회는 영은문(지금은 기둥을 받치던 주춧돌만 남아 독립문 옆에 세워 두었다)을 헐고 독립문을 세움과 동시에, 모화관을 고쳐 지은 뒤 '독립관(獨立館)'이라는 순종의 친필 현판을 내걸었다.
독립관은 1897년 5월 현판식을 거행하고, 11월 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시국 강연과 토론회 장소가 되었다. 독립협회는 1896년 4월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독립신문〉과 더불어 독립관을 이용해 애국 계몽과 민족 자강을 역설하고, 지식인들이 모여 의견을 교류하며 대중에게 전파하면서 점점 여론을 주도하는 사회단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외국인 고문과 교관 초빙 반대, 지하자원 이권 양여와 철도 부설권 이전 반대 등의 구체적인 내정개혁안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1898년 종로에서 회원 8천여명이 모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해 시국 관련 6조 개혁안을 고종에게 주청하기도 했다.
이렇듯 독립협회의 활동과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자, 이들의 세력이 급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한 정부 관료와 수구 세력은 독립협회를 무고하게 탄압하여 간부들을 체포하였으며 어용단체인 황국협회를 조직해 회원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결국 독립협회는 1898년 말 황국협회와 함께 강제 해산되었으나, 독립협회의 자주 정신은 만민공동회를 거쳐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단체인 독립협회의 활동은 고작 2년 남짓 존재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독립협회 해산 이후, 측량조합 강습소 등으로 전용되던 독립관은 일제 강점기에 강제 철거되었다. 그러다가 1989년 서울시가 독립공원 조성계획을 세우면서 복원된 뒤 현재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사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자료 : 독립관 - 독립기념관 '국내독립운동 사적지 배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