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첫 발을 내딛은 <동북아역사재단뉴스>가 지령 100호를 맞았다. 100일, 100점, 100%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게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8년 4개월 동안 매월 꾸준히 독자와 만남을 가져온 뉴스레터 또한 이제 한 단락을 짓고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해야 할 때다. <동북아역사재단뉴스>가 그간 걸어 온 길을 '숫자'로 되짚어 본다. _ 편집자 주
나무가 껍질을 벗고 새싹을 틔우며 냇물이 어제보다 깊고 넓은 물길을 열어가듯, <동북아역사재단뉴스>도 더 나은 소식지가 되기 위해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었다. 우선 형태는 2006년~2008년까지 무선 제본 형식을 취하다가 2009년 2월부터 중철 제본 형식으로 변경·발행되고 있으며, 책의 얼굴인 표지도 재단의 학술적 이미지를 살려 고대 벽화, 역사 유물, 우리 영토 사진 등을 주제로 장식해 재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겉모습뿐 아니라 내용 또한 초기 재단 소식과 사업·발간자료 소개 중심에서 인터뷰 ('역사로 미래로')와 인물 소개 ('동아시아 역사인물'), 지식 전달 ('역사 Q&A')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더하고 있다.
처음 20쪽 분량, 700권으로 발간하기 시작한 뉴스레터. 2011년 1월호부터는 24쪽으로 지면을 늘리고, 한때 1,200부까지 발간되다가 현재 매월 1,000부를 발간하고 있다. 100호까지 발간된 지면을 모두 합치면 총 2,324쪽에 이른다. 그동안 발간된 책 106,300권을 쌓으면 약 150m에 이르니 어지간한 초고층 빌딩 높이를 훌쩍 뛰어 넘는 높이다.
<동북아역사재단뉴스>는 재단의 소식과 관련 세미나, 발간 자료와 연구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다 보니 아무래도 외부 필자 보다 내부 필자들의 원고가 많다. 하지만 바쁜 업무에 쫓기는 직원들에게 뉴스레터 원고 청탁이 늘 반가운 과제는 아니었을 터. 그럼에도 언제나 싫은 내색 없이 기꺼이 청탁에 응해준 많은 필자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재단 장세윤 연구위원은 무려 열 아홉 차례나기고한 단골 필자다. 역사 에세이, 역사 Q&A, 동아시아 역사인물 등 다양한 코너를 넘나들며 원고를 써준 장세윤 연구위원의 간략한 소감을 들어보자.
"뉴스레터 원고 청탁이 부담스러울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최다 기고자로 선정되니 우선 영광스럽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뉴스>는 재단의 업무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매체이기 때문에, 비록 원고료도 없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보람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원고는 2014년 3월에 쓴 '동북아 읽기 - 오늘에 되새겨보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입니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까닭도 있지만 워낙 무게감이 실리는 코너에 들어가는 글이라 한자한자 의미를 새기며 썼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앞으로 <동북아역사재단뉴스>가 보다 발전된 매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 원고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또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발효를 거쳐 깊은 맛을 내는 청국장처럼, <동북아역사재단뉴스>에도 창간호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장수 코너가 있었으니... 바로 '역사 에세이' 코너다. 김일권 전 연구위원이 쓴 '고구려 벽화 속의 삼족오와 두꺼비의 의미'를 시작으로, 100호까지 오는 동안 코너 명 한 번 바뀌지 않은 채 총 81개의 옥고가 '역사 에세이'의 지면을 장식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여러 필자의 견해를 담을 수 있는 코너였기에 가능했던 일일 터. 그동안 역사 에세이를 빛내주신 필자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의미 있는 역사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