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한·일 두 나라가 2005년을 새 시대, 새 천년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삼자고 선언한 지 10년이나 지났건만 두 나라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두 나라는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후 2005년을 '한·일 우정의 해'로 잡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그해 초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에서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고, 문부과학성에서는 극우파 역사교과서를 원안대로 검정 통과시켰다. 그 결과 '우정의 해'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렸다.
10년이 지난 올해는 한·일 수교 50년이 되는 해다. 양국 정상이 취임한 지 3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정상회담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하루 1만 명 이상이 서로 오가는 시대에 한·일 두 나라 역사 시계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 그동안 두 나라가 쌓아온 역사적 경험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한심한 일이다. 이는 모두 역사에 무지하고 무관심해서 비롯된 상황이다. 이제라도 역사를 제대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갈수록 악화되는 한·일 관계를 개선할 실마리는 바로 역사 속에 있기 때문이다.
2010년, '국권 침탈 100년'을 맞아 KBS와 NHK에서는 지난 2천 년간 한·일 관계 일면들을 소재로 특집 방송 '한국과 일본'을 제작했다. 이때 필자는 마치 조선통신사가 된 기분으로 두 방송국을 오가며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고, 두 방송사 제작진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숙주가 한 유언처럼 한국과 일본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공생'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서로 '소통'을 해야 한다.
우호와 적대는 별개가 아닌 한 몸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였다. 필자는 2천 년의 한·일 관계를 '인연(因緣)', '적대(敵對)', '공존 (共存)', '시련(試鍊)', '재회(再會)' 이렇게 5개 열쇠말로 짚어 보고 싶다.
고대 일본문화의 근간인 '야요이(彌生)' 문화는 벼농사와 철기를 가지고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다. 일본 최초 고대 국가 '야마토(大和)' 왕조는 백제와 긴밀하게 교류했다. 그러나 고려와 몽골에게 본토를 공격당한 후, 일본은 한국을 응징해야 할 '적대국'으로 보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왜구의 노략질과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본을 '불구대천 원수나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양국은 조선통신사가 왕래하면서 약탈시대를 공존시대로 바꾸었고,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시대를 평화시대로 바꿔 공존과 공영(共榮)을 누렸다.
그러나 서구의 동양 침탈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6년간 일제 강점과 탄압은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멍에로 남았다. 그래서 국교를 정상화하며 재회한 지 5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많은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재회를 어떻게 할지 너무 중요한 시점이다.
한·일 관계 2천 년을 돌아보면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우호와 적대는 별개가 아닌 한 몸'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적대적인 상대라도 관계를 끊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상대가 그런 나라로 느껴질수록 적극적, 능동적으로 관계해야 한다. 5백년 간 조선에서는 적대를 적대로 되갚지 않고 조선이 주도하는 교린(交隣)정책으로 약탈을 공존으로 바꾸고, 전쟁을 평화로 바꾼 것이다.
한국에게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이며 '멀고도 가까운 나라'다. 일본이 한국에게 멀게 느껴지는 때일수록 교린의 의미를 되새기며 먼저 나서보자.
역사 대화 재개가 유일한 방법이다
최근 동아시아 정세를 보면 한·중·일은 각자 전략적 이익에 역행하면서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을 도와주는 엉뚱한 외교를 하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 전략에 위협감을 느낀 일본 정부가 보통국가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시아 외교를 정상화하는 것보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과거사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어정쩡한 아베 총리는 한국과 중국을 가깝게 만들었다. 중국과 맞서기 위해 전략적으로 한국을 끌어안아야 할 일본이 거꾸로 한국을 중국 품으로 밀쳐내는 역설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자각은 있으면서도, 일본이 먼저 반성하지 않는 한 일본에 다가서려고 하지 않는다. 수없이 반복했던 반성과 유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로만 반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질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한·중·일 삼국이 서로 적대하며 상충하는 상황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선시대 중국으로 연행사(燕行使)가 가고, 일본으로 통신사(通信使)가 왕래하면서 평화를 유지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자.
국가관계를 우호관계로 발전시키는 데는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역사, 제도, 국제 상황, 리더십이다. 역사를 묻어버리면 수정된 상호작용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없다. 제도는 대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속하는 수단이며, 국제 상황은 다자나 양자 형태를 만들어 간다. 무엇보다 리더십은 비전을 지녀야 하며, 국내 여론을 이끌어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역사 문제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역사 대화를 계속해가고, 한편으로 한·중·일 지도자들이 삼각협력체제를 만들며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한다.
올해는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년이 되는 해다. 삼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믿음을 쌓아가면서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대립 구도를 강화하는 방법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이제라도 삼국의 지도자들이 과감하게 리더십을 발휘하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새 출발의 해'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