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중국 옌지(延吉)에서 제2회 일본군'위안부' 문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학술회의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것으로 한국과 중국, 북한 그리고 일본에서 30명이 넘는 학자들이 참가하였다. 그간 한일이나 한중일의 학자들이 참가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학술회의는 종종 있었지만, 북한 학자들까지 참가하는 학술회의는 최근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학술회의는 연변대학 과학기술청사 제4회의실에서 개최되었으며 3개의 세션에서 모두 12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한국 측 발표자로는 윤명숙 충남대 책임연구원과 재단의 남상구 연구위원, 필자가 나섰고, 중국 측에서는 수즈량(蘇智良) 상하이(上海)사범대 교수와 김성호, 이홍석 연변대교수, 자오위제(趙玉潔) 지린성(吉林省)당안관 연구원, 왕위창(王玉强) 지린대 교수가 발표했다. 북한에서는 김철남 조선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실장과 리철홍, 서정호 연구사가 주제 발표를 했으며, 일본 도쿄(東京)외국어대의 김부자 교수도 보고했다.
12편의 발표문들은 다루는 세부 주제에 따라 크게 두 범주로 나뉘었다. 하나는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측면을 다룬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이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국내외 동향과 과제를 검토한 것이었다. 수즈량 교수의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 직영 군위안소 관련 연구 - 상하이 양자자이(楊家宅) 일본군 위안소를 중심으로'와 자오위제 연구원의 '중국 동북지역의 관동군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관한 연구', 리철홍 연구사의 '조선에서 발견된 일본군 위안소와 성노예 범죄의 진상'이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다. 김부자 교수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사회와 아사히신문 문제', 김철남 실장의 '과거의 성노예 범죄를 부정하는 일본의 리면세계와 국제사회계의 과제', 남상구 연구위원의 '아베총리의 역사인식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왕위창 교수의 '미국 국회의 '위안부' 문제 관련 입법 활동에 관한 연구' 등이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자료 발굴에 주목, 논의 진척 기대"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측면을 다룬 논문 중에서 특히 자오위제 연구원의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자오위제 연구원은 지난 해 지린성당안관이 소장한 관동군헌병대사령부와 만주중앙은행 등의 문서에서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25건 발굴하여 공개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이러한 공개 자료에다가 새로 발굴한 자료를 추가하여 중국 동북지역에 설립된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특징을 분석하였는데, 1942년 4월 6일 신경(현재의 장춘(長春﹚) 주둔 관동군사령부가 소속 부대에 통첩을 하달하여 4월 8일 개업을 통지한 '신경군인집회소'는 신경주재사령부에 전속된 군대가 직접 관리하고 민간청부업자가 경영한 관동군 위안소라고 주장하였다. 발표의 주요 근거가 된 세 가지 새로운 발굴 문서의 내용이 보다 상세히 공개된다면 더 깊은 토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리철홍 역사연구소 연구사는 1928년 나남 19사단장과 헌병대장, 도지사 등의 논의에 따라 나남 풍골에 일본군 위안소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라고 주장하였다. 이 외에 청진의 방진 위안소, 회령 위안소 등 일본군 19사단 관할 구역 안에 있던 3개 위안소가 조선의 대표적인 위안소임이 1999~2008년 사이 조선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진행한 현지 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고 말하였다. 풍골 위안소가 1928년에 설치되었다는 발표 내용은 일본군 위안소가 1932년 상하이에 최초로 등장했다고 보는 현재 학계의 일반적인 이해와는 다른 것인데, 발표문에서는 자료적 근거를 밝히고 있지 않아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도쿄외국어대의 김부자 교수는 2012년 말 제2차 아베 내각이 들어선 후 '위안부'에 관한 일본군의 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일소하려는 일본 현지의 상황에 대해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작년 8월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 증언 관련 기사 취소와 그에 뒤이은 정부와 언론 등의 아사히신문 공격, 공격에 직면한 아사히신문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 "'위안부' 보도 검증 제3자 위원회 보고"의 문제점, 우파적 '위안부' 담론과 동일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아사히신문 등 진보계열 미디어의 긍정 평가에 대한 우려 등을 표명했다.
참여 학자들 '역사적 사실' 외면하는 일본 정부에 비판
9시 5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무려 12개에 이르는 주제 발표가 끝난 후 4시 20분부터 시작된 종합토론에서는 참석자들 간에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인신매매와 인구판매라는 용어를 둘러싼 논의가 있었으며, 요시다 세이지 증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의견이 활발히 개진되었다. 토론 과정에 북한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위안부' 관련 동향에 관해서는 참가국 연구자들이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일본군'위안부'는 본질적으로 성노예이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와 사회의 인식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피해자의 증언과 일본군 문서 등 자료들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은 일본군이 만든 위안소에서 여성들에게 성 행위를 강제했다는 점인데, 이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 태도에 비판을 같이 했다.
이번 일본군'위안부' 국제학술회의는 올해 처음 일본에서도 참가해 그 폭이 확대되었고 논의의 수준도 깊어졌다. 어느 나라든 '위안부' 연구의 역사가 짧고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에 용어의 상이함, 개념 불일치, 인식의 편차 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학술회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다. 학술회의 개최를 지속하여 새로 발굴한 자료를 공유하고 관련 논의를 계속한다면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진상이 보다 명확해지고 각국 연구자들의 인식의 심화가 집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개최 장소도 연길을 벗어나 서울과 평양, 베이징(北京), 도쿄 등으로 확대해 동아시아 학계의 일본군'위안부' 연구가 보다 촉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