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에 체결한 한일협정은 지난 50년간 한일관계의 법적 토대로 기능해 왔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의 공과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겠으나 법률 문서로 이루어진 역사 자료이므로 역사적 해석방법과 법적 해석방법으로 조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에 따르면 역사는 어제의 역사적 사실을 오늘의 관점에서 해석하되, 앞뒤로 인과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1965년 한일협정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이에 맺은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일협정체제가 50년간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미친 영향, 식민지배 청산에 미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아야 할 것이다.
반사실적 추론으로 살펴보는 한일협정 체제
그런 방법과 병행하여 반사실적(反事實的, counterfactual) 추론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이 '반사실적 추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1965년 한일협정을 놓고 "그때 협정을 그렇게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 또는 "그때 협정을 그렇게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나은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추론해 보는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의 인과관계 고리를 1965년 이전으로 돌려보면, 1951년부터 1965년까지 제1, 제2, 제3공화국이 치열하게 일본과 교섭했지만 식민지배에 관하여 일본을 단죄하지도 못했고 응분의 배상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그리 된 것은 2차 세계 대전 후 세계질서 구조를 이루는 요인들이 복합 작용했을 것이다. 전승국들은 침략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받아 놓고도 일본을 관대하게 처분하는 샌프란시스코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했고, 줄기차게 대일항전을 했던 우리나라는 전승국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냉전체제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은 각각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자유진영의 최전선에 서게 되어 국교를 정상화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교섭하고 체결한 한일협정이 과연 실현 가능한 최선의 것이었는지, 협상을 더 오래 끌면서 끝까지 노력했더라면 그보다 나은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을 지에 관하여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평가가 역사적 해석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1965년 한일협정의 태생적 한계
조약에 관한 법적 해석에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같은 동태적 해석은 없다. 조약 체결 당시에 당사국이 이룬 합의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조약을 해석하는 기본 원칙이며, 당사국 간 합의의 결정체인 조약 문안은 새로운 합의로 개정되거나 조약에 정한 절차에 따라 종료되지 않는 한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약의 '발전적 해석'이라는 방법을 국제법정이 적용한 사례도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상황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다. 1965년 한일협정은 내용이 불충분하고 문안이 명확하지도 않기 때문에 오늘까지 해결하지 못한 한일 간 법적 문제가 있다. 협정을 불완전하게 체결한 원인을 당시 우리 정부의 교섭능력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국제법 질서에서 찾아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고, 대한민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사국이 아니었다. 조약에 관한 국제법이 성문화되지 않았고, 관습법은 명확하지 않았다. 유엔은 탈식민화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경주했지만 식민지배를 청산하는 국제법 규범을 만드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전후처리 조약에서 개인의 전시 피해는 구제하지 않았고, 2차 세계 대전 후에 비로소 이 문제를 다루었으나 하나하나 확인해서 처리하는 것이 당시로는 불가능하여 일괄처리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였다. 이처럼 불완전했던 당시 국제법 질서에서 한국과 일본이 불행한 과거를 말끔하게 청산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아무 결함이 없는 협정체제를 마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협정의 골간을 유지하면서 당사국 간 합의로 보완해야
한·일 두 나라 역사 속에서 두 나라 관계가 최근 50년보다 더 좋았던 시대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본다면 1965년 한일협정 체제가 역사적 사명을 그런대로 잘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일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한 데는 한일협정 체제의 불완전성이 요인 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조약으로 이루어지는 국가들의 협력 체제를 재건축하듯 한꺼번에 허물고 새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협정체제의 골간을 유지하면서 보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당사국 간 합의가 필요하며, 일방적으로 재해석해서 보완할 수는 없다.
1965년 한일협정 체제는 이미 한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한 축인 한일어업협정은 국제해양법 체제 변화에 맞춰 1999년 새 협정으로 대체하였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국제법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 한일수교 50년을 맞아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심층 점검하는 계기는 되지만, 50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제법 질서와 국제정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협정 체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거나, 협정 체제의 결함으로 중대한 문제가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하며 그러한 작업은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