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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폭 넓은 관점이 필요하다"
  • 진행정리 우성민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지난 8월 27일 재단에서는 "동아시아의 해양사 국제학술워크숍"이 열렸다. 이 행사는 한국사를 세계 학계에 알리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마련하였으며, 특히 이번에는 해양사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동아시아사를 해양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해양사 연구의 위상과 성과를 살펴보았다. 행사에 참여한 야마우치 신지 교수를 재단의 우성민 연구위원이 만나 해양사 관련 연구 동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_ 편집자 주

야마우치 신지(山内晋次)

1961년에 출생하였다. 오사카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박사후기과정을 수료하였다. 오사카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조수, 같은 대학 준교수를 거쳐 현재 고베여자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해역아시아사, 일본 고대·중세사이며, 주요 저서로는 《나라 헤이안시기 일본과 아시아(奈良平安期の日本とアジア)》, 《일·송 무역과 '유황의 길'(日宋貿易と'硫黄の道')》, 《해역 아시아사 연구입문(海域アジア史研究入門)》 등이 있다.

우성민 최근 한국 학계에서 해양사는 유행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일본이 '해역사' 연구에 집중한 반면, 한국은 '해양사' 위주다. 한국에서 해양사 연구와 해역사 연구는 상호 보완적이다.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어떤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해역사와 해양사에서 다루는 '교류'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야마우치 신지 해역사나 해양사 모두 영어로 번역하면 'Mari time History'지만, 일본 학계에 '해양사'라는 말은 없고 주로 '해역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두 용어 차이를 살펴보면 '해양사'는 바다 세계와 그 연안부에 한정된 범위만 검토 대상으로 보는 반면, '해역사'는 바다를 역사의 주축으로 보면서도 바다와 연안부라는 범위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륙세계까지 동시에 포함한 넓은 공간을 역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따라서 '해역사'에서는 중앙 유라시아라는 대륙 내부세계도 포함한다. 그 세계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양 해역세계와 관련 상황을 비교 고찰하는 형태로 모두 검토하는 것이다.개인적으로 '해양사'보다는 '해역사'라는 용어와 개념이 더 매력적이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양사'와 '해역사'의 역할 분담은 따로 없다고 본다.

우성민 최근 중국 학계에서도 세계사 관점에서 중국과 주변 나라들의 관계사를 보기 위해 변강과 해역, 중국과 주변 국가의 교류와 상호작용 같은 의제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뿐 아니라 국제 학계에서 거쟈오광(葛兆光) 교수의 《이역(異域)을 상상하라:조선의 한문 연행 문헌 읽기(想象异域:读李朝朝鲜汉文燕行文献札记)》가 주목받고 있는데 이런 중국 학계의 새로운 연구동향을 일본학계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야마우치 신지 최근 중국에서 수중 고고학을 포함한 '해양사'에 관한 연구 결과를 잇따라 발표하거나 조선, 류큐, 베트남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과 지역 관계사 관련 사료집이 계속 간행되는 것을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매우 반기고 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와 같은 연구 진전이나 사료 정비를 해양을 포함한 중국의 국가패권 확대에 기여할 목적으로 추진한다면, 이는 우려할 수밖에 없다. 중국 학계에서 이뤄지는 연구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중국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대화해야 한다.

우성민 중국 학계에서는 서구 학계에서 만든 학술개념이 동아시아의 절대 표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서구 중심 유럽사에 도전하는 것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중화주의, 중국 중심주의라는 우려도 있다.

야마우치 신지 분명 기존에 나와 있는 세계사나 역사학의 고찰 방식이 지나치게 서구 중심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결과, 실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아시아 역사상이 그럴듯하게 제시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서구 중심 역사상, 역사학에 대항하여 아시아 중심이나 중국 중심 역사를 주장하는 것이 곧바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상을 제공하는 것일까? 이러한 역사학은 기존 서구 중심 역사상에 반격을 가하는 것이겠지만 결국은 여전히 실제와는 거리가 먼 중화주의적 역사상을 만들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면 더 본질적으로 애초에 역사를 어느 국가나 지역, 민족을 중심으로 그려야 하는 것일까? 중심이 없거나 분명하지 않은 역사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역사를 통해 해상무역을 하는 사람이나 뱃사람과 같은, 지배자나 권력자가 아닌 일반 서민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배자부터 일반 서민까지 널리 포함한 실제에 가까운 역사상을 복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성민 동아시아 해양사 워크숍에서 발표한 '동아시아 해역론'에 관해 질문하자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역을 비교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바다는 '통제', '지배'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동남아시아에서 바다는 '개방성'이 더 높았다고 했는데 그렇게 본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식 세계 질서인 천조예치(天朝禮治)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야마우치 신지 그와 같은 관점으로는 전 도쿄대학 하마시타 다케시(浜下武志) 교수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많은 중국사 연구자들이 펴고 있는 의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 문헌 사료를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중화사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동남아시아 관련 문헌 사료에서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향후 계속 연구해서 밝혀야 할 부분이다.

우성민 고려와 송나라는 무역 상인들이 다양한 국가 의례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왕과 중국 상인들이 대면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하면서 일본 왕권의 폐쇄성을 언급한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처럼 일본 왕권이 폐쇄적이었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야마우치 신지 송과 고려 모두 왕과 상인들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개방성을 의미하는데, 일본에서는 왕이 상인들을 만나 준 사례가 없으며 오히려 돌려보낸 사건이 있었다. 이는 주변국과 다른 일본의 지리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사 연구자들 사이에도 아직 연구 성과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우성민 국가 중심 무역이 일방적으로 발달한 후에 밀무역, 사무역이 공무역을 따라 발전했다는 종래 무역사 연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서 세계사를 놓고 비교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야마우치 신지 기존 학계의 통설은 정치사 관점에서 경제사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정치와 경제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또 그동안 송·원 시대 사료를 통해 중국식 사고가 중심을 이룬 내용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동남아시아와 다른 지역의 문헌 사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 나라에 남아있는 사료들을 세계사의 관점에서 활용하면, 자국사 중심으로 연구할 때 발생하는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존과 다른 학설을 정립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우성민 동아시아 교류와 해역사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 견수사, 견당사, 견신라사, 견발해사를 상호 비교 연구하는 한·중·일 학계에 차이가 있다면?

야마우치 신지 한·중·일 학계에 큰 차이는 없다. 각 나라 학계마다 자신들의 관점에서 다양한 역사 사실(史實)이 분명해지고 있다. 다만 각각 새로운 사실을 해명하는 것 이상으로 주변의 다양한 국가와 민족들이 수나라나 당나라에 파견했던 '견수사', '견당사'를 비교사 방법론을 이용해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아직 남아있는 중요한 연구 과제 중 하나라는 점이다.

우성민 교수님의 논문 '해역세계의 환경과 문화'에 소개된 '전근대 동아시아 해역의 항해신앙'을 보면 해상 경계에 관한 내용을 고대, 중세 일본 사료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 고대 법률규정에 동아시아 해양 경계에 관해 언급한 사례가 있는가?

야마우치 신지 일본 율령에 바다의 국경과 경계에 관한 규정은 없다. 일본 율령의 모체인 당 율령에도 그와 같은 규정은 없다. 이유는 당 제국이든 일본이든 당시 지배층들이 자신들의 세력 범위를 해역으로까지 넓혀 구체적으로 확정하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런 정치사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륙사와 마찬가지로 해역에 관해서도 자국의 세력 범위를 선으로 구획하려는 사고방식 자체가 근대 국가의 발상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해상경계 의식을 증명하는 자료를 전근대 사료에서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만 항해신앙 관련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사실 '자신들의 세계'와 '타인들의 세계(이계(異界))'라는 경계를 해역 속에서 막연히 느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헤이안시대에 쓰인 한 사료에 따르면 일본의 율령국가는 쓰시마 섬과 한반도 사이 바다를 막연히 경계로 생각했다고 추측한다. 아마 일본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라는 약간 특수한 조건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나마 바다의 경계를 인식하기 용이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우성민 실크로드 연구부터 해양 연구까지 외교, 무역, 교류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깊이 있게 연구한 배경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프로젝트와 같이 거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일본사를 이해하기 위한 접근인가?

야마우치 신지 일본 고대사부터 역사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넓은 관점에서 나라시대(8세기) 일본을 고찰하려 했고, 당대 외교문서의 서식에 나타나는 당 왕조의 국제질서 인식과 그 질서 속에서 일본의 지위를 검토했다. 결론은 당나라시대 중국은 나라시대 일본을 전혀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중국과 일본은 훨씬 전부터 상대를 의식하면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결론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때 비로소 역사를 더 넓은 관점에서 사고하여 이제까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 후 주제를 10~13세기 일·송 무역으로 옮겨 외교 말고도 무역이나 문화교류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이 연구도 한반도,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지역까지 포함한 더욱 넓은 시공간을 놓고 일·송 무역 문제를 다시 다뤄보려고 했다. 최근 들어서는 '동아시아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상대화하는 데도 그런 넓은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통감하고 있다.

우성민 일본 학계 해역사 연구자들과 중국 학계, 구미 학계 연구자들의 학술교류 동향은? 예를 들면 '영파(寧波:Ningbo) 프로젝트'와 같이 어떤 지역들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소개해달라.

야마우치 신지 '해역교류'라는 분야만 보면 영파 프로젝트 이후 중국과 서구학계가 참여한 학술 교류 프로젝트는 유감스럽게도 없는 것 같다. 다만 도쿄대학 하네다 마사시 교수(羽田正, 동양사)가 추진하는 '세계사 프로젝트'나 오사카대학 아키타 시게루 교수(秋田茂, 서양사)가 하고 있는 '글로벌 히스토리 프로젝트'에서 중국이나 서구 학계와 적극 교류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일본의 많은 해역사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영파 프로젝트' 후에는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주로 16세기 이후 근대와 현대의 해역사 연구를 더욱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