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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정창원 : 역사와 보물》 고대의 타임캡슐 '정창원'의 역사와 보물
  • 글 연민수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최근 재단에서 스기모토 가즈키(杉本一樹)가 쓴 《정창원 : 역사와 보물》(中公新書, 2008)의 한글판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일본 쇼소인(正倉院, 이하 정창원)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의 실태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고대 자료가 한 공간에 수장된 배경, 보존과 관리, 물품의 유래, 연구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으로, 정창원에 관한 우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매우 유용하다. 저자는 정창원에서만 30년 넘게 근무하여 누구보다 이곳을 잘 아는 전문가이며, 현재 정창원 사무소장을 맡고 있다.

정창원 소장품의 유래와 관리 체계

정창원은 일본 나라시에 있는 쇼무(聖武) 천황이 창건한 동대사(東大寺)의 부속 건물이다. 756년 5월 2일 쇼무 천황이 사망하고 49재 법회가 열렸다. 이날 고묘(光明) 황후는 남편 쇼무 천황이 생전에 애용하던 물품 600여 점과 약물 60여 종을 동대사 비로자나불에 바치고, 그후 세 차례에 걸쳐 추가로 자신과 쇼무 천황 유품을 헌납하였다. 이것이 정창원이 보물을 소장하게 된 연유다. 헌납 물품은 헌물장이라 불리는 5개 문서에 명칭, 수량, 크기, 재질, 기법 그리고 물품 유래까지 기록하여 소장 물품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이곳에는 일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산 물품도 소장하고 있다.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예술품으로 가치가 높은 공예품들은 대부분 신라와 당에서 건너 온 물건이지만, 저 멀리 동남아, 인도, 페르시아, 로마에서 만들어진 유물도 있다. 특히 1300년간 지하에 매장된 일 없이 지상 건축물에 보관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타임캡슐이라 해도 좋을 만한 세계적인 유물창고다. 정창원의 소장품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출납 후 이런저런 이유로 되돌려 받지 못하거나, 분실한 물품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국가가 엄격하게 칙봉장 체제로 관리하였기 때문이다.

정창원 건물, 현재는 현대식 건물로 이전하여 보관중이다.

저자는 정창원 유물을 4개 군으로 분류한다. 먼저 최초 다섯 차례 헌납 받은 물품을 A군으로 분류하는데, 이것이 정창원 보물의 핵심이다. B군은 동대사에 원래 있던 것들로 부속 창고인 정창원이 소장하고 있던 물건들이고, C군은 동대사 건립을 위해 설치한 조동대사사와 그 밑에 소속된 사경소와 관련 있는 물품이다. 이것들은 원래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폐품 같은 것들이 방치되어 있다가 우연히 전해진 것이다. D군은 동대사의 탑두였던 존승원 경장에 전래된 5천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불교경전이다.

정창원 보물은 메이지시대에 상세한 고증을 거쳐 《정창원 어물 목록》으로 최종 정리되었다. 현재 등록된 물품 수는 9천여 점에 달하는데, 이 유물들은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되고 있다. 첫째 유래에 따라 북창(헌물장, 헌반보물), 중창(무기, 문서, 문방구류 등), 남창(동대사 자재류), 성어장경권(불교경전)으로 구분하였다. 둘째 용도, 셋째 제작기법, 넷째 재질, 다섯째 장소와 시기에 따른 분류로 언제, 어디서 제작되었다는 탄생 정보를 담고 있다.

저자는 보물의 관리, 운용 실태에 관해 756년 최초 헌납부터 856년까지 100여 년 동안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헌물장은 물건이 창고에 처음 들어간 시점부터 물건이 이동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얼마만큼, 어떤 이유로 이동하였는지를 기록하고, 그 이동을 명한 명령서도 별도 파일에 철해놓았다. 또 현장에서는 용기마다 무엇이 들어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고, 복수로 사본을 만들어 용기에 직접 붙이거나 정보를 집약하는 부서에 보낸다. 이것은 유사시에 대비하는 문서관리 체계로 보인다. 이어 헤이안시대부터 에도시대에 이르는 1천 년간 정창원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예컨대 그 시대 유력자들이 정창원을 참관, 수리비 지원, 보물을 담는 각종 용기 기부, 정창원에 들어온 도둑을 잡는 과정 등 다양한 정보들을 기록하고 있다. 끝으로 메이지 이후 현재에 이르는 정창원 보물의 관리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고묘황후가 동대사에 헌납한 물품을 기록한 국가진보장

폐기물에서 1급 사료가 된 《대일본고문서》

우리에게 익숙한 정창원 문서는 고묘 황후의 황후궁직과 동대사 사경소 등에서 작성한 것이다. 율령제가 충실하게 수행되던 8세기 나라시대 공문서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폐기처분하고, 하급기관에서 이면지로 재활용하였다. 이 문서철이 칙봉 체제에서 창고 한쪽에 폐기물 형태로 방치되었는데, 천보 4년 (1833)에 발견되어 3년에 걸쳐 《정창원문서》 중 한 부분인 정집 45권으로 정리되었다. 그 후 메이지시대에 들어와 원래 있던 1차 문서인 호적, 계장, 정세장 등 공문서와 사경소 문서를 종합 분류한 뒤 도쿄대 사료편찬소에서 편년문서인 《대일본고문서》(25책)로 간행되었다.

저자도 지적했듯 정창원이라는 한 '장소'가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그 보존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거기에 치승 4년(1180), 영록 10년(1567) 이렇게 두 차례나 전란으로 동대사 대불전이 불타버렸을 때도 가까운 곳에 있던 정창원은 살아남았다. 기적과 같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이들 유물, 문서군은 기억으로만 전승되었을 것이다.

이 번역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창원의 역사와 실태를 알려주는 안내서 역할을 함과 동시에, 향후 이 분야를 공부하려는 연구자에게 기초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