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매년 역량 있는 해외 연구자를 초청하여 한국에서 연구조사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올해에도 해외 연구자 8명이 재단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거나 현재 체류 중이다. 지난 10월부터 한국에 들어와 "접촉, 교류, 그리고 네트워크 : 가야 연맹의 직물과 장례 문화 그리고 일본과 관계(기원 후 3~6세기)"를 주제로 연구 중인 아리안 페린 박사를 재단의 금경숙 연구위원이 만났다. 아리안 페린 박사의 연구 활동과 흥미로운 한국 고대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_ 편집자 주
아리안 페린(Ariane PERRIN) 박사
현재 파리 국립 7대학(University Paris Diderot)에서 한국예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전공하였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학계에 한국고대사, 미술사 등을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를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금경숙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매우 흥미롭다. 특히 유럽인이 이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 학위 논문을 썼다는 점에서 더 눈길이 갔는데, 고구려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리안 페린 영국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박사학위 논문주제(사후 세계로 가는 길: 기원 후 4~7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우주론적 요소)를 정할 때 백제 왕국의 장례 문화와 고구려의 장례 문화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매우 독특한 장례 문화 형식과 건축 양식을 만들어낸 고대 왕국의 고고학과 역사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에 고구려를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행해지는 장례 문화와 그 역사의 세계사적 의의를 인식하고 있었고, 이 지역 고분들이 매우 신비스러웠다. 어떤 사람이 이 고분 안에 묻혀 있을까? 그들은 어떤 사회계층 출신이었을까?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등의 의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또 고구려 무덤과 유적지가 중국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중국어로 쓰인 출판물과 유적 안내 등을 읽어보는 데 나의 중국어 지식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덤 안의 공간적 전개도와 관련 지어 벽화의 도상학적 해석에 따라 두드러지고 반복되는 특징들 중 하나인 우주론적 요소들 즉, 해·달·기본 방위에 있는 사신도,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의 이미지를 분석하였다.
본격적인 연구는 고구려 초기에 수도였던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과 북한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난 이후에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실제 벽화를 본 그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전으로 완전히 캄캄해진 어둠 속에서 강서대묘에 들어갔다. 몇 분 후에 불이 다시 들어왔고 눈 바로 앞에 펼쳐진 청룡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청룡의 형상은 매우 크고 길이가 1.5m 정도 였으며 붓질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마치 청룡이 파도를 타듯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금경숙 삼국시대뿐 아니라 그밖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면?
아리안 페린 삼국시대 장례 제도에 관한 관심과는 별도로, 기원전 약 1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낙랑군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평양지역에서 주로 발견된 나무덧널무덤에 관심이 생겼다. 이러한 목조 구조는 실제로 더 오래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례 비품들은 여러 종류가 있었고, 그중 일부는 현지에서 생산한 것이며 또 다른 일부는 중국에서 수입되었는데 예를 들면, 제조날짜와 작업장의 이름이 새겨진 옻칠 제품이 있다. 평양지역에서 발견된 나무덧널무덤과 중국 전한 시대의 나무덧널무덤을 비교 연구하고 있는데 매장 방식과 장례 풍속의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에서 2년 간 멜론 학예 연구원(Mellon Curatorial Fellow)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예술품들을 조사하고 연구하였는데 조선시대의 불화, 특히 감로탱화(甘露幀畵)와 그 복잡한 도상학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유교 제사와 관련된 다른 양식의 한국 제식화인 사당도(祠堂圖)와 샤머니즘 정신이 깃든 무신도(巫神圖) 혹은 무속화(巫俗畵)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금경숙 파리 7대학에서 예술사를 강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의 내용이 궁금하다.
아리안 페린 파리 7대학에서 신석기 문화에서 20세기 초까지 한국 예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매우 광범한 프로그램이고 핵심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현재 이벤트를 중심으로 강의 내용을 조정하고 있다. 올해가 프랑스와 한국의 한·불 수교 13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여 프랑스에서는 한국과 관련된 여러 학술 문화 예술 행사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특히,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Guimet Museum) 은 현재 한국 예술(그림, 직물 디자이너, 현대 예술가)에 관한 여러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세르누치 박물관(Cernuschi Museum) 역시 프랑스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한국 현대 예술가들에 관한 전시회를 주관하고 있다. 그러한 전시가 벌어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에 남북한의 현대 예술에 대해 더 많은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는 고고학과 예술사의 탄생, 식민지 시대의 문화 유산, 세라믹, 조각, 그림의 제조 기법, 무덤의 건축과 회화술, 유교 제사와 사당도, 조선미술에 대한 서양의 영향, 한국의 현대예술의 탄생, 고고학에 대한 정치적인 국면과 시대적인 쟁점, 한국 박물관과 전시 문화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서양학계에는 덜 알려진 고대 가야 왕국, 가야 왕국과 일본과의 관계 혹은 19~20세기 샤머니즘적 무속화와 부적에 대해서도 강의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강의 외에도, 2016년 봄에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동아시아 예술 프로그램 한국 분과인 '한국 예술'을 위해 강의와 세미나를 할 계획이다. 또한 영국 학생들이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 있는 한국 미술 소장품을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금경숙 강의 말고도 블로그를 통해 한국 예술사와 고고학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 운영 중인 블로그에 관해 소개를 부탁한다.
아리안 페린 현재 한국 예술을 알리는 블로그(http://artsdelacoree.hypotheses.org)를 운영 중이다. 2012년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 CNRS)의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소개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다. 이 플랫폼은 여러 언어로 기술된 학술적인 플랫폼으로 지금은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구성된 포털 사이트도 포함하고 있다. 이 블로그는 서양 언어로 쓰인 한국 예술사와 관련된 정보·자료를 찾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블로그는 본질적으로 서양 언어로 쓰인 출판물을 소개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블로그의 목적은 한국 미술과 고고학과 관련된 학술행사(논문 모집, 컨퍼런스, 출판, 전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소식들은 불어나 영어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 블로그는 한국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외국의 박물관 리스트를 올려놓고 있는데 대부분 웹사이트에 링크할 수 있어서 예술품 사진을 둘러 볼 수도 있다. 최근에 유럽에서 열린 한국 예술 소장품에 관한 포럼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박물관을 찾았으며 곧 블로그에 등재할 예정이다.
금경숙 현재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
아리안 페린 현재 진행 중인 연구 프로젝트인 "접촉, 교류, 그리고 네트워크 : 가야 연맹의 직물과 장례 문화 및 일본과의 관계(기원 후 3~6세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거둔 최근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비교하여 기원 후 3세기경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나타난 다양한 정치 조직체들의 교류 범위와 성격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특히 가야 연맹과 일본 관계에 주목한다. 가야 연맹은 전통적으로 역사학에서 무시되었지만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은 그 당시 가야 연맹의 지정학적 의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매우 유사한 유물 상당량이 가야 고분과 일본의 고분시대에 발견되었다. 이를테면, 검·갑옷·말 용품·덩이쇠·도자기를 들 수 있다. 또한 금속장식품과 마구는 이러한 정치 조직체들과 모용선비(Murong Xianbei)와 같은 북방민족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의 자취는 중국 북방지역 선비족 영토에서부터 한국의 가야와 신라 고분을 거쳐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
전투와 관련된 수많은 청동유물과 철제유물(무기, 투구, 갑옷)은 여러 고분에서 발굴되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실제로 사용한 방어용 무기나 무덤 주인(墓主)과 함께 묻혔던 의식용 물품들은 무덤 주인의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것일까? 이른바 '지배층 무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그 무덤들은 얼마나 존재할까?
금경숙 북한의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리안 페린 고구려 고분벽화를 처음 접했던 중국 동북지역으로 답사를 다녀온 후, 2000년과 2001년에 북한에 관한 두 가지 유네스코 사업에 참여할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내가 참여한 팀은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하기 위한 고구려 무덤의 후보 파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안악 3호분, 약수리, 덕흥리, 강서대묘와 같은 몇몇 고구려 유적지와 무덤을 방문한 다양한 외국인 전문가들(벽화 보존가, 문화유산관리, 건축가, 큐레이터, 예술사학자)로 구성되었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존 협약'을 체결하고 북한은 고구려 고분을 보존하기 위해서 참고자료를 만들고 일부 고분에 감시 장비를 설치하고, 보존 작업에 착수함으로써 한국문화보존센터(Korean Cultural Preservation Centre : KCPC)와 협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환경 통제, 화학물 분석, 그림 보존 분야에서 교육을 받아온 KCPC 직원들을 위해 2004년과 2005년 평양에서 교육 워크숍을 진행했다. 보존실험실은 평양의 KCPC에 설립되었고 수산리 무덤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수산리 무덤은 인근 저수지에 있는 물이 간헐적으로 무덤에 스며들어 벽화가 손상될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무덤은 2004년 7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금경숙 한국사 연구와 관련해 재단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리안 페린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부생과 한국사에 흥미가 있는 학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점점 방대해지는 한국어 출판물들이다. 재단은 영어로 된 한국사와 고고학에 관한 유용하고 중요한 출판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해 왔다. 또한 국제 학술회의와 워크숍, 세미나를 통해 한국인 동료들을 만나고 의견과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한 지원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한국 미술과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점 방대해져 가는 한국 고고학 자료, 특정 고고학 용어의 사용, 가끔씩 서로 다른 지역 언어가 포함된다. 부분적으로나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집필인 로렌스 드네(Laurence Denès) 박사와 출판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드네 박사는 불어, 영어, 한자, 그리고 한국어로 된 '한국어 고고학 삽화 용어사전' 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런 특정 용어들의 상당부분은 기존의 사전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데 이것이 한국 고고학과 역사학 문헌 연구를 어렵게 만든다.
재단은 한 달에 한 번 온라인 저널을 출판한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선택된 주제에 대하여 독자들이 주요 역사적 사실, 날짜, 사건 등을 찾을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교육적인 방식으로 삽화 자료표(Illustrated fact sheet)를 한 두 페이지 정도 싣는 것이다. 이 문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쓰인 비중 있는 출판물에 실린 참고문헌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