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이 지난 2014년 말 발간한 《알타이 스케치 2 : 산지 알타이 편》은 러시아 고르노 알타이(Gorno Altai, 산지 알타이) 지역에서 피고 진 선사문화와 고대 문화를 연대기 순으로 조망한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산지 알타이 지역에 언제 인류가 등장하였으며, 그들은 누구였고, 또 후속 문화의 주인공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필 수 있다. 또 각 시기별 문화 주인공들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도구 개발을 하였으며, 이 지역 최초 주민들이 남긴 시원(始原) 문화를 이어지는 후속 세대가 어떻게 계승 발전시켰는지, 그와 병행하여 이 지역 구석구석에 남겨진 암각화는 당대 물질문명이나 정신문화와 어떤 함수관계가 있고, 각 문화기별 시대 양식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등에 관하여 살필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문화상들은 우리 민족문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알타이'란 말은 몽골어 '알트(Alt)' 또는 '알탄(Altan)'에서 온 것이며 이는 '황금'을 뜻한다. 중국은 근년에 '알타이'를 음차(音借)하여 '阿尔泰'라 쓰기도 하지만, 그동안 '금산(金山)'으로 표기하였다. 물론 러시아 통계에 따르면 산지 알타이에서 생산하는 황금이 러시아 전체 생산량 중 90%를 차지한다고 하니, 산 이름은 물론이고 도시 이름도 '알타이'라 한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산이 지니는 진정한 함의를 꼭 광물로서의 '황금'에만 한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산이 지닌 다함이 없는 생명원으로서의 복합적인 가치 때문일 것이다.
남북 총 연장 1,600km에 이르는 이 거대한 산맥은 서북쪽으로 칼바(Kalba) 산맥, 동북쪽으로 사얀(Sayan)과 쿠즈네츠크(Kuzneck)와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몽골과 중국 신장, 그리고 카자흐스탄 동부지역에 걸쳐 있다. 이 산의 최고봉은 산지 알타이의 '벨루하(Belukha)'인데, 높이는 해발 4,506m에 이른다. 몽골 알타이에서 최고봉은 타른 보그드 산(Tavan Bogd Uul)의 후이틍(Khuiten)인데, 무려 해발 4,370m다. 그밖에도 알타이 산맥에는 해발 3,000m에서 4,000m 사이 봉우리들이 중간 중간 솟아 있고, 이 봉우리는 어김없이 만년설을 이고 있으며 빙하로 뒤덮여 있다.
산지 알타이에 꽃핀 선사·고대 문명
산 정상에 쌓인 눈과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실개천은 모여서 계곡을 만들고 그것들이 다시 모여 카툰, 비야와 같은 강줄기를 만들면서 오비와 이르티슈같은 큰 강과 합류하여 북극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므로 알타이 산맥의 벨루하나 후이틍 등에 만년설이 없었다면, 오비나 이르티슈 강은 생겨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알타이 산맥은 정상부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빙하, 영구동토지대, 고산 초원, 스텝 기후대가 차례로 분포한다. 이런 기후대에 맞게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고 또 초지가 펼쳐져 있다. 유목민들은 바로 이런 기후대를 아래 위로 이동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곳 구석구석에는 이른 석기시대부터 고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흔적들이 다양한 방식과 모양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각종 고고학적 발굴 조사와 연구 결과는 알타이 지역 고대 문화의 속성과 문명사적 함의를 확인하도록 해주고 있다. 또 인근 지역과 교류 등 시대별 문명화 과정과 사회상황을 살피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더욱이 20세기 후반 들어 알타이 지역에 관심이 커지면서 알타이를 표제어로 삼은 기획전시회를 비롯해 언어, 민속, 신화와 종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를 펼치기도 하였다.
재단도 알타이를 더욱 체계 있게 이해하기 위하여 '알타이 문명 연구'를 기획하였다. 먼저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몽골 알타이, 산지 알타이, 신장 알타이 그리고 카자흐 알타이 이렇게 네 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각 권역별로 해당 지역에서 번성한 선사와 고대 문화를 석기시대부터 고대 투르크 시대까지 연대기적으로 조망하려고 하였다. 가능하다면 각 지역과 시기별 민족 구성, 언어 습속, 종교와 신화, 물질문명과 조형 예술 등을 조망하여 특징 있는 문화소를 추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해당 문화소가 민족과 시대 그리고 지역의 문화시스템에 따라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여부를 밝히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재단은 지난 2012년 몽골 알타이 지역 민족 구성과 언어, 신화와 종교, 물질문명, 그리고 조형 예술의 세계에 관한 연구를 현지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실시하고, 2013년 《알타이 스케치 1 : 몽골 알타이 편》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 2013년에는 산지 알타이 지역을 대상으로 현지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조사를 펼쳤고 그 결과물을 묶어서 2014년 《알타이 스케치 2 : 산지 알타이 편》을 발간한 것이다.
한국 민족문화와 연결고리 확인
《알타이 스케치 2 : 산지 알타이 편》은 모두 7장으로 꾸며졌다. 제1장은 산지 알타이 지역의 지형학적 특징을 간략하게 서술하였고, 제2장에서 제5장까지는 석기에서 청동기, 스키타이, 그리고 흉노시대까지 이곳의 문화상을 러시아 알타이대학교 A.쿤구로프 교수, 상트페테르부르크 물질문화사연구소 N.보코벤코 박사, 알타이대학교 A.티쉬킨 교수가 풍부한 현장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하였다. 제6장에서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E.데블레트 박사가 이 지역에서 발견한 암각화 세계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였으며, 제7장에서는 필자가 알타이와 한국 민족문화의 상관성에 관하여 논하였다.
이 과제에 참여한 공동 연구자들은 산지 알타이 지역에서 꽃핀 선사와 고대 문화의 총화가 곧 '알타이 문명'이며, 그것들은 단절 없이 오늘에 이르렀음을 논술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은 시간 및 공간, 그리고 민족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족문화와는 결코 무관하지 않음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