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기고
'클리셰' 아닌 진짜 독도를 마음에 새기다
  • 글 하원준 (영화감독)

영화사전에는 클리셰(Cliché)라는 단어가 있다.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쓰여 뻔하게 느껴지는 표현이나 캐릭터, 영상 스타일 등을 포괄해서 칭한다. 클리셰란 결국 비판 없이 반복되는 특성이라고 의미를 규정할 수 있다.

독도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독도는 클리셰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배경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독도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사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 속 독도 풍경 사진들은 늘 일정한 장소에서 동일한 앵글로 습관적으로 찍혀 왔다. 그리고 복제한 듯,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독도에 관한 관념과 의미 심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독도를 우리의 땅으로 인정하긴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확고한 개념 속에 존재하는 '인정'이 아닌, "클리셰" 같은 것일 수 있다. 이처럼 습관적 의미에 머물러 있는 독도를 진정한 의미로 승화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밟고, 그곳에서 숨 쉬어 보는 것이다.

독도 남동쪽 암벽에 새겨진
'한국령(韓國領)' 표시

영화감독들, 독도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설레다

예술가에게 우리 땅 독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문화예술인 울릉도 독도 답사'가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3박 4일 동안 열렸다. 이번 답사팀에는 한국 영화를 이끌어가는 임순례, 정윤철, 장철수, 봉만대 감독을 비롯해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 감독 12명이 대거 참여하였고, 예술인복지재단 소속 예술가와 기관 담당자,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의 유관 기관 직원들도 동참하였다. 10월 11일 오후 6시 무렵, 동해시에 마련된 숙소에 모인 참가자들은 가벼운 상견례를 하고, 서로 안전한 답사를 기원하였다. 그날 밤, 문화예술인들은 마치 소풍 전날 어린아이들처럼 설렘 가득한 마음에 쉽게 잠들지 못하였다. 다음날 아침, 답사팀은 동해항에서 여객선에 올라탔다.

4시간이나 되는 긴 항해 시간 동안 몇몇 감독들은 난생 처음 멀미를 경험하기도 했다. 스타일이 생명인 감독들에게 속 울렁거림은 배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축 처진 몸을 이끌고 저동항에 내렸던 감독들에게 맑은 오징어 내장탕은 상실한 원기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 사이 답사팀에는 기상 여건 악화로 독도 입도가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져, 계획을 변경하고 죽도가 보이는 내수전 전망대 쪽으로 향했다. 몇 달 전, KBS1 TV '인간극장'을 통해 죽도에 사는 신혼부부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서인지 죽도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죽도를 오른쪽으로 두고, 두 시간 정도 둘레길을 걸었던 답사팀은 울릉도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그날 밤, 문화 예술인들은 동북아역사재단, 문화부, 통일부 소속의 참가 인사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고, 독도와 '위안부',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삶이요, 이야기의 끝은 죽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삶과 죽음의 틈에서 살아가고, 그런 살아감에 대해 진솔하게 나눈다. 답사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꽃 피우는 비옥한 토양과도 같다. 그런 점에서 첫날 답사는 울릉도라는 배경이 중심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울릉도 두 번째 날. 날은 매우 청명하고 맑았지만, 바다는 아직 성이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 날에도 여전히 독도 입도는 어려웠다. 현지 안내인 이야기대로 독도에 온전하게 입도하기 위해서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두 번째 날은 울릉도 내부를 답사하기로 하고, 코끼리 바위가 있는 해변 순환 도로를 기점으로, 이규원 감찰사의 각석문이 있는 곳을 거쳐 나리분지 쪽으로 갔다. 나리 전망대에서 본 나리분지는 태고 시절 형성되어 그 상태 그대로 전해져 온다. 험한 화산섬 속에서 마치 오아시스처럼 나리분지는 우리를 온기 넘치게 감쌌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둥글고 완만한 평화가 전해져 왔다. 문화 예술인들은 이곳에서 창작을 하며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성불사를 둘러본 답사팀은 독도박물관을 방문하여 전시자료를 관람했다. 이곳에서 문화예술인들은 비로소 독도가 우리 땅임을 실감한다. 그리고 클리셰가 아닌 특별한 실체로 내면에 착상되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다니는 감독들에게 안용복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해안 도로를 걷는 행보를 마지막으로 두 번째 날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독도에 발을 내딛던 순간의 짜릿함, 그것은 '숨 막힘'

세 번째 날. 드디어 독도를 향해 출발했다. 울릉군에서 제공한 행정선을 타고 약 두 시간 정도 뱃길을 달린 답사팀은 드디어 독도에 도착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때 느낀 감격을 고스란히 전하는 한 가지 단어를 선택한다면, '숨 막힘'이다. 우리 땅이 주는 감동을 느껴보았는가? 우리 땅에 입지(立志)한 상태를 느껴 보았는가? 영화감독으로 우리 땅 곳곳을 밟아 보고, 찾아다녔던 나는 비로소 두 다리로 독도에 섰을 때 몸을 타고 흐르는 전류를 잊지 못한다. 그것은 한국인의 본능과도 같다. 본능적인 가슴 뜀이다. 나와 문화예술인 답사팀은 몸이 뜨겁게 달아오를 만큼 계단을 오르고 올라, 독도 전망대에 섰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 문득 지금 찍고 있는 사진들이 누구보다 진부한 클리셰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 내면에 자리잡은 독도는 더 이상 클리셰가 아니다. 그 순간, 독도는 나에게 '진정함'이고 온전한 우리의 땅으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나와 문화예술인들은 독도를 지키다 순직한 소중한 고인들의 기념비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가슴 속으로 전하며, 3박 4일 간의 독도 답사를 마쳤다. 다시 한 번, 문화예술인들의 내면에 독도를 진정한 의미로 자리 잡게 해준 동북아역사재단 측에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