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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 시대, 한국전쟁 이해의 몇 가지 문제-평화를 위한 전쟁 기억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 홍면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미중 패권 경쟁 시대한국전쟁 이해의 몇 가지 문제

평화를 위한 전쟁 기억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홍면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20세기 후반의 가장 주목할 세계사적 변화는 중국이 유일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미국을 위협하는 도전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의 상대적 퇴조, 중국의 화려한부활로 국제 질서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간단없이 제기되고 있다. 혹자는 전쟁이 이미시작되었다고도 한다.(이철, 2023, 시작된 전쟁(북한은 왜 전쟁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가), 2)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고, 중국의 대만 해방기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쟁의 불길을 당길 것이라는 게 시나리오 개요다.

제국의 질서가 흔들릴 때 제국의 경계에서 전쟁 가능성이 높아졌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역사상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국제전쟁이 그렇고, 한국전쟁도 그 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남북이 미중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은 미중의 충돌이 곧바로 한반도 위기와 직결되어 있다.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불길한 전쟁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전쟁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이성을 발견한다는 것과 같다.(이진우, 2022,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85) 가까스로 지켜가고 있는 평화의 시간에 안주하여 다가오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오히려 강대국 충돌의 재앙을 끌어들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70년 전 혼돈과 살육의 기시감을 떨치고 어떻게 이성적으로 전쟁을 생각할 것인가? 지도자와 국가 사회, 그리고 변하지 않는 한반도 국제정치의 관성이라는 세 수준에서 지난 전쟁을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미래전략의 단서를 찾아가고자 한다.

 

 

 

전쟁을 도발한 책임, 전쟁을 막지 못한 책임

 

한국전쟁의 큰 역설은 아무런 성취도 없는 파멸적 전쟁을 치르고도 남북 어디에서도 심각한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라종일, 2019, 세계와 한국전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32) 원로정치학자의 이 지적은 남과 북에서 한국전쟁이 어떻게 해석되고 소비되어 왔는가에 대한 한 지식인의 뼈아픈 독백처럼 들린다. 한국전쟁에 대한 반성은 누가 왜 전쟁을 도발했고, 우리는 왜 이 참화를 막지 못했는가에서 출발한다. 구소련 외교문서 공개 후 김일성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주장은 사라졌다. 그러나 전쟁을 도발한 김일성은 미제의 침략을 깨부순 영웅이 되어 북한의 유일 권력자가 되었고, 3대에 걸친 김씨 세습왕조를 세웠다. 물론 수백만 동포를 살상한 데 대한 사과는 한 마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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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공개한 북한군 서울 진입 모습

(출처: 『연합뉴스』, 2013.06.25.)

 

 

과연 이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제대로 묻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쟁점이다. 전쟁 직전 이승만은 입버릇처럼 북진통일을 호언하였고, 국방장관 신성모는 전쟁이 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압록강에서라는 허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국민들에게 전황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서울을 빠져나갔다. 국군의 북진을 믿으라는 거짓 방송을 했다. 스탈린의 사주, 마오쩌둥의 지원에 기대어 공산혁명을 몽상한 김일성의 과오는 씻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비극을 막지도 못하고, 통일에 대비한 실효적 대책을 준비하지도 않았던 이승만의 책임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홍면기, 2017, 통일 논의에서 신지정학적 논의의 유용성과 확장의 문제, 통일의 신지정학, 박영사, 90~111쪽의 논의 참조).

 

 

 

극복해야 할 군사주의적 열정과 원한의 서사

 

남북한 지도자의 책임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전쟁 전 남북한 사회에서 이념적 분열이 극심했고,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군사주의적 분위기가 충만해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수의 한 축 김구도 미국의 지원이 있다면 장개석과 만주 수복에 나서겠다는 격정을 토로할 정도였다고 한다. 국가 지도자나 국민이 정세를 냉정하게 통찰하지 못하고 원한의 서사에 매달리고 군사주의에 경도할 때 재앙은 이미 예비되었던 셈이다. 신탁통치 논쟁이 분단을 가속화했던 것처럼 힘에 의한 통일이란 무책임한 열정이 개전을 촉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죽음으로 지킨 낙동강 방어선

죽음으로 지킨 낙동강 방어선(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쟁은 강자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시공이다. 군사적 목표, 산업시설의 파괴는 물론 민간인에 대한 공격, 학살이 공공연히 자행되기도 한다. 투키디데스가 전쟁을 인류의 잔혹한 스승이라고 꼬집었던 까닭이다. 키신저는 예방할 수 없는 전쟁은 없다고 했지만 뿌리 깊은 적의와 달뜬 군사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하면 전쟁을 예감하고 이를 멈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한국전쟁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감정적 반공반북론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미중 대치의 먹장구름이 짙게 몰려오고 있는 지금은 분별없는 군사주의적 열정이 아닌 전쟁을 막을 예방외교(preventive diplomacy)’에 전력을 다할 때다. 냉전기, 특히 북핵문제 돌출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간단없이 반복되어 왔다. 북한은 서울 불바다론에 이어 핵위협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고, 한국과 미국 역시 원점 타격, 외과적 수술, 참수론 등을 서슴지 않아왔다. 이러한 군사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남과 북이 좁고 가파른 길에서나마 다시 평화를 향한 장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한국전쟁의 교훈이다.

 

사진3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현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 그리고 당진 민간인 학살

(출처: 『당진일보』, 2020.06.27.)

 

 

 

지금은 한반도 국제전쟁의 위기구조를 통찰할 때

 

1592년의 임진전쟁과 1950년의 한국전쟁은 여러모로 닮아있다. 예측할 수 있었기에 막을 수 있는 전쟁을 막지 못했고, 전쟁의 주도권을 외국군에 내주었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중일의 한반도 분할 논의나 미중이 38선과 엇비슷한 휴전선에서 전쟁을 멈추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남북은 모두 승자가 되지 못했고,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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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을 넘는 미군(출처: 나무위키)

 

역사는 자기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고, 전략문화의 전통으로 유전된다. 전쟁을 기억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각국의 자기 서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이다. 이 점에서 최근 미중이 철저히 자국 중심적 시각에서 소환하고 있는 현상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대만 등지에서 미중이 충돌할 경우 남북의 중립은 보장되기 어렵다. 전쟁의 불꽃이 올라가면 남북 권력자들은 전쟁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수도 있다. 모두가 공멸하는 길이지만 그것이 권력의 생리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한국전쟁 기억은 상대를 적대하고 자신의 희생과 승리를 강조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한국전쟁을 한반도 패권전쟁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조망하고, 강대국의 논리 아닌 우리의 시각에서 전쟁 기억을 구성해 내야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의 구조를 제대로 보고 대비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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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는 중국군(출처: 중앙포토, 2018.10.13.)

 

 

 

역사에 대한 조형력(造形力)을 살려내야 미래가 있다

 

미중의 패권 갈등의 향배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두 거인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것인지, 열전으로 치달아 갈지 알기 어렵고,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도 쉽게 예단할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은 미중이 협력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중이 남북한 협력을 지원하고, 남북이 미중간 갈등 완화에 기여할 공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기회의 시간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비관론은 금물이다.

니체는 과거의 것이 현재와 미래의 무덤을 파지 않으려면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한 것을 대체하고 부서진 형식을 복구하는 힘, 즉 역사에 대한 조형력이 있어야 됨을 강조한다. 미중 갈등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긴급한 조치는 남과 북이 평화 지향의 의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해원(解冤)이라는 철학적 맥락에서 전쟁을 성찰해 나가는 새로운 인식론이 절실하다. 함석헌의 외침처럼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