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대화의 성과와 새로운 모색
한봉석 국립부경대 교수
역사 대화를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정리해 보자. 사실 이러한 정리에는 “모든 쟁점을 대화로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대화가 누군가의 정치적 이득일 수도 있다는 성찰이 빠져 있다. 이는 역사 대화라는 행위에 자국사의 내향성을 감추고자 하는 여지가 항상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역사 ‘갈등’이 있어야 역사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역설은, 역으로 갈등이 역사 대화의 필수 조건이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때의 갈등과 이로부터 시작된 역사 대화를 통해 무엇을 파생시킬 수 있는가이다. 역사 대화 속에서 과연 관계의 새로움 같은 것이 떠오를 수 있을까? 평상시의 질문을 품고 학술회의에 참여했다.
역사 대화의 경험과 앞으로의 모색
학술회의를 주관한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오랫동안 역사 대화에 주목했다. 특히 교과서를 비판하면서 공동 교과서라는 대안을 의식하고, 한중일 청년의 교류를 통해 역사 인식의 간격을 재고하는 활동은 그 결이 무척 다양하다. 연구소를 향한 관련 연구자들의 신뢰 역시 낮지 않다. 학술회의는 역사 대화의 주체를 다양하게 설정하고, 그들의 경험을 역사적으로 되짚으며,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연구소가 지닌 장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김정인은 한중일 공동교재의 집필을 돌아봤다. 2005년의 『미래를 여는 역사』, 2012년의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그리고 올해 출판 예정인 『평화를 여는 역사』의 흐름을 조망했다. 20년에 가까운 시도는 교과서(교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아포리아’ 때문이라도 각 국면의 성과와 한계가 지나칠 정도로 명확했다. 그러나 한중일의 교류가 공동교재라는 경험을 실제로 남겨놓았다는 점은 참으로 중요하다. 한혜인은 역사 공감(Historical Empath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실(史實)을 맥락으로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정서와 연결하여 공감에 이르게 하는 프로그램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소가 2002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한중일 청소년 역사체험캠프>의 감상문을 모두 분석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방법론이었다.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편(휴머니스트, 2012)
김지훈은 중국공산당역사전람관의 전시와 구성을 분석하고, 중국이 역사를 청산하거나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살폈다. 중국은 근대의 치욕을 주제로 하는 전시를 매우 가볍게 처리하는 대신에 공산당의 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과는 물씬 강조했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를 이용해 강국이 된 현재를 부각하는 방식이다. 민유기는 프랑스-알제리 사이의 역사 대화가 에비앙 조약(1962) 이후에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언급하고, 양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후퇴하거나 진전하는 모습을 분석했다. 알제리인에게 잔혹했던 프랑스의 과거는 오늘날까지 양국 사이의 경제·안보 협력에 큰 변수이다. 2021년에 프랑스가 자국의 국가 범죄를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고 표명한 바 있는데, 이것이 양국 사이의 관계에 어떤 계기가 될지 지켜보자고 제언했다.
한편 역사 대화를 새롭게 모색하자는 제언도 눈길을 끌었다. 강화정은 최근에 역사학과 역사 교육에서 주목받고 있는 ‘생태환경사’가 대화의 한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한중일 역사 교육 과정이 생태환경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토대로 역사 대화를 시도하자는 것이다. 가해와 피해라는 서사가 아니라 공해나 환경 오염처럼 근대가 가지고 온 폐해를 공유해 보자는 제언은, 특히 현장 교사의 많은 공감이 있었다. 이세영은 남북한 역사 대화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과 깊이 면담하고, 이들이 받은 한국사 교육의 내용을 소개하며 현실 속에서 역사 대화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사 교육의 한계를 성찰해 보는 것도 몹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학술회의 '역사 대화의 성과와 새로운 모색' 전경(필자 촬영)
역사 대화를 성찰하는 역사 대화
모든 발표와 토론은 역사 대화의 윤리적 당위성이 사실 처음부터 자연스러울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 대화를 역사적으로 살피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확실히 공유했다. 이는 대화의 밑바닥을 이루는 자잘한 결을 다시 발굴함으로써 앞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의 질문을 새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역사 대화는 관계의 새로움을 발견해 가는 행위 그 자체여야 하지만, 이제는 이 명제의 윤리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덧 국가와 사회가 새로움을 강박적으로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현상은 어떻게 성찰해야 할까? 역사 대화의 역할은 여기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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