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악회와 한국령 독도의 역사,
도록 『1947~1953 울릉도·독도학술조사를 가다』로 빛을 보다
변기태 한국산악회장
광복 직후 한국령 독도를 찾아
한국산악회는 1945년 9월 15일 광복 한달 만에 창립한 사회단체로 진단학회를 제외하고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산악회가 창립 이후 가장 먼저 실행한 사업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우리 국토를 구명하는 일이었다. “해방된 오늘날 미개미지(未開未知)의 국토를 과학적으로 탐사하는 제1보적 의의(송석하 초대회장이 쓴 제1회 국토구명 학술조사 취지문 일부)”를 내걸고 1946년 제주도부터 학술조사를 시작했던 우리 선배들은 1947년에는 아직 국민들에게 생소했던 울릉도와 독도를 찾았다.
한국산악회 독도 방문(필자 촬영)
우리 회원들은 일본이 불법적으로 설치한 시마네현 표목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한국령 독도 표목을 설치했다. 전쟁 중인 1952년에도 화강암으로 된 독도 표석을 설치하고자 했으나 미군의 폭격으로 실패하고 이듬해인 1953년 10월 15일에 마침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선포하는 표석 설치에 성공했다. 또한 국가의 영토주권 확립에 중요한 측량에도 성공해 우리 손으로 그린 최초의 독도 지도를 완성했다.
한국산악회와 독도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56년에도 고등학생을 이끌고 첫 번째 학생해양 산악훈련단 활동으로 독도를 찾았다. 1968년 정부 수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 20대 명산 순례에서도 독도를 빼놓지 않았다. 이러한 한국산악회의 초창기 활동은 우리 땅을 딛고 오르는 다른 산악인들에게도 전해져 이후 많은 국민에게 독도의 영토주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믿는다.
한국산악회와 독도체험관의 만남
오랫동안 한국산악회 도서관 수장고에 묵혀 있던 당시 기록들은 2021년 동북아역사재단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비로소 빛을 보았다. 한국산악회의 자료뿐 아니라 이 무렵 개인적으로 소장하게 된 송석하 초대 회장의 독도 답사 관련 자료 200여 점을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 기탁했다. 이는 2023년 8월에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기획전 개최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한국산악회는 2022년 가을 태풍에 유실된 독도 표석을 지난해 다시 설치했으며, 동북아역사재단, 독도학회와 함께 표석 설치 70주년을 기념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독도를 중심으로 한국산악회 회원들과 동북아역사재단이 함께 만들어 간 2023년이었다.
도록에 담긴 소중한 자료와 의미들
특히 이번 전시회와 함께 펴낸 도록을 통해 기존 한국산악회 자체적으로는 부족했던 연구를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연구소 연구위원들이 분석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자료 중 미군정청 군정장관이 문교부 소속 공무원들에게 독도 출장을 명령한 문서는 과도정부 시기 이미 미국 또한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억지 주장을 반박하는 소중한 근거가 될 것이다.
한국산악회 기탁유물 자료집 『울릉도 · 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또한, 1947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 수토관 박석창 각석문 탁본은 그 존재가 문헌으로만 전해져왔던 것을 실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소중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1711년 5월 삼척영장 박석창 일행이 울릉도에 와 수토의 흔적을 기록한 바위 글씨는 울릉도에 남아있는 수토관 각석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937년 일본 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만 전해질 뿐 지금까지 그 실물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이 또한 독도연구소 연구위원들에 의해 새롭게 연구되고 나아가 오래도록 보존되어 많은 이들이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도록에 실린 ‘독도 행각’은 당시 독도를 찾았던 우리 선배들의 고난 여정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당시 20대 청년으로 동도를 초등하고 서도를 등반했던 김연덕 선생이 구순이 넘은 몸을 이끌고 직접 찾아 소중한 말씀을 해주신 것 또한 한국산악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큰 자부심이 드는 일이었다.
기록되고 기억되는 독도 역사를 위해
나는 78년 전의 빛바랜 자료들을 보며 산에 오르는 일이란 비단 육체의 행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당시 미지의 땅 독도로 가기 위해 사람을 모아 비용을 마련하고, 과도정부와 수 차례 오갔던 문서들과 독도에 가기 전 밤을 새워 공부하며 한글로 번역했을 동국여지승람 번역본의 바른 글씨들을 보며 지금의 산을 오르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음을 다잡는다.
무릇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면 과거도 미래도 없다. 미개 미지의 독도를 찾아 망망대해를 갈랐던 우리의 선배들이 남긴 소중한 기록을 다시 세상에 꺼내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준 동북아역사재단에 감사드린다. 나아가 우리 국토를 딛고 오르는 지금의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은 미래의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지, 사뭇 그 발걸음이 진중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