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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일 교류를 논하며 미래 교류를 전망하다
  • 이형주 국민대 일본학과 강사

 

2024년 9월 6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조선 후기 한일관계 국제학술회의’는 조선 후기 한일 간의 외교와 교류에 관한 연구를 심도 있게 다루고, 양국 학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 자리였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학자뿐만 아니라 시니어 학자와 신진 학자가 함께 교류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었다. 따라서 이번 학술회의는 학문적 세대 교류를 통한 한일관계사 연구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고, 심포지엄의 주제대로 조선 후기 한일 교류 연구의 현재를 재조명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논의의 장이었다. 

 

 

회의장 발표 모습

 

 

1990년대 초부터 꾸준한 대마도종가문서 연구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한국 학계에서 대마도종가문서(對馬島宗家文書)를 이용한 연구가 30여 년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여 조선 후기 한일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하는 발표들이 이어졌다.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의 개회사와 한일관계사학회 나행주 회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기조 강연 2개와 총 6개의 발표가 있었다. 각 발표는 대마도종가문서를 기반으로 한 연구들로 구성되었으며, 발표자들은 사료에 기반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 한일관계의 복잡한 면모를 밝히고자 했다.

 

발표자 기조강연 모습

 

 

대마도종가문서와 한일관계 연구의 궤적

 

종가 문서에서 배우다를 발표한 다시로 가즈이(田代和生,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1965년부터 시작된 자신의 연구 여정을 소개하며 대마도종가문서를 활용한 향후 연구의 전망을 제시했다. 특히, 쓰시마번의 조선어 통사(通詞, 통역관)와 관련된 사료인 사계고지자사립기록(詞稽古之者仕立記錄)통역수작(通譯酬酌)을 통해, 1727년 일본 최초의 조선어학교 설립에 공헌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이상이 훗날 조선어 통사 오다 이쿠고로(小田幾五郞)를 통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또한, 한일 양국에서 대마도종가문서의 정리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이 문서들이 외교사뿐만 아니라 경제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앞으로도 양국 학자들이 협력하여 연구를 지속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훈 한림대 교수는 대마도종가문서와 한국의 한일관계사 연구발표에서 한국에서 대마도종가문서가 연구되기 시작한 이후 30년간의 성과를 돌아보았다. 통신사 초빙, 왜관 무역, 표류민 송환 등 다양한 주제에서 연구가 발전해 왔으며, 이 문서가 외교사뿐만 아니라 경제사, 문화사 연구에서도 필수적인 자료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나 많은 문서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번역 작업이 미흡해 연구의 깊이와 폭이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앞으로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협력하여 체계적인 정리와 번역 작업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학문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카이 마사요(酒井雅代, 오쓰마여대) 교수는 통역으로 본 근세 한일관계사발표에서 조선 후기 한일 양국의 통역관들이 외교 교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다루었다. 쓰시마번의 조선어 통사와 조선의 왜학 역관들이 때로는 서계 위조까지 감행하면서도 양국 간 갈등을 조정하고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낸 과정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메이지 신정부 수립 이후 조선어 통사들이 서서히 외교 현장에서 배제되며, 양국 외교가 근세에서 근대로 이행했다고 지적했다. 이 발표는 조선어 통사들이 단순 통역이라는 역할을 넘어 외교적 중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메이지 정부 수립 후 이들이 배제된 채 전개된 새로운 한일관계가 왜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그 일단을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였다.

 

 

외교사절을 다시 읽다

 

주제가 다시 읽는 통신사와 문위행으로 전환되며, 이시다 도루(石田徹, 시네마현립대) 교수가 「『역관입료어원(訳官入料御願)프로세스와 지원요청 논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쓰시마번은 18세기 말 이후 문위행을 초빙하면서 막부에 보조금 지원을 요청했는데, 해당 발표는 그 과정과 논리 구조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히 막부의 보조금 지원이 정례화되는 과정과 쓰시마번이 막부에 제출한 보조금 지원 요청서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설명하였다. 이 발표는 쓰시마번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문위행을 구실삼아 막부의 보조금을 이용했다는 선행연구를 재검토한 것이다. 즉 쓰시마번은 재정이 곤궁한 상황에서도 번주 가문의 역의(役儀)’를 위해 어떻게든 문위행을 초빙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막부의 보조금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쓰시마번에게, 나아가 조선 후기 한일관계에서 문위행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향후 연구 과제에 대한 기대를 남겼다.

재단 한일연구소장인 윤유숙은 일본의 조선통신사 기록에 보이는 삽화에서 조선통신사 관련 회화를 분석했다. 발표자는 통신사의 초빙부터 귀국까지 모든 단계의 실무를 담당한 쓰시마번이 후대의 참고를 위해 작성하거나,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지날 때 직접 접대를 맡은 번에서 작성한 문자 기록속에 삽입된 삽화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발표자는 풍부한 시각 자료와 함께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특히 조선 국왕의 국서를 담은 상자로 추측되는 서함(書函)’을 비롯하여 조선의 악기, 무기, 식기 등 일반적인 통신사행렬도에서는 알기 어려웠던 통신사의 세부적인 실상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 발표는 조선의 외교 의식과 외교 의장에 관한 연구에 큰 진전을 기대하게 했다.

마쓰모토 도모야(松本智也, 시코쿠가쿠대) 교수는 근세 후기 통신사와 일본인과의 학술 교류: ‘간세이 이학 금지를 매개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조선통신사는 19세기에 들어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1811년 통신사행은 기존의 에도가 아닌 쓰시마에서 양국 국서 교환 의식이 거행되었으며, 이것이 마지막 통신사 파견이 되었다. 그 결과, 1811년 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거나 그 앞뒤 시기와 단절, 고립된 사건으로 이해되었다. 발표자는 이러한 상황을 간세이 이학 금지가 발효된 1790년을 매개로, 1764년 통신사와 1811년 통신사의 연결성을 분석했다. 또한 19세기의 통신사 초빙 시도와 1866년 병인양요 중개를 위한 일본의 사절단 파견 계획에서 1811년 통신사가 갖는 의미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마지막이 된 1811년 통신사의 의미를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재조명할 수 있었다.

 

 

 

근대 전환기의 한일관계

 

다시 한번 주제가 근대 전환기의 한일관계로 바뀌며, 현명철 한일관계사학회 전 회장은 1865~1870년까지 관수(왜관의 대표자)의 업무 일지를 분석하여 막말메이지 초기 왜관과 관수일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해당 시기는 쓰시마번을 비롯해 일본 내부의 정세가 복잡하게 전개되는 한편, 양국의 외교 체제도 붕괴되어 가는 시기였다. 발표에서는 당시 왜관의 연중행사, 구성원, 접대 양상 등을 사료에 기반하여 생생히 복원했다. ‘근대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 속에 조선과 쓰시마번이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 후속 연구를 통해 한일관계의 근대 전환을 더욱 세밀하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조선국왕과 대마도주의 외교 선물 교환: 1864년 일본의 조문 사절과 축하 사절 사례를 발표한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는 조선과 쓰시마번 외교 관계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선물을 분석하여, 조선 후기 한일관계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발표에 따르면 공식 외교문서와 함께 교환된 선물이 어느 정도 정형화된 반면, 관계자들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선물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이러한 선물 교환은 외교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사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선물 교환이 실무자들의 인간관계 형성에 공헌했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발표자의 언급대로 이러한 선물 교환이 물품 교환이라는 큰 틀 속에서 각각 어떠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던 것인지에 관한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

 

 

2024년 조선후기 한일관계 국제학술회의 단체사진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기대

 

조선 후기 한일관계 국제학술회의는 조선 후기 한일 간의 외교와 교류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한일관계사의 복합적인 면모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대마도종가문서를 비롯한 다양한 사료를 통해 조선과 일본의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밝혀내며,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또한 각 발표의 토론을 맡아 준 이재훈(동의대), 이형주(국민대), 장순순(전주대), 이상규(국사편찬위원회), 유채연(전북대), 허지은(서강대)의 치열한 토론과 플로어의 참여도 이번 학술회의를 더욱 뜻깊고 풍성하게 해주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조선 후기 한일관계사의 다양한 측면을 재조명하면서 앞으로 다뤄야 할 중요한 과제들을 제시했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협력하여 학문적 교류와 세대 간 협력이 지속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통해 한일관계사 연구가 더욱 심화되고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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