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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생활문화사』 우리 식생활의 독특함에 대한 설명서
  • 정연식 서울여대 사학과 명예교수

한국 식생활 문화사 책 커버

 

문화는 생활양식의 총체적 결과물이고 생활양식 중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것이 식생활이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기와집, 초가집은 거의 사라졌고, 한복도 결혼식장이나 고궁 근처처럼 특별한 장소가 아니면 볼 일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식탁에는 오래전 조상들이 먹었던 쌀밥, 김치와 된장찌개가 차려진다. 의식주 중에서도 식생활문화는 우리 문화의 핵심을 간직한 본질이며 정수다.

 

 

 

 

먹는 일에 대한 관념

 

우리 민족은 먹는 일에 대한 관념이 아주 독특하다. 먹는다는 표현을 여기저기 가져다 쓴다. 뜯어먹고, 붙어먹고, 잊어먹고, 부려먹는다는 표현이 있고, 나이도 먹고, 더위도 먹고, 욕도 먹고, 겁도 먹는다.

더욱 특이한 것은 아침이라는 말을 아침과 아침밥 두 가지 의미로 쓰고 있다. ‘삼시 세 때라는 표현도 있듯이, ‘는 본래 같은 말이었다. 때와 끼의 고어 는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하나의 말에서 갈라져 나간 쌍형어다. 그리고 진달래는 참꽃이라 하고 진달래보다 아름다운 철쭉은 개꽃이라 했다. 먹을 수 있는 꽃과 못 먹는 꽃을 차별한 것이다. 그래서 못 먹는 나리는 개나리라 했고, 모양은 예쁘지만 맛은 형편없는 살구는 빛 좋은 개살구라 했다. 밥상을 장식하는 꽃도 생화가 아니라 조화를 썼다. 대신에 아름다운 생화는 화전을 부치거나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

 

 

1910년의 곡물생산량 비율

 

 

주식은 쌀밥

 

우리 민족은 아주 일찍부터 벼농사를 지어 쌀밥을 먹고 살았다. 주곡 작물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이어야 하므로 쌀밥을 먹고 살았던 것은 당연하다. 벼는 농산물 중에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이었고 보리는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조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북부 지역에서는 조를 주식으로 삼았지만 전체로 본다면 쌀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므로 역시 주식은 쌀이었다.

벼는 물을 많이 먹고 일조량, 기온 등의 기후조건을 맞추어야 하며 땅을 가려서 거친 환경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다. 그러나 벼는 토지 이용도도 높고 파종량 대비 수확량 비율도 높으며 영양소도 균형이 잡혀 있는 훌륭한 작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벼농사를 지어 쌀밥을 먹고 살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높은 인구밀도는 벼농사와 쌀밥에 일부 기인한다.

 

점심 공고상을 나르는 여자종(김홍도의 8폭병풍 풍속도 부분)

점심 공고상을 나르는 여자종(김홍도의 8폭병풍 풍속도 부분)
(출처: 파리 기메미술관 소장)

 

 

 

하루 두 끼에서 세 끼로

 

지금은 하루 세끼라고 말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끼를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점심(點心)이란 말은 15세기 태종실록에 처음 보이는데 공심(空心), 즉 공복에 먹는 몇 점()의 음식으로서, 소식을 뜻하던 말이다. 또한 늘 먹는 것이 아니라 해가 길고 활동량이 많은 농번기인 여름에는 먹고, 해가 짧고 활동량이 적은 농한기인 겨울에는 먹지 않았다. 조선 초기에는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관료들에게 점심이 제공되었지만 16세기 선조 때는 재정 형편이 어려워져서 몇몇 관료들을 제외하고는 점심이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종이 점심을 공고상에 차려서 머리에 이고 관아로 날랐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농번기와 농한기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활동량도 많아지면서 경제력도 상승하여 하루 세끼로 정착되었다.

 

국밥을 숟가락으로 먹는 나그네

국밥을 숟가락으로 먹는 나그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저와 소반

 

한중일은 식사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였지만 중국과 일본은 여말선초를 즈음해서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우리만 지금까지 수저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과 관계가 깊다. 우리 국은 건더기가 많고 아주 뜨거운 국이 많으며, 찌개는 더욱 그렇다. 건더기를 건져 먹고, 뜨거운 국물 음식을 조금씩 떠먹으려면 숟가락이 필요하다.

한편 우리나라는 서양이나 중국처럼 기다란 식탁에서 함께 먹지 않고 각자 따로 작은 소반에 독상으로 차려 먹었다. 우리 전통가옥은 바닥의 구들을 데워 그 열기로 방안을 데웠으므로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방을 작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식탁을 늘 놓아둘 공간이 없었다. 그리고 음식을 차리는 부엌과 밥을 먹는 방이 분리되어 있어 음식을 방으로 나르려면 작은 식판이 필요했다. 그래서 작은 식판에 발을 달아서 식탁 겸 식판으로 만든 것이 바로 소반이다. 우리의 독상 차림은 작은 소반에서, 그리고 그 소반은 우리의 가옥 구조와 난방 방식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