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역사학자의 교류의 장이 마련되다
재단은 지난 8월 22일(목)에 “한중 역사·고고학 분야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고대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교류”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진행된 이번 학술 세미나는 COVID-19 이후 소강상태였던 한국과 중국의 역사·고고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표는 한중 학계의 소장학자들이 맡았으며, 중견 연구자들이 토론을 진행하여 관련 논의를 심화했다.
한중 학술세미나 관계자 단체 사진
동북아시아의 ‘공간과 길’을 살피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총 4명의 학자가 발표했다. 권순홍(한국항공대)은 ‘고대 동북아 도성 구획의 일례(一例) 고구려 전기 평양 도성의 공간과 구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자는 1910년대 지형도를 바탕으로 전기 평양 도성에 격자형 가로구획이 존재했으며, 이를 근거로 대성산성이 전기 평양 도성과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이어서 선리화(沈麗華, 중국사회과학원)는 ‘동위·북제 업성 궁성 배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東魏北齊鄴城宮城布局新識)’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재개된 업성 궁성부 발굴조사의 성과를 공유했다. 발표에 따르면, 업성은 철저히 계획된 평지 궁성으로 다중의 궁벽구조를 가졌으며, 당 장안성 태극궁 조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세 번째 발표는 백다해(재단 한중연구소)가 ‘5세기 동북아시아의 교섭과 길: 고구려의 남조(南朝) 교섭과 해상교통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고구려는 요동 일대를 확보하면서 요동 남부에 해상 거점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거점으로 중국 강남과 연결된 ‘강남해상로(江南海上路)’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는 요동 남부 해안지역과 북부 초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마련에 초석이 되었다고 보았다. 1부의 마지막 발표는 자오쥔제(趙俊傑, 중앙민족대학)가 진행했다. “환인과 집안지역 고구려 산성 방어 체계의 형성(桓仁與集安地區高句麗山城防禦體系的形成)”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발표에서 그는 최근 고고학 발굴조사 결과 환인·집안 지역의 고구려 산성은 4세기 중엽 이후에 축조됐으며, 고구려의 산성 방어체계가 기본 형태를 갖춘 것은 6세기 이후였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제기했다.
제1세션 종합토론
갈등을 넘어 교류를 모색하다
이어진 두 번째 세션, “갈등과 교류”에서도 총 4명의 학자가 발표했다. 정동민(한국외대)은 “612년 고구려(高句麗)-수(隋) 전쟁에 보이는 수군(隋軍)의 병력 편성”에서 전쟁에 참전한 인물의 열전과 묘지명 자료를 통해 612년 고구려와의 전쟁에 동원된 병력의 수를 추정했다. 쑨하오(孫昊, 중국사회과학원)는 발해 관련 문헌에서 확인되는 수령(首領)을 특정 신분이 아닌 사이(四夷)를 표현하는 관용어였다고 해석했다. 세 번째 발표를 맡은 최정범(계명대)은 “물질자료(物質資料)로 본 7세기의 요동(遼東): 전환기(轉換期) 순응(順應)과 저항(抵抗)의 이중주(二重奏)”라는 주제로, 7세기 후반 요동 지역에서 고구려와 중원의 물질문화가 복합되는 현상을 고구려 유민의 거주와 당의 안동도호부 설치 및 기미 지배와 연계해 해석했다. 마지막 발표는 장청산(姜成山, 호북사범대학)이 맡았다. 그는 “HGIS와 발해의 동북아시아 교류”라는 주제로 지리·고고학 분야에 집중된 발해 연구의 향상을 위해 HGIS를 활용한 발해사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제2세션 종합토론
학술 교류 활성화를 기대하며
이번 학술 세미나는 중국 학자들을 재단으로 초청해 연구 동향을 공유하고, 고구려·발해의 역사·고고학과 관련된 주요 문제를 논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국을 방문한 쑹위빈(宋玉彬, 흑룡강대) 교수 역시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중 간의 학술 및 인적 교류가 이전처럼 회복되기를 바란다”면서 향후 학술 세미나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재단에서는 매년 주제를 바꿔가며 학술 세미나를 개최해 중국과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한중 간 역사 인식의 간극을 좁히고,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