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독도문제와 동해표기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세미나 개최 등의 방법으로 세계에"동해"를 알리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동북아역사재단의 해외초빙학자 프로그램에 참여해 동해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라이너 돌멜스 교수를 만나 조언을 구해보았다.
한글에서부터 한국 정치 그리고 동해 연구까지 연구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 특별히 이렇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리학을 공부하던 80년대 중반, 동기들 중 한국 유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가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썼는데 참 재미있는 문자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일 처럼 분단된 국가이고, 88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어 이제 막 떠오르는 한국을 연구하고 싶었 다. 주위에 한국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희소성이 있고, 전망도 좋다고 생각 해서 한국학을 선택했다.
최근 몇 년간 동해 명칭 관련 연구를 발표하고,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연구 열정이 대단한데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
지리학자 이기석교수의 초청으로 동해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학 연구자의 의무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다. 동해 연구 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 주제다. 알고 보니 그때까지 공개된 것보다 더 많은 연구가 진행 되고있었는데 그것을 종합적으로 요약, 평가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한국의 동해표기 주장과 일본의'일본해'단독표기 주장에 대한 해외 학계, 특히 유럽 쪽의 반응은?
정치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동해 표기를 주 장하기 위해'동해'라고 쓰인 증거자료를 찾는 연구, 정해진 결과 위에서 하는 일부 연구들을 보며 정치적인 의도가 느껴진다고 피하는 학자들도 있다. 유럽의 언론인들 중에는 이런 분쟁 이 우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전쟁, 테러 등과 관련된 기사를 쓰면서 언급한'일본해'라 는 단어에 한국 정부의 공식 항의 편지가 날아온다. 다시'동해'라고 고쳐 내보내면 당장 일본 정부에서 연락이 온다. 역사적인 배경, 정치적인 배경을 모르는 그 기자에게는 당황스러운 일 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학을 연구하는 외국학자로서 동해표기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분쟁의 합리적 해결방안은?
일본과의 분쟁에는 독도문제도 있는데, 독도문제와 동해표기 문제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독도문제는 영토문제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증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야한다. 하지만 동해표기 문제는 다르다. '이름'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니까. 바다 이름도 그렇다. 대개 그 바다에 면해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정해진다. 국제법적 규범도 없다. 그래서 출판사마다 다른 이름을 써서 지도책을 펴낼 수 있다. 그런데 이미'일본해'라는 이름은 세계적으로 특히 서양에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제국주의 시대 이전부터'일본해'가 많 이 쓰였다. 따라서 일본해 표기가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동해표기는 논리가 아닌"습관"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오랫동안 '일본해'라고 불러온 바다를 하루아침에'동해'로 바꿔 부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언어습관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성, 여성을 따로 지 칭하던 명사가 중립적인 명사로 바뀌는 것처럼 동해표기도 그렇게 접근해야한다. 일단 국제 사회에'동해'가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일본과 합 의해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 전까지는'동해'와'일본해'라는 이름을 함께 쓰자고 설득하는 것 도 방법이 될 것이다.
향후 동해표기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한국정부와 국민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오랫동안 동해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많은 학자들을 초대해 이 문제도 이슈화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쟁하게 되었다. 덕분에 동해로 표기가 바뀐 곳도 이미 많이 있다. 이 부분은 참 잘했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는 학자들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이 문제를 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고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반복되는 광고는 싫증을 부른다.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 하다. 또, 이런 작업들은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세미나에 참석하다 보면, 한국인 발 표자들의 논문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한국어 원문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 덕이게 된다. 배경지식이 없고, 한국의 관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직역한 발표문 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런 기본적인 작업들을 함께 하면서 국제사회에'동해'가 익 숙해질 수 있도록 지금처럼 외국인들을 초대하고 세미나를 열고 교류를 하는 것이 좋은 방법 이 될 수 있겠다.
라이너 돌멜스(Rainer Dormels)
1957년 독일 출생.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하였고, 한국학을 전공하면서 언어학과 정치학부분에 집중했다. 이후 자신의 연구 분야를 종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주제인'동해표기'문제를 선택해 연구를 시작했다. 2008년 비엔나에서 열린 제13회 동해 국제심포지엄 개최를 주도하기도 했다. 현재는 비엔나 동아시아연구소의 독도개설서를 공동집필하고 있다. 2009년 봄 안식년을 맞아, 해외초빙학자로 재단에 머물며 연구를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