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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관점의 차이 그리고 환조적(丸彫的) 지.각.
  • 장석호 제2연구실 연구위원

십 수 년 전 어느 여름, 몇몇 국내 학자들과 함께 몽골 초원의 유목민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손님들을 위해서 안주인은 불을 지피고 밀가루를 반죽하여 칼국수를 끓여 주었다. 땔감은 잘 마른 소똥이었는데, 불기운이약해지면 안주인은 습관적으로 소똥을 아궁이에 집어넣고 또 집어넣으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그 모습을 지켜 본 일행 중의 한 사람은 칼국수를 먹지 않았다. 이유는'똥 만진 더러운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의 식사는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낯익은 일일지라도 관점이 바뀌면 달리 보일 수 있음을'똥 만진 더러운 손'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환기시켜 주었기때문이다. 사실 몽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잘 마른 소똥은 더없이 좋은 땔감이지만,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동료의 관념 속에는 말랐건 안 말랐건 똥은 똥이고 또 그것은 더러운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관점이 다르면 얻어지는 결론도 매우 달라진다. 똑같은 사물일지라도 보는 이의 문화적 기반 차이에 따라서 곱게도 보이고 밉게도 보이며, 선하게도 보이고 악하게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두고도서로 엇갈린 반응과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 가운데 하나가 안중근 의사이다. 한·일 양 국민들은 그를 의사(義士)'와'테러리스트'라는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어디 예들이 그것뿐이겠는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갈등들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상이한 관점이 도사 리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봐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만이 바르고 그 나머지는 모두 그르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시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인식의 차이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어느 누구도 그 이면의 세계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의사(義士)와 테러리스트, 그리고 피카소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피카소를 떠 올렸다. 그는 20세기가 낳은 회화사상 최고의 거장이며, 큐비즘의 창시자이고 현대 회화의 개척자이다. 그에 대한 이런 수식어들은 당시 서구 화단에서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지각 방식, 즉 원근법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회화의 세계를 개척하였기에 붙여진 것이다. 원근법이란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리는 방법인데, 이 경우 그 뒤나 옆모습 등은 볼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그려진 것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피카소는 원근법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다시점(多視點) 화법으로 해결하 였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사물을 형상화할 때에도 앞뒤는 물론이고 좌우 와 위아래 등 여러 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종합하여 재구성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지각 방식을'환조적 지각'이라고도 하는데,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아비뇽의 처녀들'(사진)은 바로 이 방식에 의해서 그린 첫 번째의 그림이다.

만약에 한·중·일 삼국의 역사학자들이'환조적 지각'방식으로 역사를 바 라본다면.... 그동안 되풀이되어 온 역사 갈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 역사에세이는 재단 연구위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의 칼럼입니다. _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