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현재 일본은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19세기까지는 독도를 송도(마쯔시마)라고 했다고도 하는데, 이렇게 독도 지명이 일본 내에서 혼란스러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Answer:
일본에서는 19세기 중엽부터 다케시마(竹島)를 마쯔시마(松島), 마쯔시마(松島)를 량코도(リヤンコ島)라는 새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다케시마(竹島)를 마쯔시마(松島)로 부르게 된 시기는 서양 지리학자 지볼트가 '일본전도(日本全圖)'를 제작했던 1840년이후부터다. 또 마쯔시마에 량고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Liancourt)가 오늘날의 독도를 발견하면서 리앙쿠르 암초로 명명했던 1849년부터다.
지볼트와 일본전도
지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 1796-1866)는 독일 바이에른 지방 뷰르츠부르크 태생으로,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그는 동인도회사에 취직한 이후 1823년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에 있던 화란상관(和蘭商館)의 의사로 일했다. 의료 활동 및 의학을 강의하는 틈틈이 일본의 자연, 동식물, 역사, 지리 등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지볼트는 일본에서 서양학을 발전시키고 그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고, 독일로 돌아간 후에도 일본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일본을 서구에 소개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 관한 지볼트의 저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일본지(日本誌)가 있다. 이 책은 1832년부터 시리즈로 출판되었고, 1854년 완간되었다. 이 중 1840년, 일본지도를 소개했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전도(日本全圖)다.
지볼트는 대일본세견지장전도(大日本細見指掌全圖),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 개정일본도(改正日本圖), 신판일본국대회도(新板日本國大繪圖), 일본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 등을 참고해 만든 이 지도에서 현재의 울릉도를 '송도' 즉 '마쯔시마(Matsusima, Mats-sima, I. Dagelet, 松島)'로, 울릉도 왼쪽 서양인들이 '아르고노트'라고 불렀던 섬을 '다케시마(Takasima, Tak-sima, I. Argonaut, 竹島)라고 표기했다. 그런데 서양 고지도에 나오는 이 '아르고노트'는 실재하지 않는 섬이다. 때문에 서양지도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지볼트는 19세기 중엽 '일본전도'를 쓰면서 '아르고노트'를 '죽도'(다케시마)라고 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일본인의 잘못된 독도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일본의 독도인식 부족
1966년 일본 외무성 관료인 카와카미(川上健三)는 1966년 "오늘날 다케시마(竹島)를 일본에서는 명치시대 초기까지는 일관되게 마쯔시마(松島)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카와카미는 "유럽인들이 다케시마와 마쯔시마의 위치를 측정하는 도중 실수를 범했고, 지볼트가 도명(島名)을 잘못 지칭하여 명칭의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일본외무성은 2008년 "일본이 다케시마와 마쯔시마의 존재를 옛날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주장까지 전개했다.
그러나 1987년 일본 역사학자 호리(堀和生)는 19세기 중반 구미의 지도를 살펴보면 "동해에는 울릉도가 두 개 있거나, 독도를 포함해서 세 개의 섬까지도 그려졌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케시마와 마쯔시마에 관한 구미의 정보 및 일본의 지식이 짜 맞춰지는 가운데 일본이 두 섬에 대한 인식의 혼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호리에 따르면 일본 육군참모국이 1875년 발간한 조선전도, 일본문부성이 1877년 발간한 일본전도를 살펴보면 "울릉도가 다케시마와 마쯔시마 두 개로 그려져 있고, 현재의 독도인 다케시마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또 "울릉도를 에도시대와는 반대로 마쯔시마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고, 동해에 하나의 섬만 있는 지도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는 세 섬이 그려진 지도도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870년대부터 1880년 초엽에 걸쳐 일본 정부의 두 섬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혼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3도설·2도설·1도설이 있었고, 두 섬의 위치관계를 올바르게 파악한 지도는 적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독도를 인지하고 영토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지명을 둘러싼 혼란의 책임을 지볼트에게 돌리고 있지만, 독도 명칭의 혼란은 역설적으로 일본인들 사이에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