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포로가 되는 위험성을 안고 연구에 임할 수밖에 없는가? 우선 일상과 일정 거리를 두고 순수 과학적 태도를 애써 갖추어도 사생활의 조건과 문화환경적 요소가 역사학자의 연구방향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몰역사적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는 작금의 연구풍토가 역사학자에게 시대에 묶인 죄수 행색을 강요하기조차 한다. 국제적 긴장의 원인 분석을 국가 간의 교역을 비롯한 현물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연구 방법이 갈수록 유행하고 있어서 탁월한 전문가조차도 역사를 사상(捨象)한 것으로 간주 하는듯한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진다. 이처럼 역사에 대한 일부 무지하고 몰지각한 비판론자들의 급성장 속에서 역사학자는 종종 민족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자칫 정부를 편드는 사람으로 취급받는가 하면, 역사는 표면의 동요에만 주목하고 잡다한 사실들의 먼지만을 상세히 기술할 뿐이라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조차 한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동북아역사재단은 설립 이래 독도와 간도의 영토문제와 위기, 전쟁, 평화, 파시즘 그리고 세계화 등의 문제에 관하여 과감히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중립적으로 사용하여 스스로 '객관적' 이기를 자처하는 학문을 역사라고 부를 때, 동북아역사재단의 향후의 연구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몇 가지 학문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세계사·동아시아의 변화 속에서 한국사회 이해를
합리화만큼 큰 거짓말은 없다. 외교문서의 편찬은 위에서 언급한 역사학의 출발점이자 인류의 역사를 고찰하는 기본 재료이다. 합리화를 위한 도구로서 윤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일국사적인 협애한 역사인식이나 연구방법으로부터 탈피하여 세계사적 변동의 일환으로서의 동아시아의 변화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반만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국가다. 한국의 오랜 역사적 유산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 연구가 그것을 미화하는'애국적'소양으로 전개되어서는 안될것이다. 그러한 연구는 역사 관련 연구를 자칫 '자국 중심주의'의 늪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 자국 중심의 연구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화시키기 보다는 지구가 자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설명을 초래하기 쉽다.
최근 인문사회과학분야 전반에 걸쳐 미국, 일본, 유럽국가 등 선진국에 장·단기로 유학하는 우리 학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 학문적 공헌을 결코 폄하해서는 안되겠지만, 이들 선진국 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학자들은 해외학계의 조류를 무비판 적으로 받아들인 우를 곧잘 범한다. 다시 말해, 미국 등 선진국 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나라나 지역의 문제를 구명하기 위해 만든 방법론을 깊은 성찰 없이 한국과 동북아에 그대로 적용한 것은 학문상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이 '선진국 방법론 만능주의' 가 갖는 오류는 쉽게 말하면, 미국에 좋은 것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좋다는 식인것이다.
구한말의 국제관계에 국한시켜서 보더라도 이제는 당시의 국제관계에 대한 1차 자료를 기초로 한 연구 결과물이 상당히 축적되어 근대적 변환기 한국사회의 문제를 역사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향후의 과제는 이같은 바탕 위에 한국사회의 문제를 복잡한 국제관계의 현실 속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진력하는 것이다. 이 작업에 기여하기를 원한다면, 역사학자는 스스로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임을 자처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이제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자는 이중, 삼중의 부담과 고통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역사연구에서 '유추' 의 함정 경계해야
셋째, 민족주의에 대한 자기 성찰이 부족했음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해방 후 학문분야조차 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연구경향 조차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아니면 기능적 세계주의로 쉽게 나뉘었다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 규명은 유럽의 경제제국주의에서 온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동북아 지역 분쟁을 연구하면서 경제, 정치, 그리고 민족주의를 별개로 떼어 생각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글로벌 21세기에는 세계강대국이 신흥공업국가의 부상에 대항하여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한편 공산품 이윤급감을 상쇄하고자 자본투자에 온힘을 다하고 있다. 즉 사실상 민족주의를 전개하면서 세계화의 미명아래 자본은 국경을 넘어 온다.
넷째, 역사의 교훈이라는 미명아래 자칫 유추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리튼 스트레이치(Lytton Strachy)는"역사학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식' " 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의 외침을 음미해 보면, 이는 역사학자가 흔히 빠지기 쉬운 유추에 대한 경계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역사상의 유추는 항상 매혹적인 반면에 위험스러운 함정이다. 그런데 고정된 목적에서 사고를 조금만 확장시킨다면 곧바로 수많은 반대 증거에 노출되어 유추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손쉬운 교훈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역사가 유용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과 현실에 유사한 것을 보고 이를 통해서 문제해결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고 이와는 매우 다른 어떤 것에 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일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 목적은 이 지역 평화 구축에 기여하는데 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학자만이 아니라 국제적 공동의 역사연구를 통하여 동북아에 사는 사람들이"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알게 만드는데 앞장서고, 결과적으로 국가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