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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해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개척
  • 글 _ 이윤정 / 사진 _ 김효술
정영진 연변대 역사학부교수 발해사 연구소 소장

지난 7월 1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해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발해역사관이 강원도 속초시에 개관했다. 그동안 쌓인 발해 조사와 연구 결과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날 개관 기념으로 열린 학술회의에는 발해사 연구의 한 획을 그은 정효공주의 묘를 직접 발굴한 연변대학교 정영진 교수도 참석했다. 현재 연변대학교 발해사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발해 유적 발굴과 발해사 연구에 힘을 쏟고 있는 정영진 교수를 만났다.

최근 발해사가 한국과 중국 러시아 등 관련 국가들 사이에서 역사연구의 새로운 주제로 관심을 끌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다고 보는지?

역사 귀속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역사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영토문제 같은 문제와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관련 국가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고 논리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발해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 주제가'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발해역사'다. 여기서 새롭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기존에 나와 있는 연구 결과물들과는 조금 다른, 우리 연변대학 발해연구소만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겠다는 뜻이다. 일단 지금까지 관련 나라들이 어떠한 연구를 했는지, 쟁점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정리를 하며 연구를 시작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다른 이들의 생각을 알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연구의 가장 핵심 부분인 '발해사를 둘러싼 4가지 쟁점에 대한 의견'이 기존의 연구들과 다르고, 새롭다고 할 수 있겠다.

정영진

'발해사를 둘러싼 4가지 쟁점에 대한 의견'이란?

모두 다 민감한 문제들이다. 첫째는 발해사의 역사귀속 문제다. 우리는 "도대체 발해사는 어느 나라의 역사인가?"하는 질문에 한국사 혹은 중국사라는 딱 떨어지는 대답보다는 발해를 1300년 전에 존재했던 독립된 한 나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생각한다. 발해라는 나라가 동아시아에서 당시 당나라, 일본, 신라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유지해왔는지, 역사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발해와 함께 동북아 역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인지, 독립국가인지 하는 문제다. 우리는 발해를 당나라 지방정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나라에서 책봉 받고, 당나라에 조공을 바쳤다고 해서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본다면 당시 주위 나라들은 모두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보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당시 강국이었던 당나라와의 관계는 국제 질서를 지키기 위한 외교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당나라와 완전히 대등한 독립국가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대외적으로는 당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고 황제를 칭하며 나라를 다스린 독립국가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 번째 쟁점은 발해의 문화에 대한 문제다. 이는 역사귀속 문제와도 직결되는 문제인데, 결론적으로 말해 발해 문화는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은 복합 문화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발해 초기에는 고구려와 말갈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말기에는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네 번째 쟁점은 발해의 주체민족문제다. 어느 민족이 발해의 주체 민족이냐 하는 것은 발해를 건립한 대조영집단을 어떻게 보느냐에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기에 대조영이 말갈족이냐, 아니면 고구려인이냐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을 해왔다. 하지만 대조영의 혈통만 캔다고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발해의 구성원은 고구려유민, 대조영집단, 말갈족 이렇게 세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 졌다고 문헌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대조영의 혈통을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치 집단의 구성을 규명하는 것도 주체 민족을 밝히는데 중요하다. 만약 대조영이 말갈혈통이라고 해도 이때의 말갈(대조영을 속말말갈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지만 백산말갈로 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은 장기간 고구려의 통치를 받던 고구려화한 말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4가지 쟁점들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앞으로 나오게 될 책에 담았다. 이 책이 출판되면 발해사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수 있고, 관련 국가들의 이견을 좁히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해사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는?

중국에서 연구를 하는 조선족 학자로서 현실적으로, 민감한 문제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그래서 발굴과 같은 구체적인 일을 많이 해왔고, 그 분야에 특히 관심이 있다. 중국과 한국, 러시아는 이미 발굴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다양한 유적과 유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처녀지로 남아있다. 지금 최대 관심사는 바로 북한 유적 발굴이다. 그래서 우리는 5년 전부터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지난해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가 발굴을 시작해 내년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 발해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놀라운 결과물이 나왔고, 앞으로도 상당한 결과물을 기대하고 있다.

발해사 연구를 포함해 한·중·일 세 나라에서 심심치 않게 역사로 인해 갈등이 표출되곤 하는데 재단의 해외학자초빙 프로그램 등이 역사 갈등 해소에 어떤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나?

갈등이라는 건, 서로 만나야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풀 수 있는 것이다. 만남을 거듭할수록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오해를 풀고 화해를 주도해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재단은 해외학자를 초빙해 학자들이 서로 다른 나라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서로의 연구방법을 배우며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역사 갈등 해소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영진

1952년생. 오랫동안 연변지역에서 고고학 발굴을 진행하였으며 특히 발해유적의 조사와 발굴에서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 『발해 고분 연구(2000)』등 7편의 저서가 있고,' 중국의 발해사 인식(2006)', '발해의 건국집단과 건국지, 건국집단과 국호(2007)'를 비롯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을 받아'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발해 역사'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