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동경재판의 A급 전범들에 대해 무죄를 주장해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도인 판사가 있다고 하던데, 그분은 어째서 그런 주장을 한건가요? 친일파였나요?
Answer:
동경재판과 펄 판사의 판결 내용
라다비놋 펄(Radhabinod Pal, 1886-1967)은 인도의 법학자이며 재판관이다. 1946년에서 1948년까지 3년에 걸쳐 이른바 동경재판이라 일컬어지는 극동국제군사재판(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이 열려, 제2차대전 당시 일본의'전쟁지도자'28명에 대해 통상적 전쟁범죄(war crime)와 함께, '평화에 대한 죄(crimes against peace, 침략전쟁의 계획, 준비, 수행 등)와 '인도에 대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 전쟁 전 또는 전쟁 중의 살인과 살육, 집단살해 즉 섬멸, 노예적 학대 혹은 혹사와 같은 정치·인종·종교에 입각한 박해행위 등)를 물었다. 그 결과, 병사한 2명과 정신이상자 1명을 제외하고, 7명에게 사형이, 16명에게 종신형이, 2명에게 금고형이을 각각 선고하였다.
펄은 11명의 판사 중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주장한 단 1명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일본인들은 그가'일본 무죄론'을 주장했다고 이해하였고, 일본의 전쟁책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의 판결을 호재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펄을 기리는 현창비 즉 기념비가 야스쿠니신사 내에 세워졌고 또 역사에 대한 자학적 풍조의 근원은 동경재판에 있는 것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또 A급 전범으로 후에 총리가 되었던 키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손자인 아베 신죠(安倍晋三) 전 총리는 재임 중 인도 방문길에 펄의 아들을 만나기도 했다.
일본 포함 강대국의 식민주의 비판한 것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펄이 일본의 도의적 책임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장장 3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서에서 일본이 침략전쟁의 길을 걷게 된 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잔학행위(남경학살 등)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단지, 일본의 전쟁지도자들을 유죄라 할 '국제법적' 근거는 없다고 판단하는 한편, 구미열강에 의한 식민지주의에 깊은 울분을 품고 비판의 화살을 연합국 쪽으로도 겨누어, 미국이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을 투하한 행위를 엄하게 규탄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연합국이나 일본이나 궁극에 있어서 양자 공히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음에도 극동국제군사재판소가 '승자의 재판' 으로 제한되고 이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이를 경고하고 비판했던 것이다.
진실을 진실로서 인정하여 법률가로서 엄정한 입장을 관철함으로써 '평화' 에 좀 더 가까워지려 했던 펄의 진정한 자세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담론 중'형편에 맞는 부분'만을 잘라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용하는 것은 응당 삼가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