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침탈 100년 국제학술회의
2010년은 일본에 의해 한국이 강제병합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1910년 강제적인 한국병합에 대해 법적·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합법론을 강변하거나, 일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조약은 합법이라는 유효부당론으로 견강부회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일간 역사갈등의 본질을 규명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해소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이자 정의의 소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한·일 양국은 20세기의 유산인 암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한 진정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동북아평화공동체의 건설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일 양국이 경험한 뿌리깊은 침략의 기억과 수탈의 상흔은 여전히 장애물로 남아 상생과 번영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방해하고 있다.
1910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강제병합은 그러한 역사갈등의 본질적 원인이자 출발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것은 제국주의 침략의 잔재로 남아있는 청산해야 할 역사문제들로서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한·일간 역사적 현안 과제가 그로부터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일본에 의한 한국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지난 6월 22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일본의 한국병합 효력에 대한 국제법적 재조명" 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관련 분야의 국내외 최고 석학들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진으로 역사학 뿐만 아니라 국제법, 국제정치학 등 다양한 학제적 연구를 통해 "역사적 정의" 라는 관점에서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을 재조명하였다.
참가자 가운데 UN대학 부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오사카경제법과 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무샤코지 킨히데(武者小公秀) 교수의 "일본의 한국병합의 불법성과 역사적 교훈"이란 제목의 기조강연은 오늘날 국제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우리에게 그 시사하는 바가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절차 무시·무력 동원 협약은 "원천무효"
무샤코지 교수는 한일강제병합은 관련 협상이 군사적 압력으로 진행됐을 뿐 아니라 절차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세계 어느 현행법(lex lata)에서도 무효임을 강조했다. 일본이 아무리 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하더라도 법적 정의에 따라 있어야 할 법(lex ferenda)의 관점에서 식민지화를 통해 평화롭게 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와 인도에 반하는 국제범죄임을 설파했다.
아울러 한일강제병합을 당시 국제형법상 "국제범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경에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는 역설적으로 법적 정의가 아닌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형법이 규정되었음을 규명하였다. 그것은 도쿄재판에 판사로 참여한 네덜란드 재판관 베르트 뢸링(Bert Roling)이 "당시 식민주의를 국제범죄로 규정하면 미국 노예제 문제까지 부각되기 때문에 전쟁범죄만으로 국한시켰다"라고 언급한 것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적 정의에 입각하여 '있어야 할 법인'(lex ferenda)에 대해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그당시의 법인 '시제법'(Intertemporales Recht)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소급입법' 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국제인권규범에 대해 일본정부가 보인 태도가 그것을 입증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미국 정치사상가로 활동한 한나아렌트(Hanna Arendt)는 제노사이드, 곧 집단학살과 같은 국제범죄의 등장시"정의"는 그 자체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에 의한 심판이 필요하다고 갈파하고 있다.
따라서 1990년 이래 일본 세카이(世界)지를 무대로 한국병합 관련'조약'의 효력에 대해 이태진 서울대 교수와 운노 후쿠쥬(海野福壽) 메이지대 교수 등 한일 양국의 역사학자들 간에 이루어진 논쟁과 관련하여, 일본이 주장해 온 그 당시의 법인 '시제법적 관점'을 분석의 틀로 한 국제법적 연구의 함의가 갖는 시의성이 더욱 긴요해졌다.
일, '정의' 와 '양심' 으로 역사갈등 해소에 나서야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 대해 박배근 부산대 교수는 1910년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당시 서양과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법 개설서의 분석을 통해 당시 조약체결의 형식과 절차를 분석하고 그 공통분모를 도출함으로써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규명하였다. 서양의 J. C.Bluntscli, Theodore D. Wolsey, L. Oppenheim, W. E. Hall, 그리고 일본의 아키야마 마사노스케(秋山雅之助), 쿠라치 테츠키치(倉知鐵吉), 아리가 나가오(有賀長雄), 타치 사쿠타로(作太) 등의 저술에서도 전권위임장이 없거나 비준이 없는 조약은 무효임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고종이 한국의 중립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지만 일본군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 그로테 파스칼(Grotte Pascal)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는 대한제국 황제가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밝히기 위해 항의한 점을 들어 법적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또한 에드워드 슐츠(Edward Shultz)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의 하와이 병합과 '한일병합' 의 유사점을 분석하며 일본이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병합, 문화를 말살한 것은 불법임을 강조하였다.
오늘 우리는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년을 앞둔 시점에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그러한 기반위에서 역사화해를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 강박을 통한 무효조약인 강제병합조약을 전제로 이루어진 일본의 불법적인 한국지배 아래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전쟁에 강제동원한 행위들은 불법이며,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동원한 행위는 불가침의 국제강행규범(jus cogens)에 대한 위반인 것이다. 일본정부는 잘못된 역사에 대한 부인이 정의에 대한 부정이자 평화에 대한 거부임을 인식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인류의 보편적 정의와 양심으로 역사갈등 문제의 해결에 나섬으로써,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2010년, 한일강제병합 100년은 진정한 역사화해와 평화구축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