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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위령'을 넘어 '평화'를 향한 출발점
  • 정영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동북아시아 평화벨트 국제회의

동북아시아평화벨트 국제회의

동북아시아평화벨트 국제회의가 "동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전쟁 기억" 이란 제목으로 지난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일본 큐슈의 가고시마에서 열렸다. 작년부터 '히로시마-쿠레 지역과 나가사키-사세보 지역의 전쟁기억·기념과 평화운동'을 테마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비슷한 주제에다가 지역마저도 인접하고 있는 터라 어떻게든 참석하고 싶었다. 다행히 재단의 배려로 이번 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관할 수 있었다.

대회 첫날 이시카와(石川捷治, 쿠루메 대학) 교수가 기조발제에서 지적한 것처럼, 큐슈 지역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전쟁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다. 전근대 시대에 사가현의 나고야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거점이 되었고, 이때 조선에서 끌려간 많은 도공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큐슈였다. 나가사키현의 사세보(佐世保)는 근현대시기에 일본의 대륙침략과 동남아시아 침략의 출병 기지였고, 큐슈 남부지역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 가미카제 특공대의 출격 기지였다. 또한 후쿠오카현의 이타즈케(板付), 아시야(芦屋), 츠이키(築城) 기지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주요 출격지였다. 이 때문에 큐슈에는 과거부터 전쟁과 관련된 유적이나 기념물이 다수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전쟁유적들의 현황과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이를 동북아시아에서 평화벨트를 구축하는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이번 대회의 테마였다.

본 대회는 24일과 25일에 걸쳐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이 가운데, 앞으로 진행될 대회의 성과물들을 모아 '동북아시아 전적·식민지유적, 유물 가이드북'을 만들자는 키미즈카(君塚仁彦, 동경학예대학) 교수의 제안이 큰 관심을 끌었다. 동북아시아평화벨트 구상의 최종 목표를 세대를 건너 전승을 위한 평화교육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유적 선정이나 그에 관한 설명, 유적들 간의 관계와 현재적 쟁점까지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의 성패여부는 현재 참가자들 내부에서 어떻게 파트너십을 높여 가면서, 리더십을 만들어 공동 작업을 계속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세대를 건너 전승되는 평화교육을 위한 제안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소통 국제 학술회의

그런 의미에서 대회 기간 동안에 제기된 여러 쟁점들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마무리된 점은 여러모로 아쉽다. 예컨대, 손과지(孫科志, 復旦大學) 교수가 발표한 "중국의 전쟁교육"은 애국주의·민족주의의 시각에서 중국의 저항전쟁의 정당성을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적 전통계승이 평화 달성에도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애국주의의 진보적 가능성에 관한 부분은 최근 한국에서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저항적 애국주의·민족주의가 보편성과 현재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다. 중국 변방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리·독립 움직임이나 양안관계,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등 평화의 쟁점이 과거 전쟁에 관한 정당성에서 현재적 쟁점으로 연결될 경우 아시아·태평양전쟁이나 한국전쟁과 같은 과거의 전쟁으로 논의를 국한시킬 것인가 아니면 논의의 지반을 더 넓혀갈 것인가?

대회기간 내내 필자의 뇌리 속에서 맴돌았던 또하나의 문제는 죽은 자들의 혼을 위로하려는 유족이나 동료들의 기억·기념활동이 어떻게 평화지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도진순교수가 논문에서 소개한 탁경현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탁경현의 위령비 건설을 주도한 후쿠다 쿠로미처럼, 죽은 자의 혼을 위로하고 싶다는 산자들의 욕망과 바람이 공개성을 띠게 될 때, 그러한 욕망은 이미 존재하는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적 관계나 사회적 관계망 속에 놓이게 된다. 반면 유족이나 지인들은 사자의 죽음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거나, 최소한 자신들의 추도행위에 순수성을 주장하려 한다. 이러한 풀뿌리 수준에서의 의식이 야스쿠니와 같은 국가적·집단적 추도행위와 연결될 때, 산자들은 자신의 위령행위가 갖는 정치적 효과에 민감해야 할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니시무라(西村明, 가고시마대학) 교수가 소개한,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들을 위령하는 연등행사'만토우나가시'가 흥미로웠던 것도 이지점에서였다. 연등행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피폭지를 떠도는 영혼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실천을 촉구한다고 느꼈고, 윤리적 책임의식의 발로로 연등행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 없는 무연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행위는 그 대상에서는 보편성을 띠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행사는 현재의 정치적·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떤 효과를 산출하는가.

가령, 무연고 사망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피할 수 없는 재난이 아니라 인간행위의 산물이라면, 이들을 제3자로 일반화하는것은 그 죽음에 관한 책임을 떠안는데 충분할 것인가. 그러한 일반화는 그 죽음의 역사성에 관한 확인이 전제되어야 하며, 바로 그때 그 죽음을 떠안는 책임, 윤리적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연등행사에서 무연(無緣)의 계기와 "원폭으로 죽임을 당한 이름도 없는 조선인을 위해, 이름도 없는 일본인이 속죄한다"는 오카마 사하루의 무명(無名)의 태도는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회를 마치면서, 필자는 죽음의 역사성과 위령의 정치성에 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위령행위를 평화에 이르게 하는 출발점이 라고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4개국 사례 다양하지만 쟁점 분산 아쉬워

대회 내용과 관련하여 아쉬웠던 부분들을 지적하자면, 우선 각 논문들을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발표하였는데, 각각 전적발굴과 보존, 평화구상과 역사인식, 전쟁의 기억과 기념, 가고시마·큐슈에서 전적·기념시설이라는 부회 또는 주제로 구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별로 명확한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4개국(중국, 대만, 한국, 일본)의 여러 지역에 관한 사례들을 발표하다 보니, 한편으로 다양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논의가 산만해지고 논의의 과정에서 쟁점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각 지역을 돌아가며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면, 가고시마·큐슈 지역의 유적, 기념물들에 관한 논의를 보다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대회의 문제의식과 논의를 어떻게 확산시킬것인가와 관련하여 네 나라의 젊은 연구자들과 학생들의 참여를 조금 더 넓혀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필드워크를 겸한 현재의 논의들이 학생들이나 젊은 연구자들에게 좋은 교육과 교류의 장이 동북아시아평화벨트 국제회의가 "동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전쟁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