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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시민과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역사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민족문제연구소 학술회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김병상, 소장 임헌영)는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 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출범 당시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본 연구소는 왜곡되고 굴절된 근현대사 특히 친일문제를 최우선 연구 과제로 설정하고 『친일인명사전』발간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어느 역사학자는 말했다. "한국 사회 만악(萬惡)의 근원은 바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데에 있다"라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세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 또는 점령지로 전락했던 나라들은 외세가 물러나면 최우선적으로 단행했던 작업이 바로 부역자 처벌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예외였다. 그로 말미암아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하고, 친일파는 3대가 흥한다'는 어느 시인의 절규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상식과 정의는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했고, 우리 사회는 기회주의와 타락한 가치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역사문제를 회피한 업보였다.

독재정권이 끝나고 사회 민주화가 진전되었다. "감춘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마태오 10,26)라는 성경 말씀처럼, 민주화는 금기시되었던 많은 진실들과 아프게 대면하게 했다. 친일문제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금기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불이익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 친일문제를 회피해온 이땅의 기득권세력들 특히 친일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은 우리 연구소의 활동과 『친일인명사전』편찬 작업을 폄훼하고 방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때마다 시민들은 친일문제 청산이라는 대의를 흔들림 없이 지켜주었다. 특히 지난 2004년 1월 단 11일 만에 네티즌들이 『친일인명사전』발간 후원금 5억원을 모아준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쾌거였다.

학술연구단체가 이처럼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진성회원 5천여명이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 민족문제연구소 한 곳 뿐이다. 대부분의 학술연구단체들이 학자들만의 집합체라면 우리 연구소는 설립 당시부터 '학술' 과 '실천' 이라는 양대 축으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는 역사문제가 단지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결국 시민들의 역사의식이 높아져야만 역사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연구소 설립 당시부터의 일관된 신념 때문이다.

올 가을에는 드디어 『친일인명사전』 전3권(권당 약 900쪽)이 출간된다. 『친일인명사전』 에는 약 4500여 명의 인물들이 실릴 예정이다. 반민특위 해체 60년만에 그리고 국권침탈 100년을 앞두고 발간되어 더욱 뜻깊다. 사전 발간 이후에도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해외편),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분야별·인물별 연구서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가칭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사자료관' 건립 운동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한편 우리 연구소는 제3회 윤상원상 학술부문 단체상(1993년), 제16회 심산상(2004년), 제19회 단재상(2005년), 제17회 안종필자 유언론상 특별상(2005년), 제17회 전교조 참교육상(2008년), 제5회 한림기록문화상(2009년) 등을 수상했으며, '진실과 미래 국치 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 '안중근의사 의거·순국 100주년 기념사업회' ,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등의 사무국을 맡아보면서 역사관련 연대활동에 중심에 서있다.

※ '교류와 협력' 은 역사관련학회와 시민단체의 활동을 소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