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중국의 일부 학계에서는 고구려와 발해 등이 모두 중국의 책봉을 받고 조공을 바쳤으므로 고대 중국 왕조의 지방정부라는 논리를 펴는데, 이런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요?
Answer:
중국왕조의 이민족 통치 방식?
책봉과 조공은 중국의 주나라 왕실과 그 주변의 작은 국가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중국왕조 내부 즉 국내를 통치하기 위한 지배방식이었다. 그러던 책봉과 조공은 한나라 이후부터 중국왕조와 인접국가간의 관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즉 이로부터 책봉과 조공은 전통시기 동아시아세계의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제도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책봉은 중국황제가 인접국가의 수장에게 특정한 관작과 그에 상응하는 물품을 내려줌으로써 그의 지배권을 인정하여 주는것을 말한다. 조공은 인접국의 수장이 중국황제에게 가서 조알하고 그 땅에서 난 공물을 바치는 행위이다.
중국학계는 고구려와 발해가 역대 중국왕조에게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이들 나라들을 중국왕조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한다. 때맞춰 공물을 바쳐야하고 그것도 모자라 상대를 직접 찾아가 둘 사이의 상하관계를 확인한다는 것은 주종관계임에 분명하다. 또한 황제가 내려준 작위가 아니고서는 그 지배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면, 그의 지위는 황제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일테니 그 지배권이란 임시적인, 그야말로 위임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학계는 책봉과 조공이란 중국왕조가 이민족을 지배하는 통치방식의 하나이며, 영토로 편입시켜 지배하는 군현지배와 다른점이라면 수장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방식이라는 점일 뿐이라고 본다.
양자 관계 실상 무시한 아전인수식 해석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중국왕조의 책봉이 고구려왕의 국왕이라는 지위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고구려왕이 고구려인과 그 땅을 통치하는 것은 중국왕조의 ‘고구려왕’책봉에 의지한 것이 아니었다. 고구려 고유의 통치 질서 속에서 고구려국왕은 즉위하였고, 그 통치권을 행사했던 것이다. 또한 고구려나 발해는 중국왕조에 자주 사절을 보내 조공하였지만, 그것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다. 이들 국가의 관심은 조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우호관계나 경제·문화적 혜택에 있었다. 그러므로 조공은 고구려가 중국왕조에 신속(臣屬)하였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아니라, 도리어 양자 간에는 실질적인 주종관계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실례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중국학계의 이해란 제도 본래의 의미에 기대어 책봉에는 ‘위임’을, 조공에는 ‘신복’을 전제로 삼아 고구려와 중국왕조의 관계를 해석한 것임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관계의 내용이란, 시대변화와 상관없이 고구려는 늘 중국왕조에 신속해 있었다는 주장의 확인일 뿐이다.
고구려의 긴 역사 속에서 책봉조공관계를 맺은 중국왕조는 한둘이 아니었다. 나아가 중원이 분열되어 있던 남북조시기에는 남조와 북조 모두에게 조공사절을 보내고 책봉을 받은 바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와 중국왕조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관건으로 삼아야 할 것은 양자의 관계가 책봉조공관계였다는 점이 아니라 양자 간의 관계가 형성되는 저간의 사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소홀히 한 이해는 사실에 기반한 연구라고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