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경제와 정치 연합이 큰 흐름을 타고 있는 요즘, 동북아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미 한참을 앞선 유럽연합이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보면 동북아가 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다. 이번 호에서는 얼마 전 재단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의의와 과제'를 주제로 강연을 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국제해양법재판소 판사에게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조언을 청해 들어본다.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해 달라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68년 조세조약에 대한 협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아직 전쟁의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여서 여러모로 혼란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후 방문할 때마다 한국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유학시절 만난 한국 친구들을 통해 한국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81년부터 1984년까지는 주한일본대사관에서 근무를 하며 한국어를 익히기도 했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의의와 과제' 라는 주제로 재단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 내용을 보면 현 단계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에 대해 회의적인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상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동북아시아에서 당장 유럽연합과 같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이 일정 사항에 관해 자국의 주권을 EU에 이양한 초국가적 성격의 공동체다. 하지만 현재 동북아에서 주권의 일부를 국제기관에 이양하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ASEAN만 보더라도 관세철폐 또는 인하, 수입 자유화, 투자에 관한 협력 등 각국 간의 지역협력은 긴밀해지고 있으나, 대외공통관세를 창설하거나 가맹국들의 일부 주권을 ASEAN에 이양하는 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상만 좇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강연 중 공동체를 위한 네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그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나라는 아시아에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시아에서의 공동체 구상은 요원한 것인가?
공동체의 창설을 위해서는 첫째, 지역의 각국들이 모두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국가일 것, 둘째, 공동체의 가맹국들 사이에 극단적인 규모의 차이가 없을 것, 셋째, 관계 각국들의 경제, 사회 발전단계에 큰 차가 없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국들 사이에 첨예한 종교대립이나 근본적인 국가 간의 대립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조건들이 모두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수준 차이가 있다면 다른 나라와 협력을 통해 서로 끌어줄 수 있으니 그것은 상대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꼭 충족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동북아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대립이다. 한반도 남북 간 대립, 중국과 타이완의 대립 등은 공동체 창설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에 맞지 않다. 나는 이러한 대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 유럽식의 공동체를 욕심내기 보다는 정부 간의 협력이라든지 민간교류, 지역 간의 협력부터 꾸준히 시도하고 지속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동북아시아 지역 내 신뢰를 조성하는 것이 선결 문제다.
아직 먼 미래이기는 하지만 동아시아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한국과 일본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또한 앞서 말한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라는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생각을 한다. 북한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고 중국은 경제자유화가 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 자유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공통점이 많은 한·일 간의 협력은 지금까지도 많이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많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역사문제가 얽혀있는데 그 부분에서는 부드러운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인은 과거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반대로 일본인은 과거는 거의 무시하고 앞만 보고 있는 편이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앞을 보고, 일본인들은 역사를 공부하며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일 양국은 외교관계 수립 후 이웃나라로서 협력관계를 잘 맺고 있다가도 야스쿠니 신사, 독도 문제 등 역사 현안이 부상하면 긴장감이 감돌게 된다. 외교관 시절 현장에서 그런 위기 상황을 직접 경험했을 텐데, 그때의 느낌은?
역사문제가 있을 때마다 난처하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 부분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국과 일본은 99% 좋은 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예민한 역사문제가 발생할 때도 그 이면에는 경제교류라든지 인적교류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국적인 시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시점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역사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한국인들은 일본을 통해서 세계를 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일본이 세계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일본도 세계의 일부고 세계의 흐름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식민지화도 열강의 각축이라는 세계의 추세, 전체적인 국제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반도체 기술은 일본을 이미 능가했고 자동차 분야도 일본과 동등한 수준으로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문화수준도 마찬가지로 매우 높다. 그래서 더욱더 한국이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봐야하고 한·일 관계도 좀 더 큰 시야를 가지고 봤으면 한다.
한·일 간 역사 현안과 관련해 재단과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재단의 초청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이번 방한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일 간 역사문제가 있고 이견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서로 의견교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재단의 초대에 응했다. 독도 문제와 같은 경우, 한·일 간 오랫동안 분쟁이 있었는데 사실 그런 영토분쟁은 세계에 곳곳에 많이 있다. 이러한 영토문제는 감정적으로 대처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이 국제사회의 법치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만나서 교류를 하는 것이 필수다. 프랑스 유학시절 만난 한국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만들었고 그들에게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양국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교류를 해오며 한·일관계를 개선시켰고 지금도 1년에 수백만 명씩 왕래를 하며 한·일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나이 슌지 국제해양법재판소 판사
1961년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1990년 외무성 조약국장으로 취임해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가결을 위한 물꼬를 텄다. 1992년 총리부 산하 국제평화협력본부 초대사무국장으로 자위대 최초로 캄보디아 PKO 파견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종합외교정책국 국장, 외무사무차관, 주미대사를 역임했고 현재 국제해양법재판소 판사를 맡고 있다. '조약체결의 실제적 요청과 민주적 통제', '일본외교에서의 국제법', '일본의 PKO-법과 정치의 10년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