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선선해지려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던 9월의 첫 자락,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동네의 작은 영어학원을 들어서던 내게 선생님께서는 영어 에세이 대회에 나가 볼 것을 권유하셨다.
주제는 '안중근의사가 동아시아역사에서 어떤지위를 갖고 있는가?' 약간은 막막하게만 느껴졌지만 평소에 얄팍하나마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관심과, 그리고 영어와 관련된 대회라면 가리지 않고 다 도전해보고 있던 당시의 상황이 나의 고개를 가벼운 마음으로 끄덕이게 했다.
다음 날,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보니 내가 너무 쉽게 "덤벼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900자 가량의 에세이라니. 게다가 안중근의사에 관해서라면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사람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교과서 지식밖에 없는데 "저 많은 하얀 여백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고민이 앞설 수밖에.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안중근의사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지만, 역사적인 영웅에 대한 검색결과라기엔 너무도 빈약했다. 생각보다 많이 부족한 자료에 실망을 하던 중, 학교에서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일제 하 독립운동 단원에 들어갔고, 안중근의사의 이름도 교과서에 당당하게 적혀있었다. 그 때, 수업관련 자료들을 들춰 보던 내 눈을 붙잡은 것은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과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던 만큼 호기심을 채우려 에세이의 세부적 주제는 정해졌다.
안중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조사 후, 제국주의를 애써 포장하며 일본이 진정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원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이토의 동양 평화론은, 옥중에서 쓰다 영원히 미완으로 남은 안중근의 통찰력 있는 이론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중근은 진심으로 동양의 평화를 추구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 뜨겁게 주목 받고 있는 아시아의 경제 통합, 동북아시아 공동체 등 화합을 위한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한 시대를 훨씬 앞선 사람이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을 남겨두고, 글을 마무리해 아슬아슬하게 마감시간에 맞춰 제출한 뒤 '최선을 다 했고 많은 것을 배웠으니 됐다' 라는 심정으로 뿌듯해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자정이 넘어 문득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낯선 발신자가 눈길을 끌었다. 금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옆에서 기뻐하는 엄마와는 대조적으로 이 사실을 믿기까지도 며칠이 걸렸다.
시상식 이후 살펴보니 선구자적 인물을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사이트는 물론 해외 사이트에는 안중근의사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는데다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잘못된 정보들도 눈에 띄었다. 또, 안중근의사의 사상은 커녕 다른 애국지사들과 구분을 못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이자 나라를 위해 싸운 의사였던 이러한 위대한 인물을 현재 사람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잊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빌며, 내 에세이가,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이 약간이나마 100년 전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향해 총구를 겨누던 그, 안중근을 기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재단 뉴스레터 '동북아역사재단뉴스' 에서는 독자투고를 기다립니다. 게재된 글에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주제_ 역사 관련 자유 주제 분량_ 200자 원고지 8매 보내실곳_ jmik@historyfoundadi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