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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사의 미래를 위한 한국전쟁사가 필요하다"
  • 송승민 전문작가 사진_ 류영희 사진작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꼭 60년이다. 전쟁의 영향은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전쟁 연구는 전쟁의 기원·발발·과정에 집중하였고, 국제정치사적 입장에서 한국전쟁을 짚어보는 연구는 미약하였다.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를 만나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_ 편집자 주

하영선

2010년은 한국전쟁 6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국내외 학계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는 주로 어떤 방향으로 이뤄졌으며 성과와 한계는?

한국전쟁 연구사는 현대 세계질서의 변화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1945년 이후 시작된 세계 냉전질서는 1991년 구소련 해체와 함께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21세기의 세계질서는 주인공과 무대의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복합의 시대를 겪고 있다.

국제 차원의 냉전사와 한국전쟁사 연구는 1960년대 말까지 전통적 연구가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수정주의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90년대 냉전의 해체와 함께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나고 구소련의 사료들이 대규모로 공개됨에 따라 개디스를 대표로 하는 수정이후주의적 접근이 전통적 접근과 수정주의 접근의 한계를 보완하고 장점을 활용하면서 연구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2000년대 들어서서, 냉전 이후 해제된 여러 나라의 사료들을 비교 분석하고, 미국과 소련 중심에서 벗어나 개별 국가의 냉전사를 보다 심화 연구하는 경향으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연구는 아직도 한국전쟁의 성격이 '내전이냐 국제전이야, 내전적인 국제전이냐 국제적인 내전이냐'라는 수준을 크게 못 벗어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한국전쟁사 연구는 계속 성과를 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탈냉전이후 국제 냉전사 연구는 냉전의 이념적 경직성을 졸업하고 다국사료 분석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새로운 성과를 보여 주고 있으나, 국내 한국전쟁 연구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의 갈등이라는 냉전적 사고를 충분히 졸업하지 못한 채 한국전쟁의 국제 체제 측면, 남북분단 측면, 그리고 국내 체제 측면의 3면성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 경직성에서 자유로운 한국전쟁사 신연구세대가 등장하여 한국전쟁의 3면성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다국 사료들과 함께 북한의 새로운 사료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될 때, 국내 한국전쟁사연구가 비로서 세계학계를 주도할 것이다.

한국전쟁이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면?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한국전쟁'이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진 군사적 냉전의 명실상부한 출발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45년 미국과 소련은 같은 승전국의 위치에 있었지만, 곧 적대국으로 바뀌면서 1947년 유럽에서 비군사적인 냉전을 시작한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냉전은 전 세계로 확대되며 군사적인 냉전으로 발전한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남북한의 국지적인 군사 충돌이 미국과 소련의 새로운 선택과 맞물리면서 세계적 규모의 폭력전으로 커진 것이 한국전쟁이다.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도 동서 냉전의 양극화를 겪어야 했다. 소련과 중국은 북한을 전면적으로 지원했고,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지원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은 패전국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역할이 바뀌게 되면서 빠르게 정상화되었다. 따라서 전후 냉전체제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세계냉전, 동아시아냉전, 그리고 한반도 냉전의 3중구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영선

중국, 러시아(구소련), 미국은 한국전쟁에 직접 개입 했지만, 직접 개입하지 않았던 일본에게 한국전쟁은 어떤 사건이었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을 공격했던 일본을 다시는 미국에 도전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일본 군국주의의 군사·경제 기반을 해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냉전으로 미국의 주적 개념이 소련으로 변하면서 이런 구상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한국전쟁이 기폭제가 되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핵심적인 정치·군사·경제적 동맹국으로 삼는다. 결과적으로 한국전쟁은 오늘날 발전된 일본을 만든 가장 중요한 외부 요인의 하나였다.

동북아시아 혹은 세계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 전쟁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국이 한국전쟁 참전을 신속하게 결정한 것은, 냉전 질서의 상대인 소련에게 보내려는 경고 때문이었다. 소련이 세계질서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경우 전 세계적 차원에서 군사적 봉쇄까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비로소 한국전쟁이 왜 세계대전 규모에 버금가는 3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탈냉전과 함께 한국전쟁에 관련된 새로운 사료들이 대량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자료가 저절로 한국전쟁을 재구성할 수는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안목의 거시적 원숙함만이 새로운 사료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21세기 한국전쟁사는 한국사의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한국전쟁사가 되어야 한다. '세계질서 속 한반도의 평화'라는 관점에서 "왜 1950년대 초 한반도가 전쟁의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입체적 균형감을 가지고 허심탄회하게 재구성한 한국전쟁사가 나와야 한다. 한반도의 비극을 치유하기 위한 한국전쟁사 연구가 아니라, 미래사로서 한국사를 위한 '미래 예방적' 한국전쟁사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전쟁을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자세와 시각은?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는 폭력적 수단으로 이해 갈등을 풀려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전쟁으로 커지지 않도록 세련되고 현명한 평화외교를 추진하는 국제 정치의 비전과 안목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남북 간의 적대감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아픈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남북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한국전쟁의 3면성을 고려하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의 민주적인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들과 방안들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일본 민주당 정부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제안했다. 이 동아시아공동체의 가능성은? 이와 관련 한국은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동아시아공동체는 도달해야 할 목표로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회가 이해와 규범을 중심으로 모인 것이라면 공동체는 정과 가슴이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같음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근대이래 치유되지 않은 역사적 아픔으로, 공동체 이전에 국제사회 형성조차도 어려운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의 현실 외교정책은 독도 문제나 교과서 문제등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일국중심의 닫힌 민족주의 안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론'은 실제 정책과 정치 구호 사이에 큰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근대 이래 지난 150년 동안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은 상당한 갈등을 경험하였으며, 지금은 초보적 수준의 복합네트워크를 짜기 시작하는 수준이다. 이런 낮은 단계의 동아시아 네트워크에서조차 북한은 제외되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복합네트워크를 점차 강화하고, 그 속에서 이해관계의 조정을 물리적 충돌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이룰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와 번영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정체성에 대한 지역적 공감이 생겨날 때, 동아시아공동체는 구호가 아닌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다가올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의 역할과 과제에 대한 제언을 한다면?

최근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21세기 동아시아질서 중심국가로서의 자신감과 자기중심적 거만함의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주도국가로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한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상반기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했던 일본은 세계질서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여 국내문제 해결에 고전을 겪으면서 더이상 21세기 동아시아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 쇠퇴 논쟁을 겪고 있는 미국은 동아시아 비전과 미래사의 설계를 동아시아 동반자들과 함께 짜기를 바라고 있다.

21세기 동아시아의 미래는 새로운 복합 역사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은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의 새 건축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동아시아는 근대 이전 2000년 동안 서구보다 평화로운 질서를 성공적으로 유지해왔다. 전통 동아시아 평화 질서의 역사적 고찰과 근대 유럽 국제질서와의 창조적 결합으로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질서를 새롭게 이끌어 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담론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중국의 4대 공정과 일본과의 역사전쟁에 대한 방어적 역사 논리 개발과 대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역할을, 더욱 긍정적으로 확장하고 그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