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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가나자와에서 마주친 한반도의 아픈 역사
  • 김관원_ 홍보자료실 연구원
윤봉길 의사 암장지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이 단장한
윤봉길 의사 암장지

4월 26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의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에 다녀왔다. 오사카에서 북동쪽으로 255㎞ 떨어져 있는 인구 46만의 도시인 가나자와는 일본 호쿠리쿠(北陸)지방의 중심지로서 동해와 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995년부터 10년 동안 체류하던 곳으로 가끔 가나자와의 고요함과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곤 한다.

반면 이 지역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와도 관계가 깊어 마음을 슬프게 하곤 했다. 처음 가나자와에 가서 놀란 것은 우리의 위인인 윤봉길 의사가 이곳 가나자와에서 일본군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왜 하필 이국땅인 이곳에서, 그것도 조용한 가나자와에서...

윤 의사는 중국 상하이 출병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축승 잔치를 하던 1932년 4월 29일, 일본군 수뇌부에게 폭탄을 던졌다. 이 때 중상을 입은 자가 있었는데 바로 9사단장이다. 상하이 지역 관할 부대인 9사단은 윤 의사를 체포하여 오사카를 거쳐 가나자와로 압송했다.

결국 윤 의사는 같은 해 12월 19일 순국한다. 유해는 9사단의 사형집행장 근처에 있는 이시카와현 전몰자 묘원의 통행로에 암장되어, 1946년 3월 유해가 수습될 때까지 14년간 행인들의 발에 밟히게 된다. 바로 위에는 1932년 1월 상하이 침공 시 전몰한 일본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상하이사건 진몰자 합장비' 등이 있다. 이곳을 가기 위해 윤 의사를 밟고 지나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을 둘러 보며

조국으로 유해가 송환된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윤 의사 암장지는 순국 60주년이던 1992년 윤 의사를 기리는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뜻을 모아 비석을 세우면서 추모 공간으로 꾸며졌다. 또 암장지 남쪽 언덕에는 '윤봉길 의사 순국 기념비'가 동해와 조국을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 유학하던 시절 유학생회 회원들과 함께 비석, 기념비를 닦고 주위를 청소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또 하나 가나자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 있다. 2000년 일본의 우익이 이시카와현 호국신사 경내에 세운 '대동아성전비'(大東亞聖戰大碑)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무슨? 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엄연한 사실이다. 매년 8월 15일에는 전국의 우익이 모여 행사를 갖는다.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보면 전국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대동아성전대비'를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28일 아침 이틀간의 출장을 끝내고 귀국하기 위해 가나자와의 하늘 관문인 고마츠 공항을 향했다. 고마츠 공항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해군의 전투비행장으로 건설됐다. 여기에서도 상당수의 조선인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지금은 민간 항공과 항공자위대가 같이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가나자와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픈 역사와 관계가 있는 유적을 찾아내 기억하는 것 또한 역사 갈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길이라 믿는다. '윤봉길과 함께하는 모임'은 매년 윤 의사 의거일에 맞춰 충남 예산을 방문하고, '성전대비 철거모임'은 강사를 초빙하여 강연회를 여는 등, 아픈 역사가 있는 곳에는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