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서울과 도쿄 두 곳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213명이 거의 동시에 공동선언을 발표하여 1910년 단행된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이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필자는 이날 서울의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진행된 한국 지식인의 공동선언 발표현장에 달려가서 생생한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는 행운을 가졌다.
발표장은 뜨거운 역사적 이슈임을 증명하듯 한국측 30여명의 서명자들과 30여명의 언론사 기자들로 꽉 차있었다. 한국 측 공동선언에는 소위 보수와 진보성향을 막론하고 다양한 성향의 명망가들 109명이 참여하였는데,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시인 고은, 소설가 이문열 등이 서명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사카모도 요시카츠(坂本義和),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등 명망가 104명이 참가했다.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 측 참가자들은 한국 만큼의 대표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은 작년 12월부터 공동선언 준비를 시작해 여러 차례의 토론과 논의를 거치고, 5차례의 절충 끝에 이번 성명서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공동선언 문안을 둘러싸고 참가자들 사이에 상당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직도 한·일 양국 지식인 사이에는 사실의 해석과 평가를 둘러싸고 상당한 의견차가 있는 것이다.
이 성명은 "한국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 부당하듯이 '한국병합조약'도 불의부당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병합조약 등은 '대등한 입장에서 또 자유의지로 맺어졌다'는 것으로, 체결 시부터 효력을 발생하여 유효하였지만, 1948년의 대한민국 성립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 정부는 '과거 일본의 침략주의의 소산'이었던 불의 부당한 조약은 당초부터 불법 무효라고 해석하였던 것이다"라고 명기하였다. 이는 일본 측 참가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쉽게도 '불법'이라는 표현을 명기하지 못했으나, 소위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사실상 명확하게 표현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 언론의 무관심에서 보이는 한·일의 시각차
이번 공동선언에 대하여 한국의 언론들은 대부분 대서특필하거나 주요 사항으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일본 언론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우익신문으로 유명한 산케이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아사히신문은 5월 11일자 사회면(37면)에 3단으로 보도하였다. 이밖에 교도통신과 도쿄신문에서 간단히 보도하였을 뿐이다. 한국과 일본의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는 8월 말이면 일본이 불법적으로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지 꼭 100년이 된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한·일 양국의 국회의원들도 '한국병합 무효' 공동선언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일 양국 정부의 공동선언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병합100년'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필요는 없겠지만, 이를 계기로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면서 바람직한 역사를 이끌어 갈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