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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동해표기' 확산, 더 많은 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다
  • 김신 경희대 교수, (사)한국경영사학회장

런던발 KLM 1018기를 타고 암스텔담을 거쳐 인천으로 귀국하는 기내에서 헤이그 세미나의 단상을 정리한다.
우선 영국 히드로공항에서 겪은 해프닝을 소개한다.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국하면서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자동기계로 보딩 패스를 하는데 기계가 내 여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KLM직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동으로 비행기 좌석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수화물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직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컴퓨터상에 나의 신상 정보가 뜨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한참 실랑이가 벌어진 뒤에야 출국할 수 있었다.

비행기좌석에 앉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문득 네덜란드 헤이그로 오는 비행기내에서 내 좌석 표에 적힌 이름 중 영문 스펠링 하나가 여권과 다르게 기재된 것을 본 생각이 났다. 티켓을 발급할 때 여행사에서 이름의 글자 하나를 잘못 입력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개인의 이름 스펠링 한 자가 잘못돼도 이럴진대 국가 간 해역의 이름이 잘못 표기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명확관화일 것이다. 한국의 영해인 여수앞바다에서 선박이 좌초했을 때 해난구조를 일본해의 좌표를 이용해 구조요청을 타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국가 간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실증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적 정당성은 당사국뿐만 아니라 제3국을 설득하는데도 필수적이다.

이름 영문 표기 오타로 생긴 해프닝과 바다이름

그동안 일본 학자들은 1602년 마테오리치가 제작한 고지도의 '일본해'표기를 내세웠고, 한국학자는 고딩요가 1615년 제작한 고지도의 '한국해'를 내세웠다. 이번 세미나에서 일본인 야지 마사타가 명예교수(일본 요코하마국립대)와 와타나베 코헤이 교수(일본 데이쿄대학)는 "'일본해' 지명에 관한 연구"란 논문에서 두 가지 새로운 논거를 제시했다. 1568년에 '일본해'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것과 고딩요가 '한국해'뿐만 아니라 '일본해'라는 명칭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16세기~17세기 유럽고지도의 동해표기 10개 모델"이란 논문을 통해 일본인 학자가 주장한 1568년보다 40년 전인 1528년부터 '동해'표기가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돈의 세계지도로 논증했다. 물론 필자의 논문도 그렇지만 일본 학자의 논문도 '동해'와 '일본해'의 위치가 현재의 동해해역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미흡하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자는 1528년부터 1694까지 제작된 10개의 대표적인 유럽 고지도의 동해표기 모델을 제시하고 동해표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규명했다.

이밖에도 세미나에는 12개국에서 모두 20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크게 5가지 소주제로 진행되었다. 제1세션에는 "바다이름 제정의 개념적 논의"라는 주제로 라이너 도멜스 교수(오스트리아 빈대학교)가 "바다이름 제정에서 복수지명, 토착지명, 외래지명 사용의 관례와 정책"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제2세션에서는 "바다이름 제정의 국제적 규범" 이란 주제로 지리학계의 원로인 폴 우드만 영국지명위원회 전 사무총장이 "바다이름과 관련된 유엔지명전문가회의 초기 10년의 역할", 피터 레이퍼 유엔지명전문가회의 전 의장이 "지명에 관한 유엔결의안의 해석"이란 논문을 발표하여, 지명표기에 대한 유엔차원의 배경설명과 코멘트를 해주었다. 또한 박노형 동해연구회장(고려대)이 "두 개이상 국가에 속하는 실체에 지명을 붙이는 국제적 규범"이란 논문으로 국제법적 해결방안을 제시 했다.

1528년 동해 표기 사용 사실 보돈의 세계지도로 논증

제3 세션에서는 "바다이름 제정의 사례"란 주제로 티저 타힐라 네덜란드 노르트호프 올트게버스 아틀라스 출판사 편집장이 "유럽 바다지명의 제정"이란 논문을 통해 '동해'와 유사한 지리적환경을 가진 '북해'란 지명의 생성배경을 설명하여, 바다이름 제정에서 지도제작 전문가의 소견을 발표했다. 제4세션에서는 "바다이름 제정의 역사적 관점"이란 주제로 이상태 교수(국제문화대학원대학)가 "일본지도에 나타난 '조선해' 연구"란 논문으로 일본 지도상에 표기된 '조선해'를 제시했다. 그리고 쳉롱 교수(중국 베이징 언어문화대학)는 "웨이유안(1794~1857)의 동해 관련 연구와 지도"란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인이 접근하기 쉽지않은 중국고지도로 설명했다.

제5세션에서는 "바다이름 제정관련 이슈"란 주제로 김용환 재단 연구위원이 "일본해가 아닌 동해 : 정체성의 문제"란 논문을 발표했고, 제6세션에서는 "'동해' '일본해' 이슈"라는 주제로 주성재 동해연구회 부회장(경희대)이 "'동해' '일본해' 표기문제의 현황"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현재 진행중인 동해관련 해결방안 들을 설명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김진현 이기석 동해연구회 전 회장, 문명호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이 나서서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2000년 2.8%에서, 2007년 현재(지금은 더 개선되었겠지만) '동해'와 '일본해'로 병기된 지도가 국제적으로 23.6%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겐 아직 76%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이 있다.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하나의 방안이 있다면 동해표기에 대한 학제적 논문이 더 많이 발표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적, 지리적, 해양사적, 국제법적, 경제사적, 해양과학 등 전문분야에서 더 많은 논문이 발표된다면 동해 지명표기의 길이 조금이나마 더 단축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2.8%에서 시작했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76%의 더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3세션은 한·일교류협력과 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에 관한 토론이었는데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먼저 발표에 나선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는 한·일양국민이"지나친 애국심"을 가지게 될 때 양국관계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독특한 진단을 내어놓아 토론시간 내내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한국측 발제자로서 한·일 관계의"단순 반복적 패턴"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고, 기존언론매체가'정제성과 절제성'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이러한 부분이 부족한 인터넷 등의 새로운 미디어가 향후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양국의원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3개의 세션에서 제기된 내용을 중심으로 한·일 의원들 간에 열띤 토론이 있었다. 독도문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은 한국의 입장을, 일본은 일본의 입장을 개진하는 등 팽팽한 입장차를 노정하기도 하였다.

본 심포지움을 통하여 한·일 양국 국회의원을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 간에 솔직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매우 시의적절 했다고 볼수 있겠다. 앞으로도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러한 토론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한일 양국 지도자들 간의 상호이해가 보다 심화 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