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발해사 연구는 한국사 내 다른 시대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제반 여건이 매우 불리함에도 연구 인력이 늘고 많은 연구 성과를 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이 발해사 연구가 부진한 데 따른 반성 위에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보다는 오히려 외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즉, 동북공정과 같은 중국의 발해사 왜곡과 중국사화에 큰 자극을 받아 많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본서 역시 이와 무관치 않으며,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발해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정립할 필요로 시작되었다.
발해사에 대한 국가별 연구 동향이나 주제별 연구 현황을 분석한 기왕의 연구는 어느 정도 나와 있다. 본 연구는 복잡하고 다기한 기존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발해사의 가장 큰 쟁점들을 국가별, 주제별로 체계를 잡아 깊이 있게 분석하여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이해 방향을 제시함과 아울러 각국의 발해사 연구의 쟁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발해 전성기의 영토는 오늘날 러시아 연해주, 중국의 동북 3성, 한반도의 대동강과 원산만 이북을 아우를 정도로 광활했다. 이에 발해사 연구는 남·북한을 비롯하여 중국, 러시아에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발해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가졌던 일본에서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민들이 이주했던 몽골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발해사 귀속문제의 민감성
각국의 발해사 연구 주제는 국가마다 관심의 정도가 다르나 각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주제는 대조영의 출자와 종족 구성, 문화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이는 발해사의 귀속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귀속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발해인 스스로 또는 멸망 직후 유민들이 서술한 발해사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발해의 옛 영토가 오늘날 동아시아 3국에 걸쳐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현 중국 영토 내 전체 역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인식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도 중국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기존의 발해사 연구동향에 관한 연구 성과와의 차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연구를 추진한 점이 특징이다. 즉, 발해사를 발해사 전공자들만이 연구함으로써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발해사 연구의 문제점을 찾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이미 알려진 발해 전공자 외의 새로운 연구자를 발굴하거나 혹은 발해사 연구자를 배제하고 다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에게 연구를 청탁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리하여 일본에서 연수한 적이 있는 신라사 전공자를 본 연구에 참여시켰다. 동시에 고구려사, 신라사, 가야사, 고려사, 사상사, 혹은 동양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그들이 바라보는 현행 발해사 연구의 특징이나 개선점을 수합하여 본 연구의 진행에 도움을 얻고자 했다.
공존을 위한 발해사 연구 방향 설정이 과제
이효형(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은 "한국의 발해사 연구 현황과 방향 모색"에서 고고학적인 연구 결과의 적극적인 수용과 연구의 공간적인 시야 확대, 인접 학문과의 공동연구, 발해사 연구의 개방화와 열린 자세를 강조하였다. 김동우(국립중앙박물관)는 "북한의 발해사 연구와 전망"이라는 주제에서 북한이 지나치게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만을 강조하는 점을 지적하였고, 북한에는 발해의 역사 현장이 있으므로 북한 내 발해 유적과 유물 자료에 관한 정보 교류를 주장하였다.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은 "중국 학계의 발해사 연구 동향과 검토"에서 시기별, 주제별 연구 현황을 많은 표와 그래프를 통해 이해하려는 면이 돋보였는데, 중국 학계의 발해사 연구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선석열(부산대)은 "일본의 발해사 연구 쟁점과 추이"에서 일본 학계의 발해사 연구는 동아시아의 책봉체제론이나 국제적 계기론에 입각하여 주로 교류와 교섭에 주력하였음을 지적하였고, 다하성비(多賀城碑)에 보이는 말갈의 정체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 연해주의 발해 유적을 수차례 발굴한 경험이 있는 정석배(한국전통문화학교)는 "러시아의 발해 연구 동향과 쟁점"에서 러시아의 발해 연구자들은 발해를 말갈이 건국한 다민족 국가로, 발해 문화의 성격은 독자성과 다원성을 띠며 발해는 말갈계의 독립주권국가였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하였다.
발해사의 쟁점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국가·학자별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주제마다 합일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국가별 차이가 너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현 동아시아의 정세에 비춰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본 연구 역시 발해사의 쟁점에 대한 연구 동향 파악과 새로운 연구 방향을 탐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확실한 해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지속적인 학술교류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의 시각에서 발해사를 바라본다면 조금씩 해소될 것으로 믿는다. 발해사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보다는 평화와 공존을 위해 어떤 방향에서 발해사를 연구할 것인가는 우리, 아니 동아시아 전체에 주어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