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복에 대해, 19세기 초의 일본 고사료 《죽도고(竹島考)》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또, 어떤 노인이 말하길, 조선인들이 머물고 있는 동안 그 섬의 뱀을 모두 잡아먹어서 나중에 들쥐가 번식하여 논밭이 입은 피해가 막심하기에, 사람들이 이를 우려하여 타지에서 뱀을 잡아와서 그 섬에 풀어 놓았더니 해가 지남에 따라 그 피해도 그쳤다고 한다. 단, 그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인들' 이란, 울릉도와 자산도(우산도/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기 위해 1696년에 일본으로 도해한 안용복 일행이다. 당시 안용복을 포함한 11명이 울릉도에서 일본의 오키섬을 거쳐 호키국(지금의 돗토리현)으로 들어갔고, 8월에 양양으로 귀국하기까지 약 3개월 동안을 고잔(湖山)에 있는 아오시마(靑嶋)에 머물렀었다.
위의 이야기는 안용복 일행이 아오시마에 머물러 있을 동안의 일화로 그 지역에 전해 내려온 것을 《죽도고》의 편자인 오카지마 마사요시(岡嶋正義)가 수집하여 소개한 글이다. 아오시마는 현 돗토리현 돗토리시의 남부에 위치한 무인도이다. 예전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잘 가꾸어진 관광지였다. 그리고 현재 뱀이 서식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용복 행적의 공백을 매우는 《죽도고》의 기록
안용복 일행이 1696년 일본에 갔을 때의 행적은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1696년 5월 15일에 울릉도를 떠나 자산도(독도)로 들어갔으며, 16일에 자산도를 출발하여 18일에 오키섬 도착, 6월 4일 호키국 아오야(靑谷)도착, 6월 21일 고잔 아오시마로 추방, 8월 6일 일본을 떠나 8월 21일 강원도 양양현 도착. 이와 같은 간략한 일정과 일행의 이름, 그들이 사칭한 관직명, 타고 간 배의 깃발 모양과 울릉도와 자산도가 "조선 땅"이라는 주장을 하였다는 기록이 적은 수의 한·일 고사료에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그들이 귀국하기 전 3개월 동안 아오시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도고》의 일화는, 신빙성은 없으나 그래도 공백으로 남아있는 시간들에 대한, 어떻게 보면 귀중한 기록이다.
한편, 왜 이러한 일화가 100여 년이나 전해내려 왔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 사람은 어류를 제외하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 열도 동북부 산간 지역에서 멧돼지 등을 몰래 먹는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일본 사람은 근대 이전까지는 육류를 섭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르긴 몰라도 조선에서 간 사람들이 3개월간 매일 일본사람들처럼 초식으로 하면서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뱀을 잡아 먹은 것은 부족한 단백질 섭취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와 같은 사정을 일본 사람은 모른다. 단지 자기들이 먹지 않는 뱀을 잡아 먹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이고, 멸시하는 눈으로 바라봤을 것이며, 그래서 이야기거리가 되고 일화가 된 것은 아닐까? 일종의 '이문화 교류'시 발생하는 '컬쳐쇼크' 현상이 이 일화 형성의 배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한·일 역사가 교차되어 전개되는 옛날 사료를 보다보면 이와 같은 '컬쳐쇼크'가 기록의 배경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는 주로 서로 멸시하고 서로 비하하는 기술로 표현되는데 지금부터 쓰여지는 역사에는 그런 기술이 없어졌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