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은 독도와 동해바다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였다. 8월 1일에 있었던 신도 요시타카 의원을 비롯한 일본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명의 울릉도 방문 시도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극도로 민감한 한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 방위백서 발간은 한국인의 들끓는 감정에 기름을 들이 부은 격이 되었다.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 비난에서부터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주장까지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나라 전체를 휩쓸고 지나가더니, 이번에는 '동해'표기 문제가 각종 언론매체를 도배질하였다.
미국과 영국이 국제수로기구(이하 IHO)에서 일본해 표기를 지지하였다는 보도를 시발점으로 촉발된 '동해'표기 관련 논란은 또다시 국민의 애국적 감성을 자극하였고, 이에 우리 국회는 '동해' 단독표기를 촉구하는 결의까지 채택하였다. '동해'표기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를 대별해 보면 첫째, 혈맹인 미국이 일본 입장을 지지했다는 데 대한 서운함 표출과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외교력 질타, 둘째, 병기가 아니라 '동해' 단독표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 셋째, '동해'보다는 '한국해'표기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 넷째, '동해'도 '일본해'도 아닌 제3의 이름을 채택하여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간 '동해' 병기 노력이 제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비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논리적 타당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국제사회 설득해야
우선, 미국이 IHO에 보낸 서한에서 '일본해' 표기를 지지했다고 서운해 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지명위원회(BGN)는 '일본해' 단독 명칭을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을 뿐만 아니라, 지명에 대하여는 단일 명칭을 사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이러한 미국의 관행과 원칙이 우리 언론을 통하여 알려진 것이지, 미국이 새로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 이러한 미국 입장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가 정당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던 일제 강점기에 IHO가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국제사회에 확산된 이름임을 들어 '동해'병기를 계속 요청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둘째, '동해/일본해' 병기가 아닌 '동해' 단독 표기 주장에 대해서는, 무릇 국제사회에서 어떤 주장을 할 때에는 합리성과 논리적 타당성, 그리고 무엇보다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연유야 어찌 되었던 지난 100년 가까이 국제사회에서 '일본해'란 이름이 널리 통용되어 온 것이 현실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이를 모두 '동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적 타당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동해' 병기 주장은 IHO나 유엔지명표준화회의(이하 UNCSGN)와 같은 국제기구 결의와 오랜 국제지도 제작 관행을 근거로 하고 있다. 즉, '두 개 이상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지형에 대하여 관련 국가가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 경우, 관련 국가는 공통된 이름을 찾도록 노력하고, 공통된 이름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병기토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일 양국이 공통된 이름에 합의하기 전까지는 '동해/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이 국제기구 결의나 국제관행에 부합한다.
셋째, '동해'보다 '한국해'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해'보다는 '한국해(Sea of Korea)'로 표기된 고지도가 더 많다거나, '동해'는 방향성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에 고유명사로는 부적합하다는 이유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한국해'라는 이름은 외국인이 지도를 제작하며 붙인 이름이지 우리가 사용하던 이름이 아니다. '동해'가 옳으냐 '한국해'가 옳으냐 하는 논란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라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우리가 '동해'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자는 것이지, 단순히 '일본해'를 배척하기 위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도를 제작하는 데에는 외부에서 붙인 이름, 즉 외래지명(exonym)보다는 토착지명(endonym)을 존중한다는 원칙이 있다. 즉, 외래지명인 '한국해'보다는 토착지명인 '동해'를 주장하는 것이 대외적으로 더 설득력이 있다. 또한, '동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방향성에서 출발했겠지만, 지난 2,000년 동안 사용되어 오면서 지금은 우리 민족혼의 일부로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진 이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경'이나 '북경'도 처음에는 동쪽 수도, 북쪽 수도라는 방향성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일본과 중국 수도로 고유명사화된 것과 같은 이치다. 정부가 지난 1992년 관계 부처 회의를 거쳐 '동해'지명을 추진키로 결정한 것은 이러한 국민정서와 국제지도제작 원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동해'냐 '한국해'냐 하는 논란과 관련,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대외교섭에 있어서의 일관성 유지 문제다. 지난 10년 동안 '동해'병기를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국해'표기를 주장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헛되게 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넷째, '동해'도 '일본해'도 아닌 제3의 이름을 채택하자는 주장은 지리적, 인종적으로 모든 면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 두 나라가 바다이름 문제로 우호관계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이해될 뿐 아니라, IHO나 UNCSGN 결의와도 부합된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도 기득권을 포기할 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향후 사태 진전 상황에 따라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다.
'동해'는 인내와 끈기로 찾아야 할 이름
마지막으로, 정부가 지금까지 제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앞으로 더욱 노력하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재단도 정부 관계 부처와 함께 더욱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만, 우리 재단이 지금까지 정부 관련 기관 및 민간단체들과의 협조 하에 동해 병기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지난 2000년 2.8%에 불과하였던 동해 병기 비율을 2009년 28%까지 높혔다는 점을 밝혀 둔다. 그리고 앞으로 IHO와 IHO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외교노력도 배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0년 가까이 지속된 관행을 수정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잃어버린 이름 '동해'를 되찾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인내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