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과 30일, 양일에 걸쳐 재단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한 이범진 공사 순국 100주기 관련 국제학술회의가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열렸다. 대한제국 초대 러시아 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의 생애를 재조명한 이번 학술회의 주제는 '러시아와 한국 : 양국 외교의 근원을 찾아'였다.
회의에 앞서 28일에는 이범진 공사가 집무한 대한제국 구 공사관 건물을 탐방하고 이범진의 증손자인 이원갑(이범진·이위종 기념사업회회장), 이위종의 외증손 율리아 피스쿨로바(Yu.Ye. Piskulova) 그리고, 학술회의 관계자 및 참가자들이 그의 유해가 묻힌 모스크바 북방묘지을 찾았다. 주 상트 페테르부르그 총영사관과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조촐하나마 공식적인 추모 예식을 준비함으로써 묘역 참배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이범진과 대한제국기의 한·러관계
이번 학술회의 주제는 이범진과 대한제국기의 한·러관계로 축약된다. 첫날은 '이범진공사의 외교활동과 한·러관계',둘째날은 '19세말 20세기 초 한·러관계'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회의 개최에 앞서 개회식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본관 페트로프스키(Petrovsky)홀에서 쿠르바노프(S.O. Kurbanov. 동 대학 동양학부 한국어 및 문화센터 소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축사는 젤레네프(E.I. Zelenev) 학장, 주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 이연수 총영사,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코우 사무소 임철우 소장, 동북아역사재단 김대영 홍보교육실장,이범진 기념사업회 이원갑 회장 순으로 이어졌다. 식후 이를 기념하여 정양옥 조교수가 안무한 한국 창작 무용 "꽃 바람"이 공연되었다.
사모일로프(N.A. Samoylov) 교수의 사회로 시작된 오전 학술발표는 故보리스 박(Boris Dmitrievich Pak)의 여식인 벨라 박(B.B. Pak. 동양학연구소, 러시아 과학원), 이민원 소장(동아역사연구소), 허동현 교수(경희대)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오후에 재개된 학술회의 주제는 "이범진과 그의 외교활동"으로 이민원 소장이 사회를 맡았다. 발표는 민경현 교수(고려대), 필자, 반병률 교수(한국외국어대) 순으로 진행되었다. 종합 토론은 쿠르바노프 사회로 이범진공사와 한·러관계에 대해 다루었다.
둘째날 학술회의 오전 섹션 주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한관계"로 벨라 박이 사회를 맡았다. 발표는 마이클 핀치 교수(Finch, Michael, 계명대), 최덕규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 삼소노프(A. Samsonov, 국립 박물관, 러시아 과학원), 사모일로프 순으로 진행되었다. 최덕규 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은 오후 섹션 주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한 관계 사학사 및 자료 연구"였다. 발표는 벨라 박과 트로체비치(A.F. Trotsevich, 동양고문서연구소, 러시아 과학원)가 하였다. 쿠르바노프가 사회를 맡아 "19세기 말~20세기 초 러·한관계사 연구 과제와 전망에 대하여"란 주제로 진행된 종합토론을 끝으로 학술회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고종과 이범진, 한·러관계에 대한 재고찰의 장 마련
숨가쁘게 진행된 이번 공동 프로젝트 학술대회를 살펴보면, 이범진과 대한제국의 한·러외교에 대한 재구성과 재고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이범진은 대한제국기 고종 황제의 측근으로서 20세기 초반 11년 동안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살았고, 러시아와 한국 근대외교를 실질적으로 시작한 인물이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다른 한편 발표자들의 논지를 종합해 보면, 고종황제는 러시아를 개혁모델로 삼아 대한제국을 세우고 러시아를 끌어들여 나라를 지키려고 했다. 고종은 아관파천, 러·일전쟁, 포츠머스 강화회의, 헤이그평화회의 및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과 이후 독립전쟁에 이르기까지 동 시기에 러시아를 끌어들여 대한제국의 독립 유지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 활동 및 해외 언론 활동을 펼쳤고, 그 중심에는 이범진 공사가 있었다. 그같은 역사적 사실들은 대한제국의 대러외교에 일관성과 연속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담론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으로 그 역사적 의미에 관하여 재고할 여지가 있다.
그것은 발표자들의 새로운 사실 발견과 기존 사실 재구성 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고종 황제와 이기종,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영어로 남긴 이범진 유서의 절박한 내용,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의 기술들은 이범진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평가를 제고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외에도 발표자들이 재구성한 사실은 19세기말 20세기 초 극동에서 러시아가 추진한 대외정책 역사, 대한제국북방외교, 그리고 이범진 일가의 삶이 밀접히 관련돼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하지만 한·러관계 연구에 대한 인식부족, 고종과 이범진에 대한 편향된 기술, 그리고 아관파천에 대한 비판적 인식 등은 여전하다. 이제 새로운 평가와 함께 재구성 작업이 필요하다. 금번 학술회의는 그 가능성을 가늠하는 자리였다. 그 희망의 불꽃은 귀국 전 막간을 활용해 방문한 새로이 문을 연 러시아 국립역사문서관에서 다시 지펴졌다. 5년 여에 걸친 대공사와 9개월간 트럭이 1750번 왕복하는 이사를 통해 정리된 문서관은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공식적인 방문의례를 거쳐, 10여 분 간 공개된 대한제국관련 문서들은 지난날 《한·러관계100년사》(1984) 집필에 참여했던 필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방대한 사료의 바다를 헤엄쳐가고 싶은 열정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지기불가이위지자 (知其不可而爲之者, 論語 憲問)에게는 새로운 한·러관계사의 장이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