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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발해 염주성의 쑥대밭과 고누
  • 김은국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다양한 크기의 고두 놀이말들

다양한 크기의 고누 놀이말들 재단은 올해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한 달 여에 걸쳐 러시아 연해주 남단 크라스키노에 위치한 발해(渤海)시대 염주(鹽州)성을 러시아 극동 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와 공동으로 발굴하였다. 염주는 발해가 설치한 62개 주(州) 중 하나로 동해를 통해 신라, 일본과 교류하였던 곳이고, 발해 내륙 곳곳을 거쳐 당, 서역 등과 통하는 교두보였다. 이번 발굴 결과, 염주성 내부는 수레가 왕복할 수 있는 도로와 쪽구들 시설이 딸린 거주지, 그리고 관련 건축 시설이 공유하는 일정 구획들로 이어졌음을 확인하는 실마리를 얻었다. 염주성 높은 둔덕에서 탁 트인 남쪽 바다를 내어 보면 발해국이 왜 이곳 바닷가에 성을 쌓고 관리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지금으로부터 1,100여 년 전, 같은 장소에 서서 이곳으로 드나들던 다양한 선박들을 보면서, 성 내에서 다양한 삶을 구가하였을 발해 국민이 되어보곤 한다. 발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지금도 홀로 서 있는 염주성과 그것을 둘러싼 자연 지세, 그리고 변화무쌍한 하늘과 갈매기들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올해 우리나라는 7~8월 기간 비와 태풍으로 맑은 해를 보기 어려웠다는데, 필자가 발굴하던 염주성 현장 역시 8월 첫날부터 연 나흘 동안 비 폭탄을 맞아야 했다. 시점이 발굴기간 전체 중 한가운데에 위치했고,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쪽구들과 도로 유구의 심화 발굴이 절실하였지만 모든 단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비 그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쏟아붓던 비는 멈추었지만 결국 앞서 든 유구들은 모두 물에 잠겨 버려, 이후 양수기로 물을 빼내면서, 또 한편으로는 물에 젖은 유구를 다듬어가면서 남은 발굴 기간 동안 양국 발굴단원이 온힘을 모아 발굴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토록 땀과 힘을 함께 쏟아 부은 양국 발굴단원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이번 발굴이 한·러 공동 발굴 20년 사상 가장 '센세이션'한 성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염주성 쑥대밭에서 느낀 발해 천년 향

올해 추석(秋夕)은 유난히도 변화 많았던 날씨 탓인지 절기상으로 좀 이른 감도 있었지만, 우리 민족 최대 명절답게 사회 각 방면에서 분주히 노력하던 가족과 친척들이모여 풍성한 명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처럼 최대 명절에 차례와 송편 등등 몇몇 상징 외에는 변변한 놀이문화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염주성 발굴을 통해 수습된 조그만 '말'들이다. 유물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놀이를 위해 만든 것이다. 보통 토기 편이나 방추차 등을 다듬어서 만들었는데 최근 염주성 내에서 '고누판'이 발굴됨으로써 이것이 바로 '고누말'임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해 보았던 전통놀이 중 하나인 '고누'를 두만강 건너에 자리한 발해시대 염주성에서 확인하였다.
염주성 주변, 나아가 연해주에는 지금도 야생으로 자란 다양한 식물들이 널브러져 있다. 주인 잃은 온갖 초목들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지 언제런가. 필자는 염주성 발굴 현장에서 대하는 쑥대밭에서 발해 천년 향을 느끼며 돌아왔다. 또 다시 올 것을 알기에 돌아올 기대를 바람에 실어 전하면서 말이다. 그토록 발해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염주성의 타임캡슐은 발해인의 마음을 담아 우리를 더욱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 번 발굴장에서는 꼭 '국제 발해 고누 대회'를 열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