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김선주 교수가 미국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에 취임했다. 이번호에서는 한국학 연구 수준을 질적으로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힌 김선주 소장과 재단의 우성민 연구위원의 대담을 통해 한국학 진흥을 위한 올바른 방향과 구체적인 계획을 살펴본다. _ 편집자 주
김선주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한국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한국사 하버드-옌칭연구소 기금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조선 문화사와 사회에 대한 연구다. 최근 북한 지역사, 지역 정체성, 역사적 기억, 생활사와 법제사 등 관심 분야를 넓혀 연구 진행 중으로, 아시아학, 한국학, 사회학 등 각 분야에서 그 연구성과를 주목하고 있다.
우성민
상명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대학에서 중국고대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중국 당대(唐代) 율령격식(律令格式) 체제의 변화, 법전 편찬제도, 사면(赦免)조서 등 주로 당대법제사이고, 최근 관심 분야를 넓혀 당대 외교제도, 한중관계, 중국교과서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우성민: 올해 7월 1일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앞으로 국내 민·관·학과의 활발한 협력과 교류가 기대된다. 향후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국제학계에서 한국학 연구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 위한 사업계획은?
김선주: 향후 계획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의 사명인 연구와 교육, 그리고 연구소의 주요 사명인 한국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하버드대학 내 한국 관련 연구와 교육에 관계되는 기존 프로그램을 확대지원하고 또 새로운 분야를 발굴, 지원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최근에 하버드대학은 예술 분야와 학부 학생들의 해외 유학 프로그램에 상당히 중점을 두고 지원하고 있다. 한국학연구소도 이런 학교당국의 발전 방향에 발맞추어 지난 여름학기에 한국에서 진행된 필름 수업을 지원했으며, 한국 대학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학부 학생들의 해외 유학 경험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오는 2012년 봄학기에는 한국미술사 강좌를 열 계획인데 아마 한국미술사 강좌는 하버드에서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 외에 하버드 내 법대, 케네디스쿨, 경영대학, 의대 등과도 긴밀히 협조하며 교내 한국학의 기반 확보와 한국사 연구와 교육 확장에 더욱 주력할 계획이다.
우성민: 이러한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재정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재정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김선주: 물론 한국학 연구소의 다양한 활동은 여러 기관과 개인의 끊임없는 관심과 너그러운 재정지원이 있어 가능하다. 연구소는 대학으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 내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러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입과 매년 들어오는 기부금, 또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 국제교류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들어오는 지원금이 우리 예산이 된다. 여러 기관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같은 프로그램에 중복지원 받는 것이 아닌가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한국 각 기관의 지원금은 연구소의 다양한 활동에 각각 다르게 사용되기 때문에 중복지원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인 면은 있을 수가 없다. 안정된 재원 확보 없이는 연구소의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안정적인 재원확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성민: 하버드대 한국 콜로키움은 1973년에 열기 시작했으나, 한국학연구소는 8년이 지난 1981년에 발족되었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역사와 현황은?
김선주: 1981년 발족된 한국학연구소(Korea Institute)는 처음에는 Fairbank 동양학연구소 내에 속해 있다가 1993년 독립기관이 되었다. 초대소장은 와그너(Edward W. Wagner) 교수다. 에커트(Carter J. Eckert) 교수가 1985년부터 하버드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90년 중반에 국제교류재단에서 한국문학 기금교수직을 설치해서 1997년 맥캔(David R. McCann) 교수가 이 교수직을 받고 하버드에 왔다. 와그너 교수 은퇴 이후 여러 교수가 한국 전근대사 교수직을 맡다가 내가 2001년 조교수로 임용되고 2008년 테뉴어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 교수는 4명이고, 학생 수는 박사과정 15명, 석사과정에 10명 정도다.
우성민: 최근에 전공분야인 조선 문화사와 사회에 대한 연구 이외에 북한 지역사, 생활, 법, 사회, 지역정체성 등 관심분야를 넓혀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전임 소장인 에커트와 맥캔이 미국 국무성에서 북한정책관련 자문역할을 했다고 들었는데,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북한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북한관련 연구를 확대할 계획인가?
김선주: 북한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연구는 개인적, 학문적 관심이다. 조선시대 북한지역의 특수한 역사성이 현대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나의 연구는 시기적으로 조선후기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연구 관심을 한국학연구소 운영에 반영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한, 전임 소장들의 북한정책관련자문은 각 교수가 개인 연구자 자격으로 했던 것이며 한국학연구소가 정책자문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물론 연구소는 이전부터 그랬듯이 앞으로도 한반도의 여러 국제 문제 관련 특히, 북한과 관련된 여러 학술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그 중 김구 포럼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와 관련된 주제들을 토론하는 중요한 장이 되고 있다.
우성민: 우리 재단에서 영문으로 발간한 고구려 홍보책자《Koguryo : A Glorious Ancient Korean Kingdom in Northeast Asia》를 전년도 하버드대 워크숍에서 소개한 후 여러 나라에서 교재로 활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아 배포하였고, 지금도 그러한 요청이 끊이지 않는데, 현재까지 영문 번역된 한국 고대사 교재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영문 번역된 하버드대 및 미국의 한국사 교재 현황은 어떠한가?
김선주: 한국사 영문 번역 책자는 그 수가 매우 적다. 1984년에 와그너 교수가 번역하고,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이 아직도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작년 한영우 교수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함재봉 교수가 번역한 것으로 아는데 이 책은 한국에서 출판됐기 때문에 미국 내 유통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개설서를 비롯해 학부과정에서 쓸 수 있는 교재가 절실히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한국학 연구자층이 늘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에서 나온 훌륭한 연구들을 번역,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주 내의 학계 구조상 학자가 번역에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전문성 있는 잘 훈련된 학자가 아니라면 읽을 만한 좋은 번역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좋은 번역서를 빨리 생산해낼 수 없다면 학자들이 한국에서 나온 학문적 성과를 잘 소화하고 본인의 연구를 축적해서 좋은 연구서와 개설서를 쓰는 것이 한국학의 깊이를 더하고 폭을 넓힐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성민: 1928년 설립된 하버드-옌칭연구소는 실질적으로 중국학 연구 중심이지만 일본학계의 연구 성과 또한 중시하면서 서구학계에서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연구하게 된 배경이 됐다. 이와 같은 연구사적 배경은 서구학계의 한국 고대사 인식 왜곡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및 해외 한국학연구소의 역할은?
김선주: 이 질문은 하버드-옌칭연구소가 식민사관에 물든 중국, 일본학을 주도한 것과 같은 인상을 주는데 사실 하버드대학에 안정적 한국학 교수직을 처음 설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하버드-옌칭연구소다. 한국 고대사를 비롯한 왜곡된 한국사 인식의 극복은 하루아침에 될 일도, 또한 어느 한 한국학연구소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학 연구자층의 저변확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훈련된 전문성을 가진 한국학 학자가 양산되면, 그들의 학문적 활동과 교육활동을 통해 서서히 해결될 문제다. 한국학연구소의 역할이란 한국학 학자와 학생들의 학문 활동을 지원하는 데 있다.
우성민: 우리 재단에서도 국제학계 한국학 연구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한국사의 왜곡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대응하기 위해 2007년부터 "한국 고대사 연구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하버드대 및 미국의 평가와 반응은?
김선주: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다. 몇 년 전 우리 학과에 일본 고대사 교수가 테뉴어를 받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임했는데 테뉴어를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일본 고대사가 하나의 독립된 연구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물론 대학당국의 무지를 드러내는 사례지만 고대사 영역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그만큼 낮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 고대사 연구프로젝트의 세미나 시리즈나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혼자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참여자가 생각보다 많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서 매년 저널을 내고 있는데 제법 잘 팔리고 있다. 그만큼 외부 관심도 크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타난 데는 프로젝트를 맡고 저널을 편집, 출판하는 바잉턴박사의 공이 크다.
우성민: 국내와 국외학자들 간 한국학 진흥과 올바른 한국사 인식 확산을 위해 접근하는 방법 혹은 태도에 차이가 있다. 특히 국내학자들이 국외 한국학연구소의 실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서 해외 한국학 진흥과 올바른 한국사 인식 확산 위한 국내외 협력의 길을 제안한다면?
김선주: 좀 철학적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서로 인간적이고 학문적인 차원에서 신뢰하고 존경해야 뜻있는 협력의 길이 더욱 넓게 열릴 것이다. 해외 한국학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이고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해외에 한국학 교수직 설치를 해온 국제교류재단에서 최근 100번째 한국학 교수직을 설치하고 교수를 임용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교수직이 생기면 한국학을 안정적으로 연구하며 강좌를 통해 학생을 키울 수 있고 또 비한국학 교수들에게 한국학 존재를 알릴 수 있다. 또한 한국 내 학자들과 다양한 형태로 교류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까지도 그 영향이 미칠 것이다. 바로 눈에 띄는 결과가 나지 않는다 해도 장래를 생각하면 교수직 설치와 연구지원이 가장 확실한 한국학 진흥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성민: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서 우리 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선주: 동북아역사재단은 특수한 목적을 갖고 출범한 기관으로 알고 있는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연구와 지원활동을 통해 학계와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많고 또 제한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 대학 고대사연구 프로젝트를 다년간 지원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기념비적인 일이고, 우리 대학 역시 재단과 학계의 기대에 부응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앞으로도 서로 협력해서 이 프로젝트가 계속될 뿐 아니라 더욱 발전하길 바라겠고, 다양한 학술적 교류를 통해 해외 한국학 발전에 이바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