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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베트남과 그이웃 중국』의 저자 유인선 교수 인터뷰 베트남의 대중국 대등외교 역사에서 시사점을 얻어야
  • 정리 ┃ 이윤정 작가

영토 분쟁과 과거사 문제로 계속되고 있는 동북아갈등은 새 정부가 들어서는 올해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번 『동북아역사재단 뉴스』에서는 지난해 6월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백두산정계비 건립 3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한중간 영토 갈등의 해법을 위해 베트남 레 왕조의 대(對)청 외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유인선 교수를 만나 대담을 청했다. 김정현 연구위원과 유인선 교수의 대담을 소개한다. _ 편집자 주

유인선 교수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미시건대에서 동남아시아 역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사학과와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 - 양국 관계의 어제와 오늘』, 『베트남사』, 『Law and Society in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y Vietnam』, 『새로 쓴 베트남 역사』 등이 있다. 2012년 11월에는 그간의 베트남 역사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베트남 하노이 국립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정현 연구위원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일본의 동경대,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 센터, 중국의 북경대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였다. 현재 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재단이 발간한 동아시아사 교과목을 위한 참고자료 『동아시아의 역사 Ⅲ 개항-화해』의 집필자로 참여하였고, 재단의 한ㆍ중관계 관련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Q 김정현 국내학계에서 최고의 베트남 역사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어떤 계기로 베트남 역사에 관심을 갖고 평생 연구, 교육에 앞장서게 되었나?

A 유인선 베트남 역사를 공부한지 46년이 되었는데, 베트남역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베트남전쟁과 관련이 있다. 1965년 봄, 미국은 베트남에 지상군을 투입시키고 우리 정부도 그 해 가을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베트남전쟁의 확대와 더불어 미국에서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을 자주 왕래하던 제 은사, 전 고려대학교 김준엽 총장께서 한국에서도 동남아시아에 대한 연구가 절실함을 인식하고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권유를 했고, 연구의 첫 단계는 우리와 문화가 유사한 베트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주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미개척 분야를 연구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베트남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Q 김정현 베트남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 역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어떤 점을 들 수 있을까? 또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의 이해를 통해 어떤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까?

A 유인선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우리에게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역사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근대에는 두 나라 모두 중국과 조공관계를 맺고 그 문화를 받아들였다. 유교문화의 수용을 대표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실은, 그 때문에 양국 모두 제국주의 열강이 침입할 때 문호를 개방하지 못해 침입을 받아 식민지가 되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남북분단도 경험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16세기~18세기 국내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베트남에서의 유교문화 수용이 우리나라에서처럼 그렇게 철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와 같은 복잡한 친족제도가 발달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한편, 우리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주로 문화적으로 중국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비해, 베트남은 이른바 남진의 역사라 하여 남으로 진출하면서 동남아시아 문화와도 일찍부터 접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한쪽의 문화에만 치중하지 말고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면서 그 장단점을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인선 교수

Q 김정현 『베트남사』(1984년)를 국내에서 최초로 발간해 주목받았고, 이후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2002)를 발간해 베트남에 대한 이해를 높여줬다. 작년 말에는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을 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책들을 통해 말하고자 한 의도는 무엇인가?

A 유인선 『베트남사』나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모두 정치사 중심으로 썼다. 베트남 역사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선 베트남 역사의 줄거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사 중심의 역사서를 의도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베트남과 그 이웃』은 이제까지 양국 관계에 대한 연구는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데 대한 반론으로, 중국의 이웃나라로서의 베트남이 아니라 베트남 그 자체를 중심에 놓고 중국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베트남의 자주성을 강조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싶었다.

Q 김정현 베트남은 상당히 독특한 대등한 대(對)중국 외교를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의 중국에 대한 (조공)외교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

A 유인선 베트남은 중국과의 조공관계에서 '왕'이라 칭했지만, 실은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 세워진 두 번째 왕조인 딘 왕조(丁朝,966~980)가 성립한 이래 지배자는 모두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사용했다. 베트남 역사를 통틀어 베트남의 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태도는 국제 관계에 있어 현대 외교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대등한 관계를 설정했다. 그래서 사절 파견에 조공을 의미하는 '공(貢)'자대신 '간다'를 뜻하는 '여(如)'자를 써 '여송(如宋)'이라 했고, 사절을 '여청사'라고 하는 한편 중국과의 관계를 '방교(邦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몇 번, 그리고 고려의 태조와 광종이 연호를 사용했지만, 그 외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고려 시대 연호 폐지는 왕권강화 때문으로 알고 있다.

Q 김정현 청 건륭제때 베트남 침공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전[十全(10대 승전)]의 하나로 베트남 침공을 꼽는 것이, 중국 황제들이나 지배층이 얼마나 중국 중심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이야기한바 있다. 중국 중심적 역사관의 다른 사례와 이와 유사한 한중관계의 사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유인선 중국인들은 자기네의 우수한 문화와 풍부한 물자 때문에 주변의 작은 나라들이 내부(來附)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조공관계는 중국의 무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중국의 힘이 약화되면 조공체제는 유지되기 어려웠고, 그런 경우 중화세계질서란 자기기만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컨대,1884~1885년의 청불전쟁과 1894년의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프랑스, 일본과 각각 조약을 맺고 베트남은 프랑스의 보호국이며 조선은 완전한 독립국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9년판의 『대청회전(大淸會典)』에는 여전히 두 나라가 청의 조공국으로 되어 있다.

Q 김정현 베트남과 중국의 상하개념이 아닌 외교관계, 방교를 강조했다고 언급했다. 베트남과 중국관계의 변화로 명청대 외국전에서 조선-안남-일본-유구의 순이었지만, 청대에는 조선-유구-월남의 순으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그 순서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시기 베트남-중국과 조선-중국 관계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유인선 외국 사신들이 오면 앉는 순서 즉, 반차(班次)가 명대에는 조선-안남-일본-유구에서 청대 조선-유구-월남 순으로 바뀐 것은, 아마도 명이래 조선과 유구에서는 왕조의 변화가 없었던데 반해 베트남에서는 몇 차례 정치적 변동이 있으면서 청조 예부 관리의 착오일 가능성이 많다는 게 일본학자의 견해다. 한편 조선에의 사절은 정1품 내지 정3품이었는데, 베트남의 경우는 유구와 동일하게 정5품 내지 종7품이었다. 이러한 것이 베트남의 중국적 천하관념에 소극적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확답하기에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Q 김정현 작년부터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처음으로 '동아시아사'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채택되어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일선 현장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베트남사 내용이 생소해 어렵다고 호소한다.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A 유인선 우리나라 대학에서 베트남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은 몇 안 된다. 그러니 교사들이 본인도 잘 모르는 베트남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편찬한 『사료로 보는 동아시아사 : 동아시아사 교과서 보완 지도 자료집』 같은 것을 충실하게 선행학습하고, 방학기간 중에 교사들을 대상으로 베트남 역사 강의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선행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것도 단시간 내에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한다.

Q 김정현 베트남의 입장에서 볼 때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은 '가해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 최근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고, 베트남 여성 이주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상호이해 부족에 따른 갈등이 생기고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

A 유인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극히 서구 지향적인 반면에 후진국들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1960년대 우리는 남베트남 정부를 위해 파병했지만, 지금은 반대편에 있던 통일 베트남정부와 2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전면적 동반자 관계를 거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사돈의 나라'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 베트남 여성의 국내 이주와 관련하여 갈등이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이며 수직적인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평등과 개성을 존중하는 베트남 문화와 사고방식을 현지 파견근무자들에게 이해하도록 훈련시켜야 하고, 베트남 사람들에게도우리의 생활의식을 정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가정에서도 베트남 며느리의 가정과 가족,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한국인 며느리들을 오히려 역차별을 하는 것처럼 외국인 며느리들에 대한 지원이 많다. 언어적인 문제, 한국생활 적응 등은 최근 지자체 단위별로 많은 무료 프로그램들과 교재들이 개발되어 있으니 한국인 가족들이 먼저 알려주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주어야 한다.

김정현 연구위원

Q 김정현 지난 2012년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20주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상 베트남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베트남사 연구의 권위자로서 한-베 수교 20주년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유인선 오히려 다른 국가와의 외교관계와 비교해 봤을 때, 베트남은 한국에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추억과 최근에 베트남 쌀국수 유행, 연 간 50만 명이 직접 방문해서 본 베트남, 20년간 한국에 왔다 간 수십만의 베트남 노동자들을 통해 베트남은 이미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나라가 되었다. 한-베 수교 20주년을 맞아 우리의 베트남에 대한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베트남 문화에 대해서 알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하고,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거기에는 현재 한국이 베트남보다 경제적으로 좀 나은 상황이고, 비교적 선진화된 한국의 것을 일방적으로 베트남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라고 생각한다.

Q 김정현 베트남은 중 국과 1991년 국교를 정상화했고, 우리나라는 1992년 중국과 국교정상화했다. 베트남과 한국의 중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차이점과 유사점은 무엇일까?

A 유인선 국제 관계의 기본 원칙들과 베트남인들이 상당히 실질적이라는 사실을 역사의 교훈을 통해 인식하고 대처한다면 현재 우리 정부에서나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도 공산권의 붕괴 후 필요에 의해 맺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전통적 '큰 형님'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못마땅해 한다. 중국도베트남과의 갈등이 아세안 국가들에 끼칠 영향을 감안하여 베트남에 손을 내민 셈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양국 모두 우호를 강조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남중국해에서의 분쟁에서 보듯이 갈등의 소지가 없지 않다.

Q 김정현 최근 들어 동북아시아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에서도 민족주의 열풍이 불고 영토문제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갈등과 민족주의 열풍의 해결과 관련해 베트남 또는 베트남 국민, 그리고 주변국들이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보는가?

A 유인선 남중국해(베트남으로는 東海)의 섬들을 둘러싼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중국과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의 갈등은, 단순히 영토문제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지정학적, 경제적 중요성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부상에 우려하는 미국, 일본 및 인도까지 가세하여 사태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 모두, 한편에서는 갈등과 분쟁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서로 간 이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 역시 보여주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 모두, 상황과 시대에 맞는 현명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Q 김정현 한국의 베트남사 연구를 진작하고 한·베트남 학술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학자로는 최초로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국립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앞으로 한국과 베트남, 중국 관계 관련하여 어떤 계획이 있는가?

A 유인선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에서는 두 나라 간의 정치적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현재 베트남 사회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연구했던 기존 연구들을 총정리하고 있다. 앞으로 전공인 베트남 중세 레 왕조(1428~1788)에서 있었던 중국문화 수용 역시 다루어 볼 계획이다. 이와 병행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도 하고 싶다. 그게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 또한 필요하다.

Q 김정현 끝으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목해야할 일이나 하고 싶은 제언이 있다면?

A 유인선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 출판 후 한 중국사 전공교수는, "이 책은 중국사 전공자보다 한국사 전공자에게 더 필요할 것같다"고 말했다. 바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집필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한국사, 한일관계사 및 한중관계사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비교하는 관점에서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중관계 연구에 있어서도 베트남 연구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중ㆍ일 영토문제보다 훨씬 국제적으로 관심이 쏠려있는 동남아 영토문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