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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시진핑 주석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아베 총리의 '일본부흥'
  • 차재복 재단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2012년 9월 11일, 일본은 센카쿠열도 3개의 섬을 국유화시켰다. 9월 26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아베가 '일본부흥, 강한 일본'을 외치며 총재로 당선되었다. 아베 내각은 공식 출범하면서 '아베노믹스'로 인기몰이를 해 지난 7.21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한편, 중국은 2012년 11월 제18차 중국공산당 대회를 마치며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총서기과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시진핑 총서기는 첫 마디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쳤다. 지난 해 말 중국과 일본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각자 새로운 꿈을 외쳤다. 금년 초, 중일 관계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가 혼재되어 민족주의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갈등에서 분쟁으로 치달았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동중국해에서 중국 군함이 일본 구축함에 사격시 사용하는 레이더를 조준했다며 일본 측이 항의하는 등 전후 중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한중일 3국은 20세기 초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으로 초래된 역사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의 관문을 넘을 수 있을까. 문제는 일본 사회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 일본의 과거사 사과는 한중일 역사화해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충분조건은 일본 사회 저변의 변화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화해는 국가간 적대행위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정치의 과정으로 여기에는 3단계 해법이 있다. "국교 정상화 같은 절차적(procedural) 화해, 경제협력과 배상 및 보상의 물질적(material) 화해 단계를 넘어 공동의 역사교과서 발간, 기억 및 추모를 담은 마지막 관념적(ideational) 화해"라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천자현,『국제정치논총』제53집 2호, 2013) 한국과 일본은 1965년에 그리고 중국과 일본은 1972년에 각각 한일 국교정상화와 중일 국교정상화를 실현하였다. 그 후 일본은 스스로 대한국 경제협력과 대중국 ODA 지원을 통해 암묵적으로 물질적 화해 단계를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핵심은 일본의 역사인식의 태도에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베총리와 우익은 역사의 사실(史實)과 달리 자기가 원하는 내용을 자신의 방식으로만 역사를 기억하려 한다. 일본이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역사를 부끄럽다 하여 후손에게 자긍심을 북돋아 주기 위해 역사를 인위적으로 미화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의회마저 일본의 역사미화에 반기를 들고 있다.

유럽에서 독일과 폴란드는 절차적·물질적 화해를 넘어 역사인식의 진정성을 담은 공동 역사교과서를 발간해 올바른 역사 기억과 추모가 가능한 진정한 화해를 이뤘다. 일본의 혹자는 동아시아의 상황과 유럽의 상황은 다르다고 한다. 모든 '상황'은 같을 수 없다. 침략전쟁에 의한 가해국(가해자)과 피해국(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 독일은 가해국(가해자) 입장이다. 지금 한중일의 역사문제는 당시 '상황'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가 아니라 당시 침략전쟁의 원인·과정·결과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다. 독일과 프랑스도 앙숙관계를 떨쳐내고 진정한 역사화해(1963년 엘리제 조약 체결)를 일구어 냈다. 그 원동력은 '독일 사회 저변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동아시아는 어떠한가. 유럽의 역사화해와는 반대로 향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그리고 중국과 일본은 역사와 영토 문제로 깨끗이 갈라설 수 있는 사이인가, 아니면 지정학적으로 어차피 함께 맺어진 사이인가. 어차피 함께 가야 할 사이라면, 나와 다른 입장의 상대방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동양의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배려 덕목이고 이게 지금 필요한 때이다. 예를 들면,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손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남경대학살을 당한 남경 시민의 후손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본은 '일본부흥'을 외치고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새로운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들 슬로건이 대외적으로 작용하면 동아시아에서 19세말 20세기 초와 같은 군사적 충돌도 피할 수 없다.

그러한 징후가 일본에서 엿보인다. 바로 '개헌(9조)'이다. 역사상, 중·일간 국력의 변화를 크게 살펴보면, 중강일약(中强日弱)→일강 중약(日强中弱)→중강일강(中强日强)의 세 시기로 구분된다. 고대시기의 중일 역학관계는 일본이 대규모로 중국에 견수사(遣隨使)를 파견하여 문화와 과학기술을 배우는 수·당 시기부터 근대 청일전쟁까지, 중화 중심의 질서 체제하에서 '중강일약'의 비대칭형 구도였다.

그러다 근대시기는 '일강중약'의 구도로 뒤바뀌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년)으로 근대화에 앞선 일본은 '대일본제국헌법(메이지<明治>헌법)'으로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2차 대전으로 끊임없이 주변국을 침략하였다. 일본은 1915년에는 중국에게 21개조를 요구하면서 '군사력'이 최고 절정에 이르렀다. 반면, 중국은 1915년(21개조 요구)를 기점으로 국력이 점점 쇠퇴하여 일본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명치유신 이래 1960년대까지 1세기여 동안의 중일관계는 일반적으로 평가해도 일본이 정치·군사·경제 어느 면에서나 중국을 압도한 '일강중약'의 비대칭 구도였다.

그리고 오늘날 21세기의 중일관계는 역사상 처음으로 맞이하는 '중강일강'의 대칭형 구도이다. 1971년 중국은 대만을 대신하여 UN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1978년부터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끈 개혁·개방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선부론(先富論)의 전술과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으로 이후 20년간 중국을 고도의 경제성장 국가로 발전시켰다. 등소평 사망 이후의 중국은 아편전쟁으로 영국에게 할양된 홍콩을 150년 만에 (1997년 7월 1일) 품속에 넣었다. 그 날,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연설문 중에서 '100년의 치욕을 씻었다'라고 강조하였다. 홍콩 반환 시점부터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한층 더 가시화되었고, 201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약5조8,812억 달러에 도달하면서 일본을 추월했다. 세계경제 2위의 중국과 3위의 일본, 이로써 중일관계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등한 국력을 가진 '중강일강'의 대칭 구도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1991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당시에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있었다. 논의의 요지는 일본이 세계평화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에 걸맞는 일본의 (군사적)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지금 아베 총리가 외치는 '개헌(9조) 논리는 1990년대의 논리와 다르다. 즉, 1990년대의 개헌 논리는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보통국가화' 또는 '정상국가화'라는 다소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금 아베의 '개헌(9조)' 논리는 2010년의 '9.7 센카쿠 사건'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서 느낀 '중국위협'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개헌(9조)' 논의는 향후 100년간 일본의 국가발전의 방향을 가늠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금년 8월 야마구치현 자신의 후원회 자리에서 "헌법개정(9조)은 나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밝혔다. 총리가 '역사적 사명'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임기 내에 반드시 개헌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일본 총리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2016년까지 일본정치 일정에서 선거는 없다. 따라서 향후 3년 내에 일본에서는 '개헌(9조)'지지 정당(자민당, 모두의 당, 일본 유신회)과 공명당이 지지하는 '가헌(加憲)' 사이에서 지속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고, 그 결과는 어떠한 형태이든 새로운 헌법(가칭, 평성<平成>헌법)이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중·일간 역사·영토 갈등과 분쟁이 일본정치의 '보수화'와 역사인식의 '우경화'를 초래한 만큼, 앞으로 아베 총리의 개헌(平成헌법)의 내용과 성격은 향후의 중일관계와 역사·영토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동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은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이 무슨 얘기를 주고 받는지에 대하여 긴장을 늦추지 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의 '일본부흥=강한일본'과 '중화민족의위대한부흥=중국꿈'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슬로건이 새롭게 대외적으로 작용하면 새로운 중일 대칭형 구도 하에서 새로운 군사적 충돌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