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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로어노크 대학과 한국인, 한 약사(略史)
  • 스텔라 쉬(Stella Xu) 교수 로어노크 대학(Roanoke College, 미국 버지니아주) 역사학과

내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1990년대 초에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들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짧은 기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바로 대학원에 입학해 한국사를 전공하겠다는 결정은 나 자신에게 상당한 도전이었다. 다행히 나는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내 학업에 관해 열정적으로 조언해주실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교수님들을 고려대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교수님들과 함께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중국 북동지방과 내몽고에 위치한 사적지들을 여러 차례 견학하면서 한국 고대사를 공부하도록 자극받기도 했다.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나는 다시 더 큰 도전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언어장벽과 문화적인 충격은 내게 늘 문제가 됐지만, 늘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동아시아 및 한국 역사를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더욱 사색적이고 미묘한 시각차를 갖고 다시 숙고했다. 그렇게 나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6년부터 로어노크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로어노크 대학에 몸담으면서 한국 역사에 대한 내 열정은 커져만 갔다. 내가 (교수채용에 응모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이 대학을 방문했을 때 사학과 학과장이신 마크 밀러 박사님은 내게 김규식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으셨다. 물론 나는 한국 근대사에 관한 책들에서 그 이름을 본 적있었다. 하지만 김규식이 중국으로 추방당했던 동안 한국의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1945년∼1950년간 남북한 통일정부를 수립하려 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잘 몰랐다. 나는 로어노크 대학으로 이사온 다음에야 학교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과 학교가 1890년대부터 맺기 시작한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알게 됐다. 미국 버지니아주 남서쪽에 자리한 이 작은 문과 대학(이 대학은 요즘에도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이다)이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미국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 중 30여명이 공부하고 돌아갔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학교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두 가지 측면에서 특히 놀라웠다. 첫 번째는 로어노크 대학이 태평양 건너 수천 마일 떨어진 대륙에 있는 나라, '은자의 왕국(hermit kingdom)'으로만 알려졌던 한국이라는 곳에서 온 학생들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한국 유학생들이 학업 성적만 우수했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수의 교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로어노크 대학 졸업생 중 유명한 한국인을 꼽자면,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이강(의친왕), 1897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1893년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에서 한국어 통역관으로 활동했던 서평규, 1897년 명예석사학위를 받은 한국 개화운동의 주축 서광범이 있다. 또한 1907년 고종 임금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세 명의 특사 중 한 명이었던 이위종의 형인 이기종은 그들의 아버지 이범진이 미국 워싱턴에 주미 공사로 근무하던 동안 로어노크 대학에서 공부했다.

나는 지난 5년간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연구할 시간이 주어진 것은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학자들과 다시 만나 교류도 하면서 한국 역사학계에서 전도가 유망한 젊은 학자들과 새로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재단이 보유한 고대사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던 것도 내게는 큰 수확이었다. 로어노크 대학 도서관도 좋지만, 동아시아 관련 자료의 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고 동아시아 언어로 집필된 자료가 아예 없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보낸 석 달 동안 나는 가장 최신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재단에서 보낸 연구기간을 바탕으로 향후 한국의 학자들과 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나는 2014년 5월 로어노크 대학 학생들을 인솔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는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다시 그 인연의 끈을 잇고자 하는 로어노크 대학으로서도 역사적인 일일 것이다. 나는 미국 학생들이 역사와영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들을 파악하고 동아시아에서 진행중인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 특히 독도체험관을 학생들과 함께 방문할 것이다. 재단 방문 덕분에 내년으로 예정된 나와 학생들의 한국방문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