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3일 재단에서는 "한·일 역사교과서 집필자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한·일 양국이 상대방의 역사 기술을 이해하고 교과서 기술을 개선하기 위해 2010년부터 꾸준히 열리고 있다. 회의에 참여한 다카시마 노부요시(高嶋伸欣) 명예교수와 재단의 남상구 연구위원이 만나 일본 교과서 문제와 한・중・일, 한・일 공동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_ 편집자 주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학 명예교수
1942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4년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부속고등학교의 사회과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75년부터 '말레이시아반도 전쟁을 체험하는 여행'을 주재하여 2014년 8월 40회를 맞기도 하였다. 1996년 부속고등학교를 퇴직하고 류큐대학 교육학부 교수로 있었으며, 현재 '무라야마담화 계승·발전 모임'의 공동대표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Q 남상구 1975년부터 '말레이시아반도 전쟁을 체험하는 여행'을 주관하는 등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와 책임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왔다. 계기가 궁금하고 그런 활동으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A 다카시마 노부요시 고등학교 교사로 세계지리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동남아시아의 이미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있다. 동남아시아를 가난하고 불결하며 범죄가 많고 여행하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응답하는 학생이 많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고도성장을 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우아한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자만이고, 차별적 민족관에서 비롯한 명백한 오류다.
이런 민족관이 오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리학습의 목적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일본이 주변 국가를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거나 군사 지배한 것을 일반 일본인들도 옳다고 착각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이 깨닫게 하고 싶었다. 이것을 위해 자료 수집에 나섰고, 1975년 여름방학에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말레이시아 현지인에게서 일본군이 중국계 주민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이 사건을 추도하는 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 매년 혼자 말레이시아로 가서 찾아 헤매듯 학살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학살추도비와 묘지가 70여기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성과는 현지 여행 안내책이나 증언 영화에 담겨 있다. 현재 모든 역사교과서가 동남아시아에서 저지른 일본군 학살 사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를 멸시하는 차별적 민족관이야말로 침략을 긍정하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하는 근원'이라는 것을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알려주려는 당초 목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현대사회'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 '아시아 속 일본'이라는 칼럼에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와 가쓰 가이슈(勝海舟)에 관한 내용을 넣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시대 사상가로 차별적 민족관에 바탕을 두고 '탈아론'을 주장하여 중국과 조선을 멸시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문부성은 후쿠자와 유키치를 부당하게 다뤘다며 이 책이 검정 통과하는 것을 불허했다. 납득할 수 없어 문부대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제1심은 승소했고 2심인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는 패소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는다. 재판 증인으로 나왔던 야스카와 씨와 나는 "1만 엔 지폐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를 '은퇴'시키고 가쓰 가이슈 초상을 싣자"고 제안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1만 엔 지폐에 후쿠자와 유키치 초상이 그려져 있는 한 일본인을 신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1천 엔 지폐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사라져 한숨 돌리고 있는데, 1만 엔 지폐의 후쿠자와 유키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동북아시아 지역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문제의식은 동남아시아 사람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것이며, 우리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연대도 진척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성과이며 도달점이다.
Q 남상구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새역모') 계열 교과서(이쿠호샤, 지유샤)를 보면, 일본이 동남아를 침략했을 때 해당 지역 주민들이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고 오해할 만한 기술이 있다.
A 다카시마 노부요시 볼썽사납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억지 주장이다. 침략이라는 범죄 행위를 했으면서 피해자인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발언을 하도록 하는 것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착각했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 중에 그런 태도를 취한 사람이 있었고, 당시 기록영화에도 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치민조차도 처음에는 해방군으로 착각하다 나중에 본색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다민족사회에서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일본군도 민족분단통치 수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협력한 말레이시아인은 피해자 의식이 별로 없다. 그때까지 경제 주도권을 쥐고있던 중국계(화교)를 일본군이 심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화교 소유 재산을 싸게 얻거나 일자리를 차지하여 지금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 기반을 다진 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말레이시아인 중에 그런 사람은 지금도 일본군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그 전쟁은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 사이에 벌어진 식민지 쟁탈전이다. 분명 일본군이 공격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구제국주의 국가를 쫓아낸 꼴이지만 일본군이 반격하는데는 실패하였다. 독립이 다소 빨라졌다 하더라도 독립을 달성한 것은 현지 사람들의 힘이다. 당연히 일본이 반가워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한다. 게다가 일본군이 동남아를 침공한 목적이 식민지 해방에 있지 않았다는 점은 당시 일본군 내부문서에 '일본군은 해당 지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Q 남상구 역사인식 문제로 생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를 발간하자는 제안이 있다.
A 다카시마 노부요시 공동 부교재를 만들고 교사가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공동 역사교과서는쉽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사'와 같이 세 나라 역사를 정리해서 다루는 과목이 세 나라에 모두 있다면 가능성은 높겠지만, 지금처럼 자국사를 가르치는 과목 안에서 3국을 동등하게 다룬 교과서를 만들어 사용하도록 한다 해도 채택 가능성은 거의 없다.
Q 남상구 아베 정권 출범 후 교과서 검정기준 개정, 학습지도요령해설서 개정 등 제도 뿐만 아니라, 교육위원회가 개입하여실교출판 교과서가 채택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다방면으로 우익 교과서 확대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아베 정권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A 다카시마 노부요시 아베 총리는 제1차 정권인 2007년에 교육기본법을 전면 개정해 교육 목표에 '애국심 육성'을 포함하는데성공했지만 구체적으로 교과서 내용에 이를 반영하기 전에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그때 다 하지 못한 일을 제2차 정권에서 실현하기 위해 교과서에 정부 견해를 쓰는 것을 의무로 만들고 도덕교육을 강화하여 애국심을 주입하려 하고 있다. 교육위원회에 현지사(県知事)나 시정촌장(市町村長)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그 동조자들은 자민당과 다른 생각을 하는 정치가가 정부나 시정촌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혁신파 지사와 시정촌장이 책임자가 되어도 괜찮은가?"하는 질문을 받은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 씨가 방송에서 무심코 "안 된다!"고 답한 것은 유명하다.
일본 안에서는 현재 아베 정권의 교육제도 개악을 일본 시민들이 비판하고 반대하는 운동을 잇달아 벌이고 있다. 12월 총선에서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역사 수정주의'를 내건 정치가들 중 이름있는 의원들이 많이 낙선했다. 아베 총리는 종전 기세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Q 남상구 현재 '새역모' 계열 역사 교과서(지유샤, 이쿠호샤)채택률은 4%가 안 되는데, 2015년에는 10%를 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오키나와 다케토미초 교육위원회가 교과서 채택 지구에서 탈퇴해 독자 선택권을 확보한 사례도 있다. 새역모 계열 교과서 채택률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활동은?
A 다카시마 노부요시 '새역모' 계열 교과서 중에 지유샤판 공민교과서는 개정판을 내지 않는다고 하고, 현재 대부분 채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올해 여름 선발에서도 채택되는 것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쿠호샤판은 요코하마시가 채택하는 것으로도 전국 2%에 해당한다. 올해 여름 선발에서 아베 총리와 가까운 정치세력이 추가로 대규모 채택지구를 노리고 있으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현재 검정 중인 이쿠호샤판의 내용이 밝혀지는대로 비판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오키나와 다케토미쵸 문제가 계기가 되어 정촌 단위 채택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로 이쿠호샤판을 채택하는 정촌이 늘어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정촌은 학생 수가 많지 않다. 정촌에서 채택 절차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국적으로 감시하는 운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Q 남상구 한•일, 한•중•일 연구자와 교사들이 모이는 기회가늘고 있고, 공동으로 역사 교재를 발간하자는 제안이 오가는 등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런 움직임이 교과서 문제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까?
A 다카시마 노부요시 정치 문제와 달리 학술 차원이나 학교 차원, 학생 차원, 민간 차원에서 자유롭게 왕래하며 교류하면 유대감과 인간적 신뢰관계가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헤이트스피치나 정치가의 뜻대로 악선전이 행해진다 해도 "저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리 없어. 정말 그럴까?"하는 의심을 자연스럽게 품게 될 것이고, 상호 이해가 깊어진다면 감정 대립이 격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공동 부교재 발간이나 관련 교류 모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한다. 또, 그런 노력을 교육에 한정하지 않고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Q 남상구 '무라야마담화 계승•발전 모임' 공동대표다. 동북아 역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다카시마 노부요시 역사 갈등은 좀처럼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평화를 희구하는 공통의식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무라야마담화'를 재확인해야 하지만,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담화'를 과거로 치부해버리는 '아베담화'를 2015년 8월에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금 일본 국내에서는 '아베담화'도 '무라야마담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력하다. 이 모임에서는 '아베포위망'을 구축하려고 한다. 나아가 새롭게 오키나와현 지사로 취임한 오나가(翁長) 지사에게 독자적인 동아시아 외교를 주문하기 위해 오키나와 사람들과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