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패러독스'라는 표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전인 2012년 10월 한·중·일 협력 사무국이 주최한 국제포럼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2013년 6월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방중하기 전 한 일간지와 서면 인터뷰를 하면서 "동북아에서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여 주목받게 되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경제 분야의 복합적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과 반대로, 정치·안보 분야의 갈등이 증가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전 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아시아로 옮겨 오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활발한 경제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류와는 반대로 군비경쟁, 핵개발, 영토와 역사 갈등등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갈등들 또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패러독스'의 의미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유럽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 형성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노력은 경제 교류와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결국에는 협력의 정신과 행위가 정치·안보 분야로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갖은 우여 곡절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냉전도 끝이 나고 유럽은 통합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 패러독스란 유럽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러한 확산효과가 아직 일어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아시아 패러독스의 원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안보대화와 협력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계속되어 온 역사 논쟁에 영토 문제와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참배 문제 등이 더해지면서 한·중·일 3국사이에 역사·영토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기 시작하였다. 2010년을 전후하여 한·일 간 독도문제와 센카쿠 영유권을 둘러싼 중·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3국 간 대립이 역사문제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일본 정치권과 사회의 우경화 이외에도 중국의 부상, 3국 간 국력 차 축소 등 복잡한 정치사회적 요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까닭
중국의 급격한 부상은 국제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미래 중국의 대외정책과 국제관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국의 국력이 유일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재정적자나 국내 정치문제 등은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독자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안정적인 동아시아 미래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 일본과 3자 협력이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한일 간 협력이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최소한의 보장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동아시아 지역이 이 패러독스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