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1일 외교부는 일본 내각 회의가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내용으로 국회 답변서를 결정한것에 대해 '역사 퇴행 움직임'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을 때는 미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친구지만 일본 지도자가 주변 국가와 긴장을 격화하는 행동을 취한 것에 실망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듯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동아시아 외교 관계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보니 야스쿠니신사 문제라고 하면, 일본 총리의 참배 문제나 A급 전범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은 간과 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한국인이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일본이 강제로 전쟁에 동원하였다가 사망한 한국인 약2만1천명이 유족의 의사에 반하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총리나 정치가가 참배를 할 때마다 이웃에서 손가락질하는 침략신사 야스쿠니에 자신의 아버지, 형, 오빠가 신으로 모셔져 있다는 것은 한국인 유족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다. 2013년 5월29일 도쿄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이희자 원고 대표가 한, 아래 최후 진술에는 유족의 야스쿠니신사에 관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 국민을 전쟁터에 끌고 가는데 이용된 야스쿠니신사는 전쟁이 끝나고 없어져야 했습니다.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를 반성한다면 야스쿠니신사는 없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피해자인 조선인이 그곳에 합사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는 없어지지 않았고 제 아버지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었으며 적어도 야스쿠니신사만 놓고 보면 일본은 여전히 패전하기 전 그대로입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이름이 과거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거나 일본이 새로운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데 이용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큰 수치심이 들게 합니다."
유족에게는 현재진행중인 식민 지배의 고통
이러한 생각을 가진 유족들이 모여 2001년부터 3차례에 걸쳐 야스쿠니신사 무단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일본 재판부는 '종교적 관용'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1차, 2차 소송을 기각했다. 3차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2011년 7월 21일, 도쿄지방법원이 2007년 4월 제소한 '노! 합사(NO! 合祀)' 소송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린 후, 한국 관계자들은 상고심에서는 한국의 견해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지금까지 소송에서 일본 변호인단에게만 지나치게 의지했다는 반성과, 이 문제는 유족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책임감에서 비롯하였다. 일본 법정에서 한국인 유족과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의견을 진술한 적은 있으나, 한국 측 견해를 종합적으로 일본 재판부에 전달한 적은 없었다.
야스쿠니신사에 관한 한국의 연구 성과 총정리
이 책은 일본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일부 수정·보완하고, 새로운 원고와 자료를 추가하여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야스쿠니 소송과 법'에서는 '노!합사' 소송에서 쟁점이 된 사안과 1심 판결의 부당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노!합사' 소송 일본 측 사무국장인 야마모토 나오요시(山本直好)는 소송 전 과정을 쟁점 중심으로 정리했고, 소송 담당 변호사인 우치다마사토시(内田雅敏)는 원고의 가족이 일본 국가와 일체가 된 야스쿠니신사에게 살해되었다는 인식을 전제로, 침략신사인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을 밝혔다. 이석태 변호사는 일본 재판부의 판결 논거인 '종교적 관용론'의 문제점을 법리적으로 비판했다.
2부 '야스쿠니신사와 식민지 조선·한국'에서는 식민지 조선과 야스쿠니신사의 관계와 해방 후 한국인 합사 문제를 다루었다. 김승태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야스쿠니신사가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밝혔고, 남상구와 노기 가오리(野木香里)는 해방 이전과 이후 한국인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경위를 검토하여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하게 했다. 지영임은 한국의 전통 추도 문화라는 관점에서 야스쿠니신사가 한국인 유족의 추모권을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즈시 미노루(辻子実)는 식민지 조선에 존재했던 침략신사의 유적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3부 '소송, 운동, 그리고 역사'에서는 소송과 직접 관련된 판결문과 의견서, 최후진술서, 연혁을 실었다. 소송 원고 대표인 이희자의 최후진술서는 10여 년이 넘는 소송을 통해 유족이 연구자나 법률가들에 의존하지 않고 명쾌한 자기논리를 구축해 왔음을 보여준다.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한국인 피해자와 그 유족 처지에서 보면 식민지 지배 문제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 문제다. 해방 70주년을 맞아 이 문제에 보다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