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걸어온 발자취에서 우리는 가끔씩 상식을 뛰어 넘는 낯선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단편적인 예로 경주 괘릉에는 덥수룩한 수염과 건장한 체구를 가진 이방인 무사가 서 있고, 고구려 씨름무덤에는 고구려인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코가 큰 이방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 먼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궁전에는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이 그려져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주인공들은 당시에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유로 서로 다른 공간을 오고 가야 했을까? 우리는 이런 낯선 모습들에서 그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14년 12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유라시아 실크로드 연구소와 공동으로 "유라시아 문명과 실크로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축사에 이어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이란 등 7개국 18명의 학자가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해당 지역의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민속학, 언어학, 국제 정치학, 국제 경제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자들이 참여하여 실크로드를 통한 유라시아와 한반도 사이에 어떠한 교류가 있었는지를 자세히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이 실크로드에서의한 주역이었음을 논증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 해당지역과 어떤 교류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관한 주제들도 함께 논의하였다.
제1부에서는 "유라시아 문명과 실크로드의 범주"라는 주제로 각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본 유라시아 문명과 실크로드의 개념 정의 등 기본적인 정체성을 확인하고, 실크로드를 통한 유라시아의 역사적공헌, 유라시아와 한국 사이에 이뤄진 문화 교류를 구체적 사례를들어 살펴보았다. 먼저 한양대학교 이희수 교수는 '한국에서 본 유라시아 문명과 실크로드'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지역과 한국의 역사적 접촉 사실을 통시적으로 보여주면서 앞으로 두 지역의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란 테헤란대학교 보수기(Vosooghi) 교수는 '실크로드를 통한 고대 이란인들의 중국과 한반도 이주'를 발표하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고대 이란인들은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역사와 지리 서적을 읽고 고대 한국(신라)의 지리적 특징과 문화적 특징을 잘 알고 있었으며, 고대 한국을 이민자 친화적인 나라이자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란의 여러 사료를 들어 소개하였다. 베르디무로도프(Berdimurodov) 우즈베키스탄 고고학연구소 소장은 '유라시아 실크로드 발전에 기여한 우즈베키스탄의 공헌'에서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거주하던 소그드인, 박트리아인, 호레즘인들이 실크로드 전역에 걸쳐 경제 및 문화 방면에 있어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을 고고학 자료를 근거로 주장하였다.
유라시아 실크로드 문명과 고대 한국.
제2부에서는 "유라시아 문명과 실크로드, 그리고 고대 한반도"라는 주제로 유라시아 실크로드 문명과 한국과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국립전주박물관 윤형원 학예연구실장은 '신라-흉노의 무덤구조 비교 검토'에서 고고학적으로 신라와 흉노에서 보이는 대형분의 무덤 구조를 중심으로 두 문화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검토하였다. 키르키스스탄국립대학교 백태현 교수는 '실크로드의 재발견-키르기스스탄과 한국의 만남'에서 키르기스스탄에 대한 일반 개요와 역사를 소개하고 중앙아시아와 키르기스스탄의 중요성과 새로운 실크로드를 향한 한국의 과제가 무엇인지 제시하였다. 한편 강릉원주대학교 김용문 교수는 '실크로드의 복식 문화교류'에서 실크로드의 복식을 유목민족의 복식으로 규정하고, 이들 지역에서 출토된 복식, 문헌과 회화 자료를 중심으로 비교하여 고대 한국복식은 스키타이계 복식으로 변형모, 대롱소매의 상의, 당이 달린 바지, 혁대, 가죽으로 만든 장화를 착용하였다고 분석하였다.
제3부에서는 "유라시아 실크로드 지역의 정치 경제"를 주제로 유라시아 실크로드 지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가치 등을 조명하고 한국의 발전 전략을 모색하였다. 리젠양(李雋暘) 중국외교학원 연구원은 '시진핑 주석의 유라시아 실크로드 외교전략'에서 중국의 실크로드 외교전략은 중국과 실크로드 주변 지역이 함께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결코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지역 전체의 협조와 공동 발전을 위해 설정한 것으로 국제 협조, 국제 경제의 신질서 체계를 만들려는 새롭고 창의적인 모색이라고 주장하였다.
유라시아 실크로드의 현재와 미래
동북아역사재단 이종국 연구위원은 '유라시아·실크로드 지역의 변화와 한국외교-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에서 유라시아와 한반도의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구상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우리와 유라시아의 외교는 새로운 공간에서 역할이 강화되는 것으로 정치와 안보, 역사와 문화, 경제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하여야 함을 주장하였다. 한편 몽골국립대학교 바트투르(Battur) 교수는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에서 한국과 몽골의 관계'를 발표하였다. 바트투르(Battur) 교수는 동북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 프로젝트를 실행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과 몽골의 경제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당면 과제이며, 양국 사이에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경제 협력을 실행할 기반을 조성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유라시아 문명과 실크로드 지역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라시아 각 지역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와의 연관성을 확인하였으며, 유라시아와 실크로드의 새로운 모습과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관련 국가들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단은 앞으로도 '유라시아 실크로드'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을 제안하고 확립하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